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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에세이

1급 천재 보호협회 & 천재를 위한 학교

by 김태라

스타니스와프 렘의 신간 『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은 제목도 이상한 책이지만 내용은 더 이상하다. 단편집 수록작 전체가 ‘서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서평집’이 아니고 ‘소설집’이다. 왜일까? 오늘 진행되는 소설 강의 주제이다. 소설 같지 않은 것이 왜 소설인가? 소설이란 대체 무엇인가? 소설이란 장르는 한계가 없는 것인가? 수업에서 다룰 작품으로는 테드 창의 ‘소설 아닌 소설’과 스타니스와프 렘의 저 ‘이상한 책’에 실린 ‘매우 이상한 소설’이 있다.


「쿠노 믈랫제, 『이타카 출신 오디스』」


‘쿠노 믈랫제’라는, 이름도 이상한 사람이 쓴 『이타카 출신 오디스』라는 책에 대한 서평, 이라는 소설이다. 물론 이 저자 및 저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책에 대한 서평은 소설인가? 그럼 존재하는 책에 대한 서평은 소설이 아닌가? 존재하지 않는 책이 실제로 존재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근본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존재하지 않는 책을 다룬 위 소설에는 ‘존재 그 자체’인 인물이 나온다. 일명 “1급 천재”이다. 주인공 오디스가 바로 1급 천재인데, 그는 천재를 세 종류로 분류한다.


1) 3급 천재=평범한 보통 천재

사상적으로 시대의 한계를 크게 넘어서지 못함. 당대에 자주 인정받고 돈과 명예를 얻기도 함.


2) 2급 천재=중간급 천재

생전에는 핍박받지만 죽은 뒤에 유명해짐. 다음 세대 혹은 그보다 나중에 발견되어 칭송받음.


3) 1급 천재=최상급 천재

결코 알려지지 않음. 이들은 “전례 없는 진실의 창조자”이기에 아무도 이들을 알아보지 못함.


오디스는 1급 천재가 발견되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며 <1급 천재 보호협회> 설립을 주장한다. “이런 상황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돌이킬 수 없는 문명의 손실인 것이다. 1급 천재 보호협회를 만들고 그 안에서 결성된 탐험대가 계획적인 탐사에 힘써야 한다. ... 전문가들이 그를 알아보고 존중하고 그의 사상을 발전시키며 그리하여 이 천재를 흔들어서 인류에게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종의 심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스타니스와프 렘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엊그제 나는 “차원이 다른 의식을 가진 인간은 아무도 못 알아본다”고 썼는데, 내가 말한 대상이 저 ‘1급 천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소설을 읽으며 영감이 떠올랐는데, 바로 <1급 천재를 위한 학교>에 관한 것이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인류의 진정한 보석을 발굴하고 이들의 의식이 지상에서 꽃피우도록 돕는 것이다. 세상이 알아보지 못해도 나는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1급 천재들은 학교에서 배울 것이 없다. 배울 것 없는 이들을 위한 학교, 그런 것이 왜 필요한가? ‘배울 것이 없음’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다. 배울 것 없음을 안다는 건 무슨 뜻인가? ‘자기를 안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땐 분명히 천재성을 가진 비범한 존재인데 (어떤 프로그래밍으로 인해) 자기를 평범 속에 가두려 한다. 또한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갇힐 수도 있다. 1급 천재는 타고난 천재성과 대조되는 불모의 환경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많아 이런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여기서의 천재성은 특별한 ‘재능’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남다른 재주나 능력은 3급 천재에게도 있다. 진정한 천재의 능력은 ‘존재의 능력’이다. 1급 천재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소유’나 ‘행위’가 아닌 ‘존재’ 중심의 삶을 산다. 이들은 진정으로 ‘존재하기에’ 학교나 선생에게서 배울 것이 없다. 모든 교육과 학습의 궁극 목적은 ‘존재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완전히 존재하기에 또한 존재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진실로 강한 것은 또한 매우 약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존재는 곧 ‘순수한 정신’을 뜻하는데 이 순수성은 꽃잎처럼 세심하게, 보석처럼 귀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자칫하면 이들은 인류애나 자비심이나 공감능력으로 인해 자기를 부정하며 ‘남들처럼’ 되고자 하는 무지와 착오에 빠질 수 있다.


<천재를 위한 학교>의 목적은 크나큰 “문명의 손실”인 천재들의 자기부정을 방지하고, 1급 천재가 온전한 자기로 일어나 그 존재의 빛을 세상에 전하도록 하는 데 있다. 한마디로, 순수 존재인 이들을 ‘세상적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 이 학교의 존재 이유이다. 존재를 위한 학교. 존재 자체로 존재하는 학교. 학교 자체가 1급 천재의 법인(法人)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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