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 인생을-복돌이 편.
저와 함께 13년, 12년을 살아온 댕댕이들이 있습니다.
몇 댕댕이냐고 물어보신다면 "다섯 댕댕입니다."라고 답하겠지요.
13살인 복돌이와 복순이(이들은 부부입니다.),
그리고 12살인 순돌이, 봉구, 호동이.(이들은 복돌이와 복순이의 아들들입니다.)
오늘은 그중, 복돌이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13년 전 이 맘 때, 저는 강아지를 입양하기 위해 카페를 열심히 뒤적입니다.
그러다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는데, 거기엔 시커매서 눈도 보이지 않는 연탄 같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용인, 가정집, 견종, 분양가, 연락처] 등등의 정보를 확인하고 견주에게 전화를 걸어봅니다.
"안녕하세요. 사진 속 그 아이 아직 미분양 상태인가요?"
"네, 입양하시게요?"
"네, 제가 서울인데 주말에 가서 데리고 오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이것저것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새까만 그 눈이 '나를 데려가'라고 말했던 것일까요?
그렇게 약속을 잡고 주말 시간을 비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가올 인연이란 얼마나 설레던지요.
그런데,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 견주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 우리 아들이 주말에 서울 놀러 간다네요. 아들한테 강아지 데려다 달라고 할 테니까 돈은 우리 아들한테 주세요."
"아, 네, 그럴까요."
그리고 견주분의 아드님과 통화를 하고 집 근처에서 뵙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고속도로 위에서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만남에 가까워지는 설렘은 사라졌어도, 다시, 고속도로 위에서 그 까만 녀석에게 내 이름을 말하며 첫 만남을 갖는 기대는 사라졌어도,
만나면- 그만인 것을요.
토요일 저녁, 해가 지고 난 후 나는 복돌이를 처음 만났습니다.
한 청년의 품에 안겨 있던 새까만 아이, 나와의 첫 만남을 위해 붉은색 셔츠로 잔뜩 멋을 낸 아이.
처음 그 아이를 내 품에 안았을 때, 얼마나 따뜻했던지 그 온기는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아이를 안고 집으로 오는 10분 남짓의 시간 동안, 그 녀석은 한 번도 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무서웠을까요? 낯선 풍경들과 낯선 사람의 품이 두려웠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에 도착하고 전 아이의 음식부터 준비했습니다.
까만 아이는 그 음식을 무척이나 맛있게 먹었습니다.
밥을 다 먹은 아이를 가만히 쓰다듬습니다.
여전히 저를 쳐다보지 않고 제 손길에 어떤 반응도 없습니다.
'좀 내성적인 아이인가?'
혹시나 해서 준비해 뒀던 장난감인형을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오! 이런 거였나?'
아이는 정말 신나게 인형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습니다.
물고 옆 구르기, 인형 앞에서 몸 낮추며 짖기, 인형 물고 흔들기 등, 다양한 몸짓을 보여주며 숨이 헐떡거릴 때까지 미친 듯 노는 아이의 모습에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혼자만 놉니다. 여전히 저는 쳐다보지 않고 제 행동에 어떤 반응도 하지 않고 그냥 혼자 놉니다.
하루가, 이틀이, 시간은 또 흘러갑니다.
하지만 우리 또리는 여전히 혼자 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눈치를 보거나 주눅이 들거나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또리는 집에서 엄청난 만행들을 저지르기 시작한 것이었으니, 그건 아니었겠지요.
1. 침대 파괴자 또리 : 침대에 구멍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구멍을 뚫어 침대의 내장(스프링)이 다 튀어나오게 만들었습니다. - 또리가 성견이 되기까지 세 번 정도 침대를 바꿨으니까요.
2. 장판 테러범 또리 : 장판을 뜯기 시작했습니다. 끄트머리에 이빨 자국이나 내는 수준이 아닌, 뜯은 부분을 물고 방을 가로질러 장판을 오체분시 하는 수준으로 뜯어 놓았습니다. - 또리가 성견이 되기까지 방의 장판도 여러 번, 바꿨습니다. 한 번은 또리가 뜯어 놓은 장판을 교체하지 못해 시멘트 바닥에서 돗자리를 깔고 잔 적도 있지요.
3. 무한 식탐 또리 : 식탐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간식이나 과일 등, 사료 이외의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르기 시작하면 짖는 걸 멈추지 않습니다. 현재, 귀에 간헐적 이명이 울리는 건 그때 또리의 무한 짖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4. 오줌 폭탄 또리 : 저에게 오줌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또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 저녁이면 밖에서 우선 제 다리에 오줌 한번 싸고 걷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깜짝 놀라고 두려웠으나 나중엔 한 겨울에도 맨발에 슬리퍼, 그리고 많은 휴지를 가지고 나가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 또리는 그러지 않습니다.)
5. 가구 파괴범 또리 : 다리를 물어뜯습니다. 물론 제 다리는 아닙니다. 식탁, 의자, 책상, 탁자 등 다리란 모든 다리를 물어뜯는데 그냥 갉아 놓는 수준이 아니라 절름발이를 만들어 버릴 정도로 뜯습니다. 이것들도 여러 번 바꾸었지요.
그랬던 말썽쟁이 또리였는데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8살이던가 9살 되던 무렵이었죠. 뇌졸중이었습니다.
가슴이 벌렁이고 심장이 막혀버린 것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또리는 오랜 병원치료, 그리고 재활을 꿋꿋하게 버텨냈습니다. 아직도 뛸 때는 조금 불편하고 엉성해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 또리는 아픔을 이겨내고 올해, 13살 생일을 맞이했었습니다.
전 종교가 없지만 항상 기도합니다.
'또리야, 형아랑 딱 10년만 더 살자.'
그리고 항상 이렇게 말해줍니다.
"또리야, 네가 형아 침대 다 뜯은 것도, 형아 방 장판 다 뜯은 것도, 네가 형아 귀 이명 생기게 한 것도, 네가 형아 다리에 수 백번 오줌 싼 것도, 형아는 다 괜찮아. 그리고 또리야, 네가 너보다 더 커다란 족발 뼈다귀를 입에 물고 하루 종일 방안을 돌아다니던 것도 형아는 기억해. 늦은 밤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가 낯선 그림자를 보고선 형아 버리고 너 혼자 집으로 도망갔던 것도 형아는 기억해. 강아지카페에서 매니저 엉덩이를 물어서 옷값과 치료비를 물어줬던 것도 형아는 기억해. 그리고, 네가 장가가서 아기 강아지들이 생겼을 때 상남자인 줄 알았던 네가 아기 방에 몸을 누이고 그 핏덩이들을 감싸주고 핥아주던 모습을 형아는 기억해. 형아는 우리 또리를 정말 사랑하니까 다 괜찮고, 다 기억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우리 또리는 안방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먹고, 자고, 또 먹고 자다가, 일어나 집 어딘가에 응가를 하고 쉬야를 한 다음 기분 좋게 짖을 것임을 저는 압니다.
우리 또리는 상남자여서 패드에만 볼 일을 보지 않습니다.
"작업방 문에, 거실 소파 다리나 위에, 냉장고 문에, (네가 쓰지는 않지만)네 침대에, 집안 어디에라도 괜찮아 또리야. 형아가 다 치워줄게. 그리고 우리가 함께 자는 형아 침대에는 쉬야하지 않아 고마워."
형도 나이를 많이 먹어서 호르몬 분비가 이상해졌나 봐.
너만 보면 왜 이렇게 눈물이 나려고 할까?
* 다음 글은 복순이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