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은
최근에는 긴 호흡을 가지고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아무래도 취업 준비를 하다 보면 책은 사치가 되어버린다. 적고 싶은 글을 적는 것 또한 허락되지 않으며 취준 이외의 일을 할 때마다 올라오는 약간의 죄책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즉, 지금도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며 글을 적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비교적 한 달에 한 번씩 적는 일은 일주일 연재보다는 큰 부담이 없으니, 6월이 가기 전에 완성해 올릴 수 있기를 바라며,
5월에 한 권이라도 적기 바라며 적어두었지만, 결국 6월이 되고 나서야 올리게 된다.
책을 읽을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는 단편집을 선호하는 요즘이다. 오래전부터 조금씩 읽어왔던 유명한 단편집이다. 책과 가깝지 않은 나에게까지 이 책의 유명세를 접했을 땐, 책보다는 책 표지의 그래픽이 특이하다는 소식이 먼저 들어왔다. 내 기억으로는 한창 3D 트렌드가 디자인계를 휘어잡고 있었을 때일 것이다. (아닐 수도 있지만) 나에게 '유명한' 책이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없었다. 이상하게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책들에겐 약간의 경계 태세를 하고 다가가게 된달까. 본격적으로 읽을 생각은 없었는데, 술술 읽히는 상황은 그 유명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책을 선택한 이유
LA Cerritos에 위치한 도서관에 있는 한국어로 된 책 중 내 눈에 띄는 유명한 책이었다. 한국이었다면 이미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 책에서 사람들의 손이 느껴졌을 텐데 여기에서는 반듯한 새책과도 같았다. 웃긴 이야기지만, 반듯한 새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조금 광적으로. 낡은 책은 읽고 싶은 책이 아니고서 자진해서 빌리는 일이 없다. 반듯한 새책의 형태와 유명한 명성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큰 기대를 하고 빌린 것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 안에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 주기에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역시 '추리, 스릴러'를 좋아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장편만을 좋아하는 사람이 단편에게도 눈을 돌리게 된 계기를 선사해 줬다. 항상 외국 작가들의 유명 추리 소설들만 읽은 반면에, 이 기회를 통해 한국 작가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외국 소설들은 번역체와 가끔 이해되지 않는 문화 차이로 굉장히 멀리 동떨어져있음을 느끼곤 했다. 묘한 이질감을 느끼며 읽었던 외국 소설과 다르게, 한국 소설에서 맞닥뜨리는 괴리감은 적었다.
긴 호흡으로 읽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면, 단편집을 굉장히 추천한다. 아쉬운 점은 더 읽고 싶은데, 끝나버리는 것만 빼면 말이다. 그동안 긴 호흡이어야만 등장인물들과의 깊은 유대감과 친밀감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 길이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의 단편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찾아오는 아쉬움과 감정들은 장편을 넘어서기도 했다. 비교적 짧게 끝나버려 그런 걸까, 그들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 같은 기분과 더불어 좀 더 엿보고 싶은 욕심과 함께 그들을 보내줘야 한다. 장편을 읽을 때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다.
책의 내용
할로우 키즈
고기와 석류 ♥︎
릴리의 손 ♥︎
새해엔 쿠스쿠스
가장 작은 신
나쁜 꿈과 함께
유니버설 캣숍의 비밀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
단편집에 맞게 짧은 호흡으로 너무 무겁지 않게 슥-슥 읽을 수 있다. 되돌아보면 좋았던 점은 내용들의 주제가 지극히 달라 다양한 취향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고기와 석류', '릴리의 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무래도 강렬한 컨셉을 가지고 있어 그런지 뇌리에 크게 박히는 것이다. 읽은 지 오래되었어도 그때의 전율이 다시 기억나는 것은 단연 '릴리의 손'. 스포일러를 죽도록 싫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책에 관한 후기를 찾아보진 않았다. 그랬지만, 왠지 다들 '릴리의 손'을 많이 언급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고기와 석류'는 늑대소년이라는 영화가 떠올랐으며, '릴리의 손'은 디스토피아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짧은 단편집이기 때문에, 줄거리에 대한 내용은 생략하겠다. 단편집의 줄거리를 소개한다면, 책 내용을 다 알려주겠다는 의미와 같지 않을까. 잘 정리한다면 오히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겠지만, 그럴 자신이 없어 줄거리와 자세한 내용 건너뛸 것이다.
추리/스릴러 책을 읽으며 가장 짜릿한 순간은, 내가 추측하고 있는 진실이 '설마, 설마' 하며 다가오는 순간이다. '설마'의 순간이 진실이 되어 나에게 다가오는 그 순간 온몸의 전율을 느낄 수 있다. 심장이 빠르게 뛰며, 한시라도 빨리 다음 장을 보기 위해 눈과 손이 빠르게 움직인다. '릴리의 손'을 읽으며 그러했다. 마지막을 향해 다다르며 조급해지는 마음을 잊을 수 없다. 이렇게 평한다고 해서, 너무 기대는 말았으면 한다. 누군가에게는 취향이 아닐 수도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