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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Oct 19. 2019

흔한 사랑이야기 -1

그 마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려서부터 난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었다. 

운명이라면, 인연이라면 누군가 말해왔던 것처럼 운명의 빨간 실을 엮어 태어났을 거라고,

아무리 멀어지려고 발버둥을 쳐도 실의 장력에 의해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랑이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를 만났을 때 나는 강렬하게 그가 나의 빨간 실을 쥐고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수줍은지 눈을 잘 쳐다보지 못했다. 마주치면 이내 얼굴을 붉히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어색한 말을 사람들에게 쏟아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 틈에 섞여 얘기하고 있었음에도 온통 신경은 그를 향해 있어, 그의 시선이 느껴지면 말 한마디 못하고 손을 달달 떨며 포크를 들지 못해 케익 한 입 먹지 못했다. 그렇게 수줍은 우리 사랑이 나는 좋았다. 눈만 마주쳐도 서로의 심장 소리가 터질 것 같이 들리던 그 수줍은 사랑이. 



처음 경험해 보는 사랑은 감각의 홍수였다.

그것은 흡사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설탕을 맛봤을 때 아이가 느끼는 충격과 황홀함과도 같았다.

심장은 병이 든 것처럼 하루 종일 뛰었다. 뱃속에 나비가 들어있는 것처럼 긴장된다는 영어 속 표현처럼 내 뱃속에는 종일 나비가 날아다녔다.



그 하나로 내 하루하루는 천국이자 지옥이었다. 

내 손끝에 그의 연락이 닿는 날이면 내 마음은 하늘을 날았다. 그 어떤 고통과 시련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다 그의 연락이 뜸한 시간에는 한 없이 우울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공부도,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그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들고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려 여기저기를 방황하는 일뿐이었다. 그러다 다시 그의 이름이 핸드폰 창에 모습을 드러내면 이내 나의 세상은 천국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나의 빨간 실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 무엇도 우릴 갈라놓을 수 없다고. 



그로부터 얼마나 흘렀을까. 


그저 평범한 어느 하루였던 것 같다.

모임을 끝내고 거나하게 취해 다들 택시를 잡기 위해 대로변 앞에 서있을 때였다. 기분 좋게 적당히 차가운 바람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고 술기운에 몽롱해진 내 시야에 키가 큰 S가 들어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어떤 모습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이 모든 게 술기운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레고 있었다. 그리고는 나도 너무 놀라 재빨리 시선을 거뒀다. 이 세상에 다시없을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나는 처음으로 오빠가 곁에 있음에도 다른 사람을 보며 설레는 감정을 느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나는 우울했다.


절대 변하지 않는 운명의 끈이 있다고 믿었는데.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가 우리 사이에 있다고 믿었는데. 결국은..  흔하디 흔한 그런 사랑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우리도 헤어질 수도 있겠다는 사실이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마음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사랑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가을바람에 가련히 흔들리는 낙엽처럼 우리의 사랑은 위태로웠다. 아니, 나의 사랑은 위태로웠다. 



그 뒤로 일 년쯤.. 우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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