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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Feb 18. 2020

그래, 유치원을 옮기자.

아이를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

오늘 첫째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했다. 우리 첫째는 어린이집을 비롯해서 유치원 졸업까지 총 4군데를 다녔다. 7세 인생에서 4곳을 벌써 다녀왔다니 엄마 참 별나다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래 맞다. 나는 별나다.

처음 어린이 집은 내가 직장에 복직하기 위해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던 어린이집을 다녔다. 나이가 많으신  원장님이 운영하는 어린이집,  그 곳을 보냈다는 같은 직장 동료의 추천으로 그 곳을 믿고 보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던 그 편리함은 둘째를 등에 업고 첫째를 보내야 했던 시어머님을 위한 배려였다.


그리고 4살이 되었을 때, 동네의 종교 어린이집을 보냈다. 4세부터 7세까지 받아주는 곳이고, 나의 종교관에 맞추어 그곳을 보냈었다. 담임교사도 수녀님이셨는데 정말로 첫째 아이를 예뻐해 주셨다. 그리고 내가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사를 오고 동네에 가까운, 그리고 시설이 정말 좋은 유치원을 보냈다. 화려한 원복과 아름다운 건축물 그리고 그 유치원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교구들, 화려한 방과 후 수업까지 너무 마음에 들었었다. 그런데 일 년이 끝나갈 때쯤 불편한 그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대형 마트 체험이 있었다. 마트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 온다며 돈과 무엇을 사 올지를 정해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오이를 사 오라고 했다. 그날 저녁에 딸아이가 사 온 오이로 저녁 반찬을 해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날 오이를 사서 온 아이는 우리 딸뿐이 없었다. 모두 뽀로로 음료수와 과자를 사서 그 자리에서 먹었다는 것이었다. 아! 뿔! 사! 정보력이 늦은 엄마를 둔 우리 딸만 모두가 음료수와 과자를 먹고 있을 때 혼자 무거운 오이만 들고, 먹고 있는 다른 아이를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유치원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유치원에서 독서 골든벨이 있다고 알리는 전화였다. 나는 알고 있고, 그 책을 열심히 읽어주고 있다고 말을 하니 선생님은 "어머니, 숫자를 1부터 3까지는 쓸 수 있어야 해요. 오늘부터 집에서 연습 좀 시켜주셔요!!" 오~~ 마이갓!! 나는 책은 정말 많이 읽혀주었고, 영어 CD도 많이 들려주었지만, 단 한 번도 연필을 잡고 숫자를 써 본 적은 없었다, 그제야 아이가 미술 시간을 힘들어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때 전화기에 대고, 어떻게 5살 아이에게 골든벨을 하기 위해서 숫자 쓰기 연습을 집에서 시켜오라고 말하냐고 묻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그때 나는 "우리 아이만 숫자를 못 쓰나요?" 한숨을 쉬고, "네, 집에서 연습시킬게요."하고 전화를 끊었었다. 그리고는 정말 한 동안 숫자 연습을 많이 시켰다. 그러다 생각을 해보니, 5살 아이에게 독서 골든벨을 위해 숫자를 쓰게 연습시키는 것은 아니다 싶어서, 그냥 그 행사 재미나게 하라고만 했다.

 유치원 학부모 참여 수업 때도 너무 보여주기 식 수업에 불편했다. 아이들이 얼마나 연습했을까? 이렇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이 중요할까? 선생님들은 또 얼마나 힘들까? 신랑과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제 유치원 행사는 오지 말자. 부모에게 보여주기 쇼 같다."라고 말이다.


