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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치 Mar 28. 2020

새벽 5시, 119를 불렀다

혼자 아팠던 날의 사투

며칠 잠을 줄여가며 무리한 탓일까.

한동안 강행군이었던 일정을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냈더니 몸 상태가 썩 좋지 않다.


잠을 일찍 자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침대로 향했다.

얼마 전부터 조짐이 보이던 두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속까지 불편한 게 체기도 있는 듯 하다.

일 년에 한두 번 심하게 아픈 날이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이 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시간이 지나도 두통은 쉽게 잔잔해지지 않고 속은 이제 함께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자야 한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


두통과 씨름하며 끙끙 대다가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를 훌쩍 넘겼다. 일어나 앉는 순간 무언가 치고 올라오는 느낌에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간다. 저녁에 먹었던 음식을 떠올려보니 몸서리가 쳐진다. 아무래도 급체 한 것 같다.

그래도 속을 비웠으니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비틀거리며 침대에 몸을 묻는다. 물로 입술을 축이며 다시 잠들기 위해 노력하다 또다시 입을 막고 화장실로 향한다.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는데 변기를 붙들고 있으려니 괴롭다. 물도 마시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몸이 차가워지고 엄청난 한기가 몰려왔다. 손도 사시나무 떨 듯 떨리고 통제가 안 되는 게 상태가 심각하다. 혹시 탈수 증상일까? 두통은 계속 심해져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날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 아무래도 병원을 가야 할 것 같다.


먼저 119에 전화했다. 잠에서 깬 깔깔한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새벽잠을 깨운 상대에겐 미안했지만 24시간 진료하는 병원이 어디 있는지 확인해보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 차를 운전해서 병원으로 가야겠다.


그런데 몸이 너무 힘들어 도저히 운전해서 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차 있는 지하주차장까지 온전히 내려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럼 어떻게 하지? 택시를 불러야 할까?

택시를 타려면 도로변까지 나가야 하는데 역시 걸어서 멀쩡히 나갈 자신이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옷을 힘겹게 갈아입고 식은땀을 흘리며 잠시 침대를 움켜쥐고 앉았다.


그대로 까무룩 잠이 든 것 같다.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새벽 5시가 넘었다.

고민만 하다가는 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다시 119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아까의 그 깔깔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떨리는 목소리로 구급차를 보내달라 요청하고 한 10분쯤 지나니 구급차의 불빛이 보인다.


새벽이라 모두 잠든 시각, 사위가 고요해서 요란스럽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으로 나를 구하러 온 늠름한 소방대원들이 반갑다. 그 와중에 연예인 뺨치는 고운 얼굴이 섞여 있어 흘끔흘끔 시선이 간다.

한참 단잠에 빠져있을 시각일 텐데 나 한 명 병원에 데려다 주기 위해 세 명이나 왔다는 사실이 민망하고 미안했다.

그래도 새벽보단 몸 상태가 괜찮아졌는지 다행히 걸어서 차를 탔다. 심각한 상황인 줄 알고 왔던 이들은 조금 허탈했으리라. 꾀병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 체념하고 담요를 끌어 덮는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 시린 겨울처럼 차가운 손이 다가와 혈압을 체크한다. 이름과 나이를 물으며 같이 사는 이는 없냐고 묻는데 혼자라고 말했다. 마치 가족이 사라진 것 같아 마음이 울적하다.


하지만 괜찮다. 

혼자 살다 보면 으레 겪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의연하게 넘겨야 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을 텐데 그때마다 나를 살리는 연습을 해둬야 한다며 1인 가족의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어둠을 밀어내고 꽤 푸르스름해진 새벽하늘을 보며 병원 응급실로 들어선다.

엄마 대신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다가와 내 눈부터 살핀다. 하얗고 버석한 침대에 누워 투명한 액체가 똑똑 떨어지는 걸 확인하며 이제는 나를 돌봐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제야 스르르 눈이 감긴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다 괜찮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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