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내게 두 얼굴의 도시이다. 런던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도시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내게 가장 힘든 기억을 안겨준 쉽지않은 도시이기도 하다. 그 힘든 기억은 두번의 방문 모두에서 첫 날 일어난 것이다.
첫번째 방문 당시에는 일주일간 일본을 여행한 이후 도착한 터라 내 몸의 피로에서 유발된 내적인 이유가 더 크다. 하지만 두번째 방문에서의 고생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자연현상에 기인한다. 오, 생각을해보니 두번째 방문에서도 숙소의 연락처를 들고 가지 않았던, 도착시간과 방문 일정을 제대로 소통하지 않았던 나의 잘못이 가장 큰 것 같기도 하다.
2008년 10월7일 오전 11시. 아름다운 계절에 도착한 아름다운 도시 뉴욕. 그 아름다움을 느낄 새도 없이 내 몸은 급격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일주일간의 일본 여행과 이어진 출국, 입국수속에서 잔뜩 긴장한 채로 짐을 부치고 내리기를 반복한 탓에 피로는 어느덧 내 몸을 잠식해가고 있었다. JFK공항에 무사히 도착해서 우리나라 공항 리무진에 비해서는 낙후됐기 짝이 없는 공항 버스를 타고 맨하탄 중심에 도착해서 예약해두었던 숙소로 향했다. 처음 뉴욕에 도착했을땐 만반의 준비를 다 해가서 그랬는지 숙소를 찾는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내 몸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을뿐.
짐을 풀자마자 피로가 내 몸을 감쌌고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임을 침대에 눕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씻지도 않은채로, 짐도 채 다 풀지 못한채로 침대에 누워서 그렇게.. 24시간을 잠들었다. 원래 잠이 그닥 많지 않은 나로써는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 당시에 24시간을 잘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중간중간 정신이 들기도했지만 마치 가위에 눌린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그대로 다시 잠속으로 빠져들기를 반복했다. 당시 환율이 1달러에 1700원에 육박했던 상황이라 나름 엄청난 돈을 들여서 온 여행이었는데 하루를 침대에 누운채로 보내다니, 꿈속에서나마 시간과 돈이 아까워 잠들어있는 내 무의식과 사투를 벌였지만 지친 몸뚱아리는 움직여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가 정말 꼬박 24시간이 지난 다음날 오전 11시. 몸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엄청난 공복감에 눈이 떠졌다. 사실 기내식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거의 먹지 않은채로 온 것을 생각하면 거의 이틀을 변변한 음식 한번 먹지 않은채로 계속 돌아다녔기에 온몸에서 밥을 원하는 상황이었다. 허기가지다 못해 구토가 나올 것 같은 공복감을 느끼며 비틀비틀 일어나서 거울을 보니 웬 기름진 머리에 지저분한 집시 여인이 앞에 서 있었다. 아무리 배가고파도 남의 나라에서 이런 꼴로 돌아다닐 수는 없다는 생각에 얼른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그런데 머리에 슥슥 샴푸질을 하는순간 눈앞이 핑 돌면서 현기증이 났다. 그대로 샤워기를 붙잡고 쓰러지는 것만을 모면한 나는 이러다가는 정말 욕실에서 뇌진탕이라도 걸려 죽을것만 같은 느낌에 비누거품도 다 씻어내지 못한채로 얼른 달려나갔다. 걸신에 들린 사람처럼 머리에 물기만 제거하고 한달음에 달려나가 먹을것을 찾아헤맸다.
사람이 3일을 굶으면 도둑질도 한다고했던가. 그깟 3일이 뭐라고 그거 굶는다고 도둑질을 하나, 라고 생각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매의 눈으로 식당을 찾았다. 하지만 이게 왠걸. 족히 다섯블럭은 위로 걸어간것 같은데 좀처럼 식당 비슷한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식당이 족히 20개는 나왔을법한 거리였는데 말이다. 심지어 편의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마음은 더 조급해왔다. 뱃속에선 밥달라 물달라 아우성을 쳐대고 눈앞에 보이는것은 도로와 자동차와 식당이 아닌 매장들뿐. 처음엔 그래도 뉴욕에서의 첫끼니이니 적당히 괜찮은 식당을 찾아 들어가려했었는데 이제는 편의점이라도 좋으니 음식을 파는 곳이면 어디든 나와달라고 마음속으로 사정을 하고 있었다. 하물며 스타벅스나 맥도날드라도..... 라고 외치고 있을때 내 눈앞에 서광이 비추며 한 매장이 들어왔다.
EUROPA CAFE
유명한곳이건 아니건 그건 중요치 않았다. 내 몸이 숨쉬고 움직이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것이라도 땡큐. 토론토 이후로 처음 다른 나라에서 영어를 사용한다는 그 두려움은 유로파 카페에 들어서서 음식을 위장으로 때려넣기 전까지는 내 의식속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뉴욕이나 유럽의 여느 캐쥬얼한 카페처럼 그곳에서는 커피뿐만 아니라 간단한 식사가 될 수 있는 샌드위치, 케익등 여러가지 음식을 같이 팔고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가장 든든해보이는 칠면조 샌드위치와 아이스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드디어 안도감을 느낀채로 음식이 나오기까지 앉아서 두리번 거리자니 그제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카메라를 들고갔음에도 불구하고 유로파 카페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단 하나의 사진도 남겨져있지 않다. 역시 인간은 밥심으로 사는것이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샌드위치에서 칠면조의 비릿한 맛이 느껴졌었지만 개의치 않고 맛있게 샌드위치 전체를 먹어 치웠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닭비린내가 나는 순간 샌드위치는 버려졌을텐데 말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음식이 들어가자마자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 나는 미드타운부터 위로는 어퍼웨스트, 아래로는 소호, 그리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까지 종횡무진하며 아주 그날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것이다. 언제 죽을 듯 비틀거렸냐는 듯이 아주 활기가 넘치게말이다. 그렇게 호되게 뉴욕에서의 첫 신고식을 마친 나는 저녁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아침에 부랴부랴 나오느라 차마 인사도 나누지 못했던 소중한 인연들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모른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