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shake shack.
두번째 뉴욕행 2012년 12월. 토론토에서 뉴욕으로 출발하던 날 토론토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다행히 어학연수당시때부터 나를 아껴주셨던 한국인 내외분의 집에서 이번 여행에서도 머물게 되어서 뉴욕으로 향하던 날 공항까지는 두분이 데려다주신덕에 편하게 도착 할 수 있었다. 토론토에서의 출국과 뉴욕에서의 입국도 왠일인지 수월했다.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아니라서, 캐나다에서 미국으로의 입국은 이미 검증받은(?) 사람들의 입국이라 생각을 했는지 미국의 입국심사는 조금의 불편함도 없이 눈깜짝 할 새에 진행됐다. 심지어는 심사관의 미소와 "Have a nice time!"이라는 인삿말까지 들을 수 있었으니말이다. 도착해서도 JFK에서 맨하탄 중심까지 이동하는 버스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기나긴 여행끝에 얻어진것은 공항 버스를 찾는 매의 눈과 생존을 위한 눈치코치뿐이었다. 파워당당한 걸음을 걸어 버스에 올라타서는 여유롭게 경치를 감상하며 맨하탄 중심부로 향했다.
그러나 행복한 여정은 여기까지였다. 역시나 뉴욕은 첫번째에도 두번째에도 내게 쉬운 여행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뉴욕시내에도 토론토에서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추적추적. 아니 추적추적이라고 표현하기엔 훨씬 많은 양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택시를 탔어야했는데... 버스에서 내려서 지도를 펼쳐 놓고 숙소가 있는 곳까지의 거리를 보니 애매하기가 짝이 없었다. 몇블럭만 가면 되는 거리라서 택시를 잡아타기엔 돈이 아까웠고, 지하철을 타기엔 끌고있는 캐리어가 너무 무겁고 짐이됐다. 뉴욕의 지하철은 지은지 백년이 넘어 편의성으로 따지자면 -100점을 줘도 후하다 생각 될 정도였으므로, 무겁디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것은 고문에 가깝다고 생각됐다. 그렇다고 걸어가기엔 한손에 우산을 들고 캐리어가 젖지 않도록 몸에 바짝 붙여 끌어야 하니 그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혼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서있자니 빗줄기가 어째 더 굵어지고 있었다. 결단을 내려야했다.
'그래... 몇블럭 안되니까.. 걷자, 걸어..!'
지도상으로는 몇블럭 되지 않는 길이었지만 비가 상당히 많이 내리는, 게다가 관광객이 버글대는 터미널 부근을 우산과 함께 지나자니 팔, 다리, 어깨, 무릎 어느 한곳도 아프지 않은데가 없었다. 점점 피로는 쌓여가고, 신경질은 바득바득나고.. 인내심이 바닥을 치려던 찰나 드디어 숙소가 있는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34st/broadway.
희열을 느끼며 가까운곳에 위치한 공중전화 박스앞으로 다가갔다. ( 여행초반 영국에서 집시에게 핸드폰을 도난당한 이후로 아이팟을 대신 구입해서 들고다녔기에 공중전화를 이용해야했다.) 미리 바꿔놓았던 공중전화용 동전 25센트를 넣고 다이얼을 누르려는데 왠일인지 동전이 그대로 떨어지고 통화가 되지 않았다. 고장난 기계였던 것일까? 옆칸으로 가서 똑같이 시도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번호를 먼저 누르고 동전을 넣어도, 동전을 먼저 넣고 번호를 눌러도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가슴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대체 어떻게 숙소 사장님과 연락이 닿을 수 있을까. 핸드폰은 도난당했고, 공중전화는 사용방법을 모르는지 연결되지 않는데. 눈앞에 펼쳐지고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비는 이런 날 비웃기라도 하듯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공중전화박스 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한층 더 나를 처량맞게 만들고 있었고 나는 이 개구쟁이 빗줄기 녀석들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노려보며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뒤적뒤적....가방을 뒤적여 아이팟을 꺼내들었다.
'스타벅스를 찾아야해...'
런던에서 집시에게 핸드폰을 도난당한 후 부랴부랴 애플 스토어에서 구입한 아이팟이 나의 유일한 통신 수단이었으므로 와이파이가 연결되는 그 어떤 곳이라도 찾아야했다. 그때 구세주처럼 머릿속에 떠오른건 바로 스타벅스. 시애틀에서도 1호점을 방문하면서 애정을 담뿍 담아왔었건만, 이런 순간엔 그들의 무료 와이파이 정책이 얼마나 고맙게 느껴지는지. (그 당시만 해도 외국에서 무료 와이파이는 흔한 것이 아니었다.) 가까운 스타벅스에 들어서서 메신저로 숙소 매니저에게 가까스로 연락을 취했다. 그녀는 도착시간보다 한참을 늦은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여차저차 상황 설명을 하고 밖으로 나와 다시 숙소 건물로 향해 그녀를 만났을때는 눈물이 다 날 뻔 했다. 드디어 살았구나. 이 거추장 스럽게 나를 괴롭히는 캐리어를 집어던지고싶은 마음이 수백번은 더 들었지만 이제 이 캐리어로부터 해방 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희열이 느껴졌다. 할렐루야!
