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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 Oct 12. 2021

無害

無害하게 살다.

무해하다 1 (無害 하다) [해로움이 없다.]


최근 무해(無害) 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난 나의 삶의 가닥들을 하나씩 떼어보며 과연 나는 무해(無害) 하게 살았는가에 대해서 오랜 시간 생각했다. 정말이지 무해(無害)라는 말을 띄워 두고 수십 번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는 중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나에게 많은 일이 있었다. 이제는 내 마음의 그릇이 조금 커진 건지 담담하게 (많은 일이 있었다-)라고 단순한 표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더 이상 사람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수일을 베갯잇에 얼굴을 파묻고 울거나, 내 마음에서 덜어 준 배려와 사랑을 아쉬워하여 상대를 원망하지 않는다. 이런 행위들로 보았을 때 분명히 나는 작년에 비해 눈에 띄게 성장했다.




[부디 평온한 호수와 같은 사람으로 성장하길-]


매년 아니 달의 마지막 날이 되면 하는 다짐이다. 평온한 호수라니. 사실 말이 안 된다. 나의 20대를 되돌아보면 나는 굉장히 맑고, 밝은 에너지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때도 지금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훨씬 더 유쾌했고, 사람에 대한 믿음과 배려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갈 즈음 내가 지니던 많은 밝은 에너지들을 잃어버릴 만한 일을 많이 겪어냈다. 그런 일들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삼십대의 중반으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은 조금 혼란스럽다.

가끔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있고, 지난날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모두 부정하고 싶을 날도 있다.


작년 가을, 내 안에 들끓는 분노와 화를 조금 가라앉히고 싶은 마음에 정신과 상담을 시작했는데, 선생님의 진심 어린 진료 덕분에 약물 치료 없이 오로지 상담만으로(!) 많은 부분들을 극복 또 해결하게 되었다.


나는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말을 참 좋아한다. 

그 말은 무엇이든 (내)(전부)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 말이다.


황금연휴를 앞두고 회사에 여러 가지 일이 한 번에 터졌다. 슬프게도 나는 그 사이 백신 2차 접종 예약이 잡혀 있었고, 연휴 내내 몸과 마음이 장맛비에 푹 젖은 택배 상자 같았다.


슬픔이 지속되던 중 정말 좋아하는 지인이 갑작스럽게 한국에 오게 되어 만남이 약속됐다. 사실 이 만남 덕분에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우리는 스무 살 참가한 해외 봉사단을 통해 만나게 됐다. 당시에도 한 팀이었던 23명의 선배들 중 나와 가장 마음이 잘 맞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혈기왕성한 20 대 23명을 한 팀에, 그것도 인도에서 2주 동안 가둬놓고 생활을 했으니 매일 사건 사고가 발생했고, 온갖 장르의 드라마를 찍고 있는 기분으로 생활했다. 그 전쟁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룸메이트가 되었고, 매일 밤 실링팬 아래 누워 한국에서 챙겨 간 떡볶이 그림을 보며 그림 속 떡볶이 맛을 상상하며 함께 웃고 스읍- 하고 동시에 군침을 흘리곤 했다. 우린 그렇게 작은 평화를 떡볶이 그림에서 찾았다.


봉사 활동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우리는 떡볶이를 앞에 두고 각자의 인생을 응원하며 시간을 보냈고, 지인의 직업과 결혼으로 인해 [미국-한국] 떨어져 지낸지도 벌써 8년이 지났다. 코로나 시작 전엔 이렇게 가을 즈음 지인을 만나기 위해 내가 미국에 방문하거나 또 다른 나라에서 만남을 가졌다. 


사실 우리의 만남에 대해서도 크게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 만남에서 우리의 만남을 되돌아보니 우린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리움에 이끌려 애틋하게 꾸준한 만남을 유지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작년 가을에 만나지 못했으니 거의 2년 만에 얼굴을 보았고, 만남과 동시에 그동안 쌓인 이야기들이 화수분처럼 쏟아졌다. 사실 이렇게 애틋한 사이지만 시차로 인해 메신저를 통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한다. 5-6개월에 한 번 정도 서로의 생사만 확인하며 현실에 집중해서 시간을 보내다 내가 1년에 한 번 미국으로 날아가면 3-4일 정도 같이 지내며 시간을 보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서로의 1년 치 근황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기에 사실 우리는 긴 시간과 사건을 압축해서 공유하는 것에 달인이 되어있다. 2년간의 이야기는 30분 길이로 쉽게 압축이 가능하다.


짧은 인사를 뒤로하고 서로의 근황을 준비한 것처럼 막힘없이 쏟아내고 이야기가 끝이 나면 늘 그래왔듯 함께 울고 웃고 위로했다. (너의 마음을 이해해.) (많이 힘들었겠다.) (너무 멋있는데?) (정말 대단하잖아!)라는 말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오글거린다고 표현하는 말들도 거리낌 없이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사이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과의 만남을 좋아한다.


물론 이번 대화에서도 내 고민인 무해(無害)는 빠지지 않았다. 나를 스무 살부터 봐 온 사람이니 나의 변화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어 이 주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한다는 게 긴장되었지만 무해(無害)에 대한 나의 고민을 꼭 함께 나누고 싶었다. 나의 고민스러운 물음표 끝에 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보미야. 너는 여전히 예쁘게 살고 있어. 너무 예쁘다."


사실 (예쁘게 살고 있다)라는 말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지만, 순간적인 표현력의 한계로 고맙다는 말 밖에 전하지 못했다. 제대로 감사의 표현을 하지도 못한 채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아쉽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제대로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아쉬운 마음을 안고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로 진입을 하는 그 순간 멈출 수 없는 눈물과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 '예쁘게 살고 있어.' 라니 정말 너무 아름다운 말이잖아!." 부정적인 마음이 불끈 솟아오르는 시기였다면 내가 이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나, 진정 그런 삶을 살고 있나라고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하고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물과 함께 '잘 하고 있어.'라는 말보다는 '여전히' '예쁘게 살고 있어.'라는 말이 결국 무해(無害)와 일맥상통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뻗혀졌고, 적어도 내가 유해(有害) 하게 살고 있진 않구나라는 확신을 들게 해주었다.


그래. 해로움이 없이 살고 싶다는 건 나의 아주 단순하고도 큰 바람일 뿐이다.


무해하다 2 (誣害 하다) [거짓으로 꾸며 해롭게 하다.]


무해(誣害) 하게 살아가지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꽤 아름다운 삶을 사는 거지 뭐.


오랜 시간 동안 여전히 서로가 옆에 있음에 감사하고, 인생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을 가진 기분을 선물한다. 처음 만난 그때의 모습과 마음 그리고 신념을 지켜가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감사하다. 나 또한 같은 마음으로 내 인생에 부단한 노력을 기할 것이다.


우리가 늘 함께 하던 10월이 이렇게 지나간다.

지하철 게이트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나눈 말을 오랜 시간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응원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우리 자신이야. 건강히 잘 살다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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