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하리
* 책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었습니다. 상세한 내용을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인용하는 부분과 인상 깊었던 문장을 기록한 부분이 있으니 주의하세요.
“한 달에 딱 1권만이라도 읽고 기록해 보자”
적어도 한 달에 한 권은 읽어보자는 2025년도의 늦은 목표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파도가 훑고 지나간 것처럼 기억이 흐릿해지기 십상이었다. 어느 날 책을 보았을 때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내가 이 책을 다 읽었는지, 읽다가 말았는지. 이런 증상은 특히 휘몰아치며 읽은 소설에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예전에 읽었던 '라플라스의 마녀'의 내용은 다른 소설 내용과 뒤엉켜 뒤죽박죽이 되었다. 소설책은 나에게 있어 일탈과 같은 재미를 선사하는 매체였기에 그렇다 쳐도, 시간을 많이 들여 읽은 책들이 휘발되는 것은 지독하게 아까웠다. 그래서 겸사겸사 시간 날 때마다 책을 들여다보는 습관도 만들고, 기록함으로써 휘발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시작한다. 다 읽지 못해도 항상 책을 옆에 두는 습관을 만들고 나니 확실히 전보다 책을 많이 들여다보게 된다.
책을 선택한 이유
매직필(Magic Pill) 요한 하리 작가의 책이다. 이 책을 써야겠다고 해서 고른 것은 아니고, 최근에 읽은 책이 이 책이다. 이 책을 알게 된 경로는 조승연님의 유튜브에서 책을 소개하는 영상 앞부분을 보고 직접 읽어봐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요즘 몸에 관한 관심이 부쩍 많았기에 고민 없이 선택했다.
‘몸’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년이 안 되는 것 같다. 여기서 진정한 관심이란 몸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과 금정적인 투자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과 노력, 돈을 투자한다고 해서 엄청난 체중 감량을 목표로 하고 있거나, 굉장히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지는 않다. 보다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은 음식이다. 즉, 입 속으로 들어가 나의 몸을 구성하는 ‘먹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미국에서 고작 1년 동안 생활하며 5~6kg를 증량해 역대 최고 몸무게인 63kg에 도달했다. 원래 몸무게가 잘 늘어나지 않고, 줄어들지 않는다. 아프다고 해서 몸무게가 쏙 빠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혈육인 오빠는 아프면 2~3kg가 금방 빠져버리는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다.)
아무튼 웬만해서 변화가 없던 몸무게가 6개월 만에 5kg가 늘어버린 것이다. 성장하며 점진적으로 천천히 늘어나던 나의 몸무게는, 순식간에 엄청난 큰 변화를 맞이했다. 그와 동시에 음식을 먹은 뒤 밀려오는 식곤증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눈앞이 흐릿해지고, 항상 기운이 쭉 빠진 쇠약한 상태에 도달했다. (밥을 먹고 나면 너무 피곤해져서 밥을 먹기 싫었던 적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때는 몰랐는데, 요즘 흔히들 부르는 ‘혈당스파이크’ 현상인 것이었다. 심할 때에는 점심을 먹은 뒤, 업무에도 영향이 있을 만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음식을 집어넣으며 정신을 깨우는 안 좋은 습관을 꾸준히 쌓았다. 이런 정신과 몸으로 일을 하다 보면 일을 위해 에너지를 쏟는 게 아닌, 일을 하기 위한 몸과 정신을 만드는 것에 굉장한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운동 준비과정에서 모든 에너지를 다 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절실하게 몸이 한계에 달했음을 느꼈고, 천천히 습관을 바꾸기 위해 움직였다. 먹던 양을 줄이고 천천히 씹어먹으며 자연스레 8kg가량 감량했다. 수치나 외관상으로 보이는 변화보다 이제는 밥을 먹은 뒤 식곤증이라는 증상이 눈에 띄게 사라졌고, 업무까지 돌아가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게 되었다. 마치 편두통으로 매일 시달리던 사람이, 어느 순간 편두통이 사라져 개운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먹는 음식이 몸에 주는 영향을 천천히 느끼며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레 몸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
책의 내용
p.78
가장 흔히 사용되는 인공 향료는 바닐린이다. 바닐린은 석유 화학제품이나 목재 펄프, 톱밥 같은 것들을 이용해서 화학적으로 만들어낸 가짜 바닐라다. 버터 맛이 나는 식품은 버터가 아닌 0.02퍼센트의 ‘버터 추출물’에 수많은 첨가제를 추가해서 만든다.
