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다닐 적엔 기숙사-셰어하우스-통학-자취의 굴레에서 살았기 때문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것에 꽤나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집을 나와 고생을 하다 보니 본가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는 흔한 이야기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한 달 채 남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나는 또 이사를 했다. 미국에 오자마자 지낸 집, 어쩌다 함께한 집, 한 달 살게 된 집. 오늘은 마지막 집에 대한 이야기이다.
2번째인 '어쩌다 함께한 집'은 말 그대로 정말 어쩌다 함께하게 된 집이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풀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라며. 그 '어쩌다 함께한 집'에서 더 지내지 않고, 새 집을 구하게 된 연유는 룸메이트들과 함께 살던 집의 계약이 11월에 끝나기 때문이었다. 룸메이트들이 살던 도중 대뜸 들어와 같이 살게 된 터라, 나의 시기와는 맞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2주 동안 정말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조금 늘어놓아 보자면 이사 일정과 프로젝트 최종 PT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PT 일정을 맞추지 못할까 봐, 완성도가 떨어지는 발표를 하게 될까 봐 머릿속에는 온통 'PT'밖에 없었다. 집에 오면 저녁을 먹고 난 뒤 짐을 정리하고 PT를 준비하고 쓰러지는 게 일상이었다. 사람은 가끔 말도 안 되는 일정을 초능력을 발휘해 소화하곤 하는데, 딱 그런 순간이었다.
동고동락하던 룸메이트와 퇴근 후 며칠 내내 쉬지 않고 짐을 정리했다. 치워도 치워도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진귀한 경험을 했다. 스스로 나름의 미니멀리스트라고 생각해 왔는데 나의 상황은 진정한 맥시멀리스트였음을. 짐도 짐이지만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쓰레기들이 나왔다. 이사를 함으로써 이렇게 많은 쓰레기들이 나오는 게 맞는 것일지 부채감이 밀려왔다. 사람은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많은 것들을 소유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내가 타인과 다르게 가지고 있는 것들이 적다고 생각이 될 때 어쩌면 이사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일단 복잡한 생각들은 접어두고, 무거워서 혼자 들지도 못하는 짐을 옮기는 것이 관건이었다. 바퀴가 6개나 달린 나의 이민가방은 계단을 내려올 때 여자 3명이 붙어 겨우 내렸으며, 바퀴가 많이 달린 것이 무색하게 잘 밀리지 않았으며, 우버 기사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차에 싣는 것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심지어 놀라운 것은 이미 40kg가량의 짐을 한국으로 보냈다는 사실이다. 한 달 동안 정말 필요한 것만 남겨두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은 여차저차 이사를 끝냈다. 짐을 푸는 동시에 다시 싸야 하는 상황에 놓였지만.
이렇게 이사를 다니다 보니 더 이상의 짐을 늘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물건을 하나 구매할 때마다 내가 이고 지고 가야 할 짐이라고 생각하면 정이 떨어져 버리곤 한다. 하지만 나는 망각의 동물이기에 이 순간들을 또 반복할 것이다.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지.
+ 여담
너무 정신이 없어 그때의 사진을 기록하지 못했다. 꽤나 진귀한 마지막 순간이었는데 아쉬운 마음이 이제야 든다. 귀찮더라도 꼭 카메라를 드는 순간이 많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