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리치 May 27. 2020

살찌는 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

<진화의 배신> 리 골드먼


내 몸무게는 고3 때를 제외하고 앞자리가 바뀐 적이 없었다.

늘 먹고 싶은 만큼 먹었고 먹는 것에 비해 살이 덜 찌는 체질이라며 아빠의 유전자에 감사하곤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바뀐 몸무게 앞자리는 예전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먹는 양은 변함이 없는데 눈에 띄게 줄어드는 활동량이 원인이었으리라.


그나마 집에서 살 때는 엄마의 집밥 덕분인지 많이 먹고도 체중이 고만고만하게 유지됐는데, 1인 가구가 되면서 배달음식을 먹는 횟수가 늘어나다 보니 체중 증가는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결과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재작년, 여행을 앞두고 구입한 수영복을 입었는데 원하는 핏이 안 나오는 것을 보고 1차 충격을 (당연한 것을), 내가 정해놓은 몸무게의 마지노선을 넘어섰다는 것을 알고 2차 충격을 받으면서 이제는 정말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되었고 '2kg 감량쯤이야'하는 얄팍한 마음으로 살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그랬다,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처음으로 먹고 싶은 걸 참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주 많이 매우 힘든지 알게 되었다. 성공하는 사람은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던 말이 온전히 이해가 되는 시간들이었다. 밤 9시에서 10시 사이에 미친 듯이 찾아오는 공복감 앞에 어금니를 깨물고 애써 다른 데로 신경을 돌리다가도 결국 '뭘 위해 이렇게까지 참아야 하나'라는 복잡한 심경으로 배민을 켜서 치킨을 주문했을 때의 좌절감이란.


그 뒤로 내 몸무게는 의도치 않은 몸 고생과 마음고생으로 자연스럽게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다 최근에 다시 엄청난 입맛을 과시하며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빠르게 상승세를 타고 있다.


도대체 나의 살들은 왜 이렇게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일까?



살은 태초부터 찌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리 골드먼 박사는 저서 <진화의 배신>에서 우리가 살이 찌는 이유를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인류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생할 수 없는 유일한 포유류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고자 인간은 태초부터 생존을 위한 형질을 타고났다고 한다.

그 형질은 4가지로 나뉘는데 1) 굶주림에 대비한 식욕과 열량 축적의 본능, 2) 탈수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물과 소금에 대한 욕구, 3) 싸울 때, 도망칠 때, 복종할 때를 판단하는 본능, 그리고 4) 출혈로 죽지 않도록 피를 응고시키는 능력이다.


살이 찌는 것은 바로 '굶주림에 대비한 식욕과 열량 축적의 본능' 때문이다.


굶주림은 개인뿐 아니라 생물 종 전체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기에 우리 본능과 인체 내 조절 장치는 과식을 하더라도 필요 이상의 양을 흡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과거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 대부분은 조상들이 겪었던 식량 부족을 평생 겪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유전 형질은 마치 그런 일이 벌어질 것처럼 우리 몸을 작동 시킨다.


게다가, 인체는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인간은 맛과 질감, 모양까지도 다양하게 섭취할 수 있을 때 음식을 계속 먹도록 자극받는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다양한 음식을 원하는 욕구로 인해 우리 조상들은 균형 잡힌 식생활을 할 수 있었고 그 당시에 먹었던 음식들은 밍밍하고 단조로웠기 때문에 이러한 본능이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인들은 우리 조상들보다 훨씬 더 많이 먹고 훨씬 더 적게 움직인다.

화려한 디저트들로부터 손쉽게 넣을 수 있는 단맛과 감칠맛에 간이 짭조름하게 베여있는 다양한 음식들, 풍부한 향미와 가지각색의 질감까지 오늘날의 음식은 우리의 미각을 자극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오감을 사로잡는다.

뿐만 아니라 현대의 음식은 구석기 시대에 먹던 음식보다 열량 밀도가 훨씬 높고 영양이 많이 집적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배부를 때까지 먹는다는 것은 과거 조상들보다 훨씬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 많은 음식들을 넘치게 먹고도 우리는 선조들처럼 생존을 위한 수렵이나 채집활동을 위해 걷거나 뛰면서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는다. 사무실에 앉아 몇 시간이고 일만 한다. 후식으로 달콤한 디저트와 커피도 챙겨 먹으면서. 당연히 열량은 몸에 그대로 축적된다.


책을 읽고 나서 (저자도 언급했다) 살이 찐다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죄책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 신체는 생존을 높이기 위한 형질의 영향으로 먹는 본능을 타고났다. 음식을 많이 먹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음식이 몸에 저장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다이어트하는 것이 우리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본능을 이겨야 한다니 듣기만 해도 힘들다. 그래서 다이어트는 성공보다 실패 사례가 많고 지속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뺄 것인가?


이런 몸매를 미친 듯이 갖고 싶지만 미친 듯이 먹고 있다

저자는 식단을 조절하거나 운동량을 늘리는 한 가지 방법에만 의존해서는 성공하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우리는 먹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고 요즘 환경은 운동하지 않고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많은 편의 시설들이 갖춰져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다양한 이유와 방법을 제시하며 다이어트의 성공 여부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는 식의 강한 확신은 주지 않는다. 그만큼 한번 찐 살은 빼기가 극심하게 어렵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온 것은 '환경'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체중은 속해있는 집단의 사회적 규범에 따라 조절되기도 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의지'만으로 살을 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어조도 무척 흥미로웠다.

의견을 종합해보면 식단과 운동을 병행하는 것은 기본이요, 나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적 시선까지도 다이어트에 영향을 미친다니 살 빼는 일은 꽤 복합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임이 틀림없다.


살을 빼기 위해서는 개인의 살을 빼고자 하는 의지 보다 살을 뺄 수 있는 환경에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 우리가 아는 기본(=식단 조절과 운동)을 충실히 병행할 수 있다면 너무나 힘들어서 사람들이 대부분 시도조차 안 한다는, 하지만 시도하면 어쩌다 한 번 성공한다는 다이어트 성공기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살 빼기는 복권을 긁는 것과 같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책을 통해 내 몸이 갖춘 성질과 본능에 대해 이해했으니 보다 현명한 방법으로 적절한 다이어트를 시도해 올여름에는 탄탄한 복근을 가져보는 복권에 당첨되길 꿈꿔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공하는 조직의 3가지 특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