위의 문장을 본 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기원을 알 수 없는 음식에 대한 호기심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위와 같은 내용을 다루는 부분은 굉장히 일부분이다. 앞부분을 제외하고는 다이어트 약물인 ‘오젬픽’에 대한 연구, 인터뷰의 내용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에게는 실험과 같은 연구적인 글이 흥미롭지 않아 중간 부분이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저자가 실제로 오젬픽을 8개월 이상 투약 했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그는 과연 어디로 향하게 될 것인지 궁금한 마음에 계속 읽어 내려갔다. 책의 중반부터 후반부까지는 약의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오젬픽을 끊지 못하고 계속해서 사용한다. 여기서 간극이 발생한다. 이 간극에서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묘한 기분이라고 함은, 저자가 계속해서 합리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많은 갈등과 고민의 흔적들이 책에 나타난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자신과의 내적 갈등을 벌이고 있다고 느낀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내가 느꼈던 묘한 간극은 책이 끝나갈 즈음, 저자의 절친한 친구가 속 시원하게 이야기함으로써 해결이 되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자신은 그 목적을 위해 일단은 계속 오젬픽을 투약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요한 하리의 다른 책인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유명한 책이었기 때문에 ‘유명한 책을 쓴 유명한 작가’가 자신의 모순을 인정할 것인가?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마땅히 그럴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읽을수록 팔짱을 끼고 지켜보게 되는 태도가 되어버렸다. 약을 중단하고 언젠가는 약이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란 응원의 마음이 뒤섞인 채로 말이다.
인상 깊었던 문장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 3개를 뽑았다. 연구 관련한 내용은 없다. 기록한 글들의 페이지를 비교해 보니 100페이지가량 뛰어넘긴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이 바로 연구 관련 내용이었다.
p.93
가공식품은 우리의 에너지 수준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음식을 섭취하면 몸은 그걸 혈당(몸의 주된 에너지원)으로 분해하고 온몸으로 보내서 하루 종일 힘을 낼 수 있게 한다. 혈당 수치가 떨어지면 에너지가 고갈되고 다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신호를 받게 된다. 급작스럽게 높여준 에너지와 혈당은 금방 떨어지기 때문에 순식간에 배가 다시 고파지는 것이다. 스펙터는 “이렇게 짧은 피크타임을 자주 가지게 되면 계속해서 식욕이 자극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했다.
요즘 한국에서는 ‘혈당’이라는 주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현대 사회의 건강 지식이 많이 향상되었음을 느끼고 있다. 미국에서 식곤증, 즉 ‘혈당 스파이크’와 365일을 함께 보냈기에 자연스레 ‘혈당’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책에서 등장하는 아래 문장은 ‘혈당’이라는 것에 대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레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 상황이 줄어든다.
p.322
우리 앞에는 두 가지 임무가 놓여 있다. 몸이 어떻든 내 몸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최대한 내 몸이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건강한 몸을 만드는 법도 배워야 한다. 둘은 충돌하지 않는다. 둘 다 자기애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보비는 “양자택일을 할 필요가 없다.. 둘은 언제나 함께 갈 수 있다”라고 믿는다.
‘몸이 어떻든 내 몸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에 굉장히 공감하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현실에 살고 있다. 며칠 전 SNS에서 연예인, 인플루언서, 패션 관련 계정들의 팔로잉을 취소했다. 처음에는 그들의 패션이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패션이 아닌 군살 하나 없는 매끈한 복부와 길쭉하고 날씬한 다리들이었다. 매일 그런 매체를 보다 보니, 어느 순간 이상한 지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내 몸이 이상한 게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가끔 보며 인사이트를 얻는 것과 그들을 팔로우하고 매일 올라오는 게시글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몸을 혐오하기 시작했으며, 우울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다 끊어버렸다. 가끔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매일 몸을 움직이며 행복을 느낀다. ‘가치’를 외부가 아닌 ‘나의 내부’로 들였다. 전보다 내가 더 사랑스럽고 대견하다.
p.333
음식을 맛있게 만들기 위해서 버터, 레몬, 허브, 소스 같은 것을 첨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요리는 정반대예요” 말하자면 “줄여나가는 조리법”이다. “없던 것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풍미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재료의 원래 맛을 최대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인에게는 줄이는 것이 늘리는 것이었다.
요리라고 하면 ‘재료를 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본 요리는 ‘줄여나가는 조리법’이라고 하니 흥미로웠다. 음식의 풍미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다양하고 많은 재료의 향신료와 소스들이 들어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