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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이 Jan 09. 2023

나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초고도비만의 어린 시절 이야기


"어릴 때부터 나는 뚱뚱했다"라는 식상한 구절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렸을 때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뚱뚱한 줄 알았다. 미디어가 지금만큼 발달되지 않았고, 나는 허리둘레가 50인치에 육박하는 초고도 비만이었다. 100킬로가 넘는 사람은 내 주변에 나밖에 없었다. 살면서 나보다 허벅지가 두꺼운 사람 또한 본 적이 없었다. 20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평생 살을 못 뺄 줄 알았다. 뚱뚱한 사람도 있고 날씬한 사람도 있잖아..라고 나를 위로하며.. 그렇게 예쁜 대학시절을 보냈다. 내가 살이 찌지 않았더라면, 살에 대해 쓸 돈과 시간을 다른 곳에 투자했더라면 난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나랑 비슷하게 먹고도 살이 찌지 않는 요즘 유튜버들을 보면 억울해 미칠 지경이다.

 

 어머니는 나를 많이 사랑하셨다. 또 어린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을 억지로 뺏어가며 식이조절을 시킬 만큼 잔인하지 못했다. 비만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학대라고 하지 않던가.

20살,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미안하다며 우셨다. 가을이었나.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또렷이 기억한다. 자괴감, 자기혐오, 분노, 슬픔, 미안함.. 그 모든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의 식욕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만큼 위대했고(?!) 다이어트 결심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날도 치킨과 피자를 시켰다. 참으로 대단하고 고약한 식욕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나는 창피한 자식이었다. 엄마에게 물어보지 않았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맛있는 반찬을 하면 나에겐 눈치를 주고 오빠 쪽으로 반찬을 옮겼다. 밤에 너무 배가 고파서 뭐 좀 먹으려고 하면 엄마는 나를 크나큰 죄인처럼 대했다. 그래서 엄마 몰래 숨어서 먹었다. 라면, 과자, 사탕, 초콜릿을 잔뜩 사 와서 방에서 몰래 먹고, 옷장에 쑤셔 박았다. 쓰레기에서 벌레가 꼬이기 시작하면 엄마가 발견했고, 그 쓰레기들을 거실에 펼쳐놓고는 나보고 정신병이 있냐고 나무랐다. 그러면 난 더욱 숨어먹고 다시 쓰레기를 방에 처박았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 신체검사가 싫었다. 정말 너무 싫었다. 아무리 며칠 전부터 굶어도 내 몸무게는 줄지 않았다. 그 어린 나이에 몸무게를 조금 줄여보겠다고 설사약을 먹기도 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강당에 모두 모인 상태로 앞에 나가서 몸무게를 쟀었는데, 내가 몸무게를 재려고 앞으로 나가면 아이들은 로또번호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체중계에 뜨는 몸무게 숫자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공개처형이었다. 아직도 그 아이들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와 그 체중계를 가리려고 안간힘 쓰는 그 어린 날의 내가 잊히지 않는다! 남자아이들은 숫자를 확인하고는 방방 뛰면서 소리를 질렀다. 전교에 이미 나의 몸무게가 퍼지고, 그 소리를 들은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내 욕을 했다. 그중 나랑 친했다고 생각했던 여자아이가 바로 내 앞에서 귓속말로 다른 애들에게 내 몸무게를 알려주기도 했다. 또 수업 중간에 방송으로 이름 부른 학생들은 보건실로 오라고 했는데 이름을 불린 학생들이 전부 과체중, 비만이었다. 보건실로 가면 따로 체중과 몸무게를 쟀다. 한창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할 나이에 사회적으로 주는 공개망신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아이들이 이성에 눈을 뜨고 나서부터 남자애들 눈에는 나는 그냥 돼지였다. 여자아이들 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부터는 괴롭힘이 점점 심해지고 노골적이기 시작했다. 나의 시험지에 몰래 빨간색으로 돼지라고 적어놓던지, 아니면 뒤에서 물총을 뿌리던지, 껌을 붙여놓은다던지, 나를 없는 사람처럼 무시한다던지.. 이 모든 것이 내가 살이 쪄서 일어난 일이다. 하다 못해 담임선생님이라는 작자도(중2 때 담임인데 아직도 이름이 기억난다, 영어선생님이었다.) 나를 무시했다. 살이 쪘다는 이유하나만으로, 그것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명백한 차별이었다. 그 당시 나는 자기혐오가 극에 달아서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거울을 보지 않았다. 샤워를 할 때 모든 거울을 가려놓고 했다. 다음날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학교를 때려치우고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했다.

 아직도 이때의 기억은 나를 괴롭힌다. 내가 성격이 모난 것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대로 듣지 못하고 꼬아 듣는 것도 이때의 기억이 남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이들이 공부에 하나둘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살에 대한 놀림과 관심은 많이 줄었지만 그것이 근본적으로 나를 정상인(?)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라서 나는 항상 다이어트와 공부 그 어딘가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이 당시 했던 다이어트가 아직도 기억 남는데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셰이크 다이어트였다.

 쿠키앤크림맛, 바닐라맛, 초코맛... 아침, 저녁으론 셰이크를 먹고 점심은 급식을 반절정도 먹었다. 이때 당시 몸무게가 110킬로였는데 셰이크만 먹고 한 달에 14킬로를 뺐다! 경이로운 기록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변화지만 교복이 조금 입기 편해지고, 얼굴이 조금 슬림해지고, 걷는 것이 편해졌다. 14킬로를 빼면서 살짝 자신감이 생기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쯤 신체검사를 했었는데, 나랑 다니는 친구가 48킬로였다. 하필 48킬로.. 신체검사 날 무슨 일이 일어서 교무실에 갔는데 담임이라는 작자가 아주 큰소리로 "넌 네 친구랑 2배 차이가 난다. 넌 96킬로, 친구는 48킬로, 하하하" 라며 모든 사람이 다 들리게 본인 딴에는 아주 재치 있는 농담이라는 듯 떠들어댔다.

 얼굴이 시뻘게지고 표정관리가 안돼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날 다이어트가 끝났다. 14킬로를 빼도 난 96킬로고 내가 노력해 봐도 그들에게 난 96킬로고, 앞으로 정상체중이 되려면 4~50킬로를 더 빼야 한다는 게, 너무 절망적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담임선생님 복도 지지리 없었지.  그때 나에게 담임이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살을 빼는 시기가 좀 더 당겨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나는 125킬로가 되어서 대학교에 진학했다.


가장 예쁠 나이, 20대 초반까지 나는 초고도비만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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