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츠델리카슨스
뉴욕에서의 두쨋날. 분명히 내 여행의 목적은 커피 투어였을텐데 두번째 날에 왜 블루바틀이나 스텀프타운이 목적지에 포함되지 않았는지 이제와서 생각하려니 궁금하기 짝이없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기억이 나지 않는것을 어쩌리오. 아무래도 맛있는것이 있으면 아끼고 아껴두었다가 최후에 느긋하게 즐기고싶어하는 이 성격 탓에 그들을 여행의 후반부에 위치시켜놓았던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살아보니 맛있는 것은 맛없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 전에 제일 먼저 먹어야 하고, 좋은 것은 남이 가로채기 전에, 내 체력이 허락하는 그 때에 얼른 겪어야하는 거더라. )
첫날 혹독한 겨울비의 습격에 조금은 소심해진 마음으로, 만반의 준비를( 지도, 와이파이가 있는 카페등등을 검색한 뒤!!) 하고 떠난 이스트 빌리지. 내가 정독했던 책에는 이스트 빌리지에 대한 묘사가 정적이면서도 호감가게 표현되어있었다. 그리하야 거의 뉴욕 여행의 진정한 '시작'이나 다름 없는 두째날에 이스트 빌리지로 향하게 됐다. 대학생들도 많고 개성있는 커피 전문점들도 많은 곳이라고 들었기에 가고싶은 커피숍들을 몇군데 체크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여행했던 시즌이 크리스마스 시즌이어서 그랬는지 여기 저기 들뜬 표정의 사람들이 분주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 틈에 있는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
첫번째 목적지는 커피숍이 아닌 카츠 델리카슨스였다.
여기저기 많이 둘러보려면 든든하게 끼니를 챙겨먹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므로.
카츠 델리카슨스는 1800년대부터 지금까지 무려 10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쭉 이어오고 있는 곳이라한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때'에 배경으로 나오면서 더 유명해지기도 했고.
정확하게 무엇을 파는 곳인지도 모른채 그곳에 들어갔을때는 발디딜틈 없이 북적이는 인파로 인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어떤 샌드위치를 팔길래 이토록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일까. 혼자 하는 여행에 고수가 된 나 였으니 우선은 먼발치에서 조금 지켜보기로 했다. 어떻게 주문해야 하는지 사람들은 보통 무엇을 먹는지.
이번에도 조금은 긴장됐지만 그렇지 않은척 애를 써가며 주문을 마쳤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직원들이 다른 곳에 비해 유별나게 친절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내게 사진이 잘 나오는 특정 포인트를 손수 가리켜주는가 하면 샌드위치를 준비하는 동안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고기를 한점 썰어서 맛 보라고 건내주기도했다. 그들의 환한 미소와 친절함은 첫째날 겪었던 피로를 날려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그들의 친절은 팁을 받기위한 퍼포먼스였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는 그날 팁을 주었겠지...? 아니라면 어쩌지? 그들은 그때 친절을 베푼것에 대해 후회를 했을까나?
내 생각엔 그렇지 않을것 같다. 내가 느낀 카츠 델리의 분위기는 훈훈함 그 자체였다. 일하고있는 모두는 힘든 기색이 전혀 없이 일에 대해 정말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었으니까. 그 이유는 샌드위치를 받아든 5분 후에 조금이나마 짐작 할 수 있게 되었다.
샌드위치와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를 가까스로 찾아 앉았을 때, 앞쪽으로 선량한 얼굴의 할아버지 한분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테이블에 앉은 수 많은 사람들 한명한명과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맛은 어떤지, 이곳에 와주어서 고맙다라던지. 아무래도 이곳 카츠델리의 오너인 듯 보였다. 한명도 빼놓지 않고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시던 할아버지는 드디어 카메라로 무장하여 샌드위치를 먹고있는 내 앞에도 다가오셨다.
" How are you today?"
"Great! This is really delicious!"
여행 초반에 시애틀의 스타벅스 1호점에서 쭈구리처럼 대답하지 못했던 나를 떠올리고는 최대한 당당하게 할아버지의 질문에 웃으며 답했다. 오너 할아버지도 밝게 웃으며 어디서 왔냐고 내게 되물어왔다. 카메라를 메고 혼자 밥을 먹는 나는 누가봐도 여행자가 분명했으니까. 한국에서 왔다고, 반갑다고, 맛있게 먹고 돌아가라고 따뜻하게 말해주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 정도 살아보니,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면, 그의 말이 얼마나 진심인지, 그저 형식적인 말인지 아닌지는 어느정도 간파 할 수 있더라. 그 때가 미국에 있는 모두를 설레게 하는 크리스마스 시즌이어서 그랬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그날 카츠 델리의 모든 직원들에게서 느낀 그 호의와 표정들은 적어도 절반 이상은 내게 진심에 가까웠다. 그것이 아마도 그들이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저력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즐겁게 사람들을 맞이하고, 공감하고.
아무래도 오늘 하루의 시작은 완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