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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이 Aug 06. 2024

21살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며

뇌출혈

돌이켜 보면 사랑이 아닌 것이 없었다.
미리 좀 알걸, 왜 그걸 이제야 깨달았을까.
술 취해 집에 들어올때면 전화를 걸어 "딸~ 뭐 사갈까?" 묻고,
부엌일은 잘 안 하시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비빔국수랑 백숙을 해주려고 내가 오기 몇 시간 전부터 준비하시고.
친구분들에게는 그래도 잘난 딸이라고 항상 입버릇처럼 내 자랑을 하시고.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고 두 손 꼭 잡아주던 우리 아빠.
맨날 짜증만 내고, 술 마시는 모습이 싫어서 모진 말로 상처도 주고. 난 생각해 보면 참 나쁜 딸이었다. 그래도 항상 그 이상의 사랑으로 날 덮어주셨는데

뇌출혈로 쓰러지기 하루 전, 큰맘 먹고 소고기를 사 왔다며. 우리 딸 먹이려고 소고기 부위 좋은 걸로 골라왔다고 껄껄 웃으면서 구워주시고, 당신 먹기도 전에 호호 불어 내 입에 소고기를 넣어주셨는데.. 그날 밤, 평소 잘 들어오지 않던 내 방에 들어와서 30분 동안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도란도란 우리집 강아지랑 그렇게 놀았는데.. 그다음 날 오전 9시. 아침을 먹고 화장실에 들어갔던 아빠는 그렇게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렇게 큰 병이 아니라고 했다. 관을 꽂을 정도도 아니고, 병원에 나갈 때는 걸어 나갈 수 있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평소 술을 좋아하신 데다 가족력으로 당뇨도 있으셨고, 간수치도 높았다.. 결국 지혈이 되지 않았다..
처음 관을 꽂으려고 할 때만 해도 손에 힘주라고 하면 힘도 꽉 주시고..
했는데 2차 수술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의식이 없으셨다.

아빠의 머리에 관이 5개나 꽂혀있었다. 항상 나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크기만 했던 아빠는, 모르는 게 없던 만능 해결사인 아빠는 TV에서나 보던 중환자실에 병원복을 입고 누워계셨다. 입버릇처럼 "아빠는 뇌에 문제 있더라도 절대 열거나 건드리지 마라~" 했는데.. 약속을 못 지켜드렸다.

엄마랑 나는 정말 이기적이지만 아빠가 차라리 장애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눈만 떴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나머지는 우리가 감당하면 되니까. 좀 고생스럽더라도 계속 재활훈련 하고 하면 되니까.. 아빠가 의식만 찾으시면 휴학을 하고 아빠 간병을
도맡아 할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다. 또 평생 내가 모시고 살면 되니까. 원래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지금까지 받은 사랑 제발 돌려드릴 기회를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아빠는 쓰러지신 지 이틀 만에 눈을 감으셨다.

호흡이 떨어진다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기계호흡을 해야 한다고. 기계호흡을 하면 살 수 있었지만, 그건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출혈이 숨뇌까지 번졌고.. 깨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기적이 일어나 깨어나더라도 눈만 깜빡이고 사람을 인식할 수 없는 정도.. 백번이고 꽂고 싶었지만, 우리의 이기심으로 아빠를 그렇게 힘들게 둘 수 없었다.   
 아빠를 보내드리기로 결정했다. 2시간 동안 아빠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최고야.. 여기 있을 때는 너무 힘들게 살았으니까. 가서는 편하게 살아. 우리 걱정하지 말고. 그래도 우리 잊어버리면 안 돼. 알았지?...  그리 말했다. 정상적이었던 산소포화도가.. 갑자기 뚝 떨어졌다. 그래.. 아빠는 이 말을 기다리셨는지도 모른다. 가족들이 자기를 보내 줄 마음을 잡을 때까지 아빠는 그 얇은 생명의 선을 온 힘을 다해 쥐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는데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빠가 찍었던 증명사진이 영정사진이 되어 걸렸다.
아빠를 화장터로 모시고 화장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살아계셨던 아빠가 백골이 되어 항아리에 담겼다.
납골당에 이름표에 아빠 이름이 새겨졌다. 그 재서야 조금 실감이 났다. 이 좁은 곳에.. 아빠가 혹여 갑갑하지는 않을까.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집에는 아직 아빠가 입었던 옷이 세탁기 속에 들어 있었고, 아빠가 덮던 이불, 베개, 칫솔.. 모든 게 다 그대로였는데....

아빠. 아빠랑 찍은 사진이 내 폰에 한 장밖에 없네? 같이 사진 좀 찍는 게 얼마나 힘들다고 안 찍었나 몰라. 내가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알아? 아빠의 추억이랑 아빠의 목소리를 잊어가는 거야.
나 여기에 두고 갈 만큼 그렇게 힘들었어? 많이 힘들었어?
미안해. 아빠 마음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어. 아빠까 그만큼 힘든 줄 내가 몰랐어.. 미안해.
다음에 태어날 때는 내가 엄마 할 테니까 아빠가 내 아들해.
내가 받은 만큼 다시 돌려줄게.. 아빠가 아무리 속 썩이고 그래도.. 항상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똑같이 줄게..
내가 생각도 안 했던 간호학과 온 이유가 뭔지 알아? 아빠 좀 덜 힘들게 하려고. 나 취업하면 아끼고 모아서 빚 먼저 갚고.. 우리가 살집 얻어서 그렇게 알콩달콩 살려고 했지. 나 결혼도 안 한다고 했잖아. 나한텐 아빠, 엄마가 1순위였어. 다른 건 없었어. 그냥 아빠랑 엄마 데리고 와서 내가 열심히 돈 벌어서 산 집에서 그렇게 모시고 사는 거.. 그게 내가 간호학과 온 목표였어. 아빠. 거기서는 꼭 행복해야 해. 여기 있었을 때처럼 아프지 말고. 그렇게. 항상 아빠는 내 가슴속에 있으니까. 그렇다고 나 잊어버리지 말고. 가끔 내 옆에 있다가 가줘. 꿈에도 좀 나타나주고.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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