결정적인 사건은 학년 말에 터졌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첫째 아이 친구 엄마가 전화가 왔다. 같은 반 남자아이 이름을 대며, 그 아이가 친구들을 자꾸 때린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엄마 별나구나 생각하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 얼굴에 생긴 흉터, 그리고 아이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나니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유치원에 찾아갔었다. 그때 난 별난 엄마가 되었다. 나의 아이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나는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 유치원에서는 그 아이를 나의 아이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 주겠다는 말을 해주었다. 한 2주 정도는 괜찮더라,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또 똑같아지고, 학년말까지 기다리고 원장에게 들었던 말은 "내년에는 그 아이와 같은 반이 되지 않도록 해주겠습니다." 내가 원했던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아이를 위해 그 아이를 그 유치원에 못 다니게 하는 것이었을까? 아니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진짜 내가 원했던 유치원의 가장 기본이 달랐던 것 같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다양한 활동, 보여주기 식 교육활동, 피아노, 영어, 중국어, 한문, 미술, 블록 이런 것이 아니었다. 유치원에 전화를 걸어서 오늘부터 유치원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아이를 내가 온종일 돌보았다.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딸아, 무슨 일이든 엄마에게 말하고, 함께 해결하자. 엄마는 언제나 너의 곁에서 도와줄게." 그리고 신랑에게 말했다. "유치원을 옮겨야겠어." 그때 시어머니와 신랑의 반대는 장난이 아니었다. 아이가 크면서 싸우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지 유별나게 행동한다고, 다음 해부터 그 아이와 다른 반이면 되는 거 아니냐고, 아니 그건 아니었다. 나의 딸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단 2주뿐이 유지되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유치원을 다니면서 내가 느꼈던 마음 깊숙한 곳의 불편한 그 무엇,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던 그런 기분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치원 교육의 기본은 무엇인지를, 그리고 앞으로 내가 나의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킬지까지 이야기하며, 신랑을 설득시켰다.  "그래, 유치원 옮기자!"라고 말해주신랑이 참 고마웠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아이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교육이었다. 정말 감사하게 우리 아이는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율적인 아이로 자라도록 이끌어주는 그런 유치원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유치원을 옮기고 힘들었다. 하지만 입학할 때  다른 아이의 몸에 손을 대면, 그때는 유치원의 조치에 따르겠습니다.라는 내용에 서명을 할 때 내가 느꼈던 안도감을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다. 6살인 아이에게 스스로 배변 뒤처리, 젓가락질하기, 스스로 옷 입고 벗기, 우유 스스로 뜯기, 다 먹은 우유 스스로 접기 등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런 것들을 하기 힘들다고 우는 아이를 보고, 시어머님은 언짢아하셨다. "그냥 그 유치원 보내지, 왜 옮겨서 아이를 힘들게 하냐"라고 하지만 엄마가 아이의 몸종이 되는, 교사가 아이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그런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생각하며 묵묵히 속상한 마음을 삭혔다. 그렇게 일 년을 잘 적응해 준 딸, 적응을 도와준 선생님들 정말 감사하다. 일 년이 지나니 아이는 스스로 하나 씩 해 나갔다. 아주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봐 주었다. 예민한 성격의 딸이라 잘하고 싶어서 울기도 하고, 마음대로 안된다고 울기도 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유치원 교육은 영어를, 한글을, 한자를 알아가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이 정서적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유치원 졸업식이었다. 그동안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처음 유치원을 옮겨왔을 때 적응을 잘 도와주셨던 작년 담임 선생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제 며칠 뒤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한다. 하지만 새로운 초등학교 입학은 걱정이 되지 않는다 다만 그 전 유치원의 엄마들과 함께 초등학교를 배정받았으니 별난 엄마라고 나에게 붙여져 있는 이름표가 아주 조금 걱정될 뿐이지만, 난 나의 딸을 위해 기꺼이 별난 엄마가 될 것이다. 나의 아이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아니라고 기꺼이 말해주고, 내 아이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부모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언제나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사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자칫 잘못하면 내 자식만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그런 이기심으로 올라올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학년말 생활기록부를 고쳐달라고 전화 오는 학부모를 보면 학생부 담당자로서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해 달라는 그 학부모의 요구, 조국 사태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 가장 뿌리 깊은 곳에는 가족이기주의가 있음을 안다. 내가 말하는 것은 가족이기주의가 아니다. 내 아이만 잘 보살피면 된다라는 그런 것이 아니다. 원칙이 바로 서는 교육을 말하고, 아이의 삶  속에서도 그 원칙이 바로 서는 삶이다. 옳고 그름이 분명하고, 나에게도 적용되는 원칙이 타인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것은 칸트가 말한 보편적 입법의 원칙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유치원 졸업식에서 다른 엄마들이 하는 이야기, 누구는 어느 영어학원 다닌다더라, 누구는 무엇을 한다더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나는 이미 학원 하나 보내지 않는 별난 엄마, 다른 아이와 다툼이 있었다고 유치원을 옮겨버리는 엄마라고 이름표 붙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원칙과 내가 생각하는 내 아이를 기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놓지 않으며 오늘도 한 발 한 발, 내 아이와 함께 세상으로 한 발짝씩 나갈 것이다. "딸아, 졸업 축하해! 그리고 새롭게 펼쳐질 의 삶을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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