두번째 방문에서도 짐을 내려놓자마자 향한 곳은 바로 배를 채워줄 곳이었다. 인간은 밥심으로 버틴다는 사실을 첫번째 방문에서 뼈져리게 느꼈으므로 이번엔 주저하지 않았다. 미리 첫끼를 해결 할 목적지로 그 유명한 'Shake shack' (당시엔 우리나라에는 쉑쉑이 들어오지 않은 상황이어서 스텀프타운커피, 블루바틀을 뒤이어 꼭 가보아야 할 곳 리스트에 쉑쉑을 올려놓은 상황이었다. )을 점찍어두고 있었던 터라 얼른 신발끈을 고쳐매고, 스프링처럼 튀어나갔다. 빗속을 뚫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미드타운에 위치한 쉑쉑으로 향했다. 무거운 캐리어를 떠나보낸 상황이었지만 카메라와 여행책, 우산을 지닌 내 양 어깨는 여전히 무거웠고, 오랜 여행으로인해 다 헤져버린 신발 안으로는 빗물이 줄줄줄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쉑쉑을 맞이하러 가는 길 앞에는 그 어느것도 내게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을 고통을 잊은 채 걷고 있으려니 발치에서 낯익은 간판이 눈에들어오기 시작했다. 여행책자에서, 인터넷에서 수 없이 보아오던 그 두 글자. 쉑쉑.
뉴욕의 상징과도 같은 노오란 택시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쉑쉑은 내가 이 곳 뉴욕 한복판에 서 있음을 더 없이 생생하게 실감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귓가엔 그 유명한 알리샤 키스와 제이지의 Empire State of mind가 이어폰 사이로 들리고있었다. (쉑쉑과의 드라마틱한 만남을 만들기위한 나의 일종의 연출이었달까. 네이버 뮤직에서 미리 다운로드해서 무한 반복으로 재생하며 쉑쉑으로 향했고, 그 효과는 과연 대단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두근두근거리는 것 같다.)
이 감격스러운 장면을 몇장의 사진에 담고 드디어 쉑쉑으로의 첫발을 내딛었다. 쉑쉑의 입구가 점점 눈앞으로 다가올 수록 두려움이 함께 나를 엄습했다. 내부에 늘어선 어마어마한 줄이 함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미드타운에 위치한 만큼 관광객들의 제1의 타겟이 될 수밖에 없는 지점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서도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얼마나 오랜 시간 줄을 서야할지 두려움을 갖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래도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는 법. 고민 할 시간에 1초라도 더 빨리 줄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번에도 줄을 서면서 계속 탐색을 멈추지 않았다. 주문하면서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는 메뉴를 충분히 검토해야했고, 주문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아 주문하는 방법을 알아내야했으므로.
다행히도 쉑쉑의 내부 오른쪽의 한 벽면은 전체가 메뉴판으로 만들어져있었다. 커다랗게 메뉴와 가격이 쓰여있어 줄을 서면서 메뉴를 보고 고를 수 있었다. 계속 지켜본 결과 사람들은 시그니쳐 메뉴인 쉑버거와 프라이즈, 밀크 쉐이크를 가장 많이 시키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에서 뉴욕에 관광을 온 사람들의 각국의 언어가 귓속에 들려오고있었고 그들의 다소 긴장된 말투와 설레임에 들뜬 표정들이 내 기분마저 들뜨게 만들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고 이번에도 나는 첫번째 여행과는 달리 능숙하게 주문을 마쳤다. 밀크쉐이크대신 내가 좋아하는 초콜렛쉐이크와 쉑 버거, 프라이즈를 시켰다.
주문 후 바라본 내부는 많은 인파들 탓에 정리 되기가 무섭게 다시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고, 앉아서 먹을 자리는 찾을 수 조차없었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짐을 놓고 돌아다닐수도 없는 치안상태였기 때문에 받아든 햄버거를 들고 한참을 자리를 찾아 서성여야했지만, 그리고 얼마 뒤에 일면식도 없는 3명의 소녀들 자리 틈에 껴서 햄버거를 맛보아야했지만 그래도 고생끝에 맞이한 뉴욕에서의 첫끼 식사는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직 우리나라에 흔하지 않았던 수제버거 느낌의 패티와 빵, 신선한 야채, 그리고 꾸덕꾸덕한 초콜렛 쉐이크에 찍어먹는 포슬포슬 통통한 프라이즈의 맛이 그날의 고생을 함께 날려주는 것 같았다..기보다는 그저 뉴욕이라는 도시에 내가 또다시 들어와 있음에 감격한 맛이 아니었을까싶다. (실상은 햄버거와 프라이즈의 느끼함을 날려주기에는 초코쉐이크의 역할은 오히려 역효과였다. 중반쯤 먹었을때는 간절하게 콜라를 찾는 나의 동공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언제 또 그 감격의 뉴욕 맛을 보러 갈 수 있을까. 세번째 뉴욕 여행의 날을 손꼽아 기다려보게 된다. 부디 그때는 첫날의 고생을 겪지 않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