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멋진 댕댕이. #2

지옥에 온 복순이 - 복순이 편.

by winterand

집에 온 지 며칠이 지났지만 또리는 여전히 저와 놀아주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눈도 마주치고 꼬리도 살랑살랑 흔들어 주지만 먼저 와 안기지도 핥지도 놀자고 해도 반응이 없습니다.

그런데 또 혼자서는 얼마나 재미있게 놀던지요.


'흠, 또리야. 너 강아지 친구가 필요해?'


살랑살랑.


'그래, 형아가 너랑은 종이 달라서 놀기 좀 그런 거지? 알았어.'


재미있게 놀긴 하지만 자꾸 혼자 노는 또리가 안타까웠을까요?

전 다시 카페를 뒤적이기 시작합니다.

우리 또리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기로 결정한 것이죠, 이왕이면 여자친구로요.

폭풍 같은 검색의 파도가 절정에 달했을 무렵, 전 사진 한 장을 발견합니다.

[첫째, 생후 한 달, 여자아이, 천안, 가정집] 등등, 여러 정보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본 아이의 모습이 너무 예뻤기 때문이었죠.

청순가련형의 천사 같은 아이, 조금은 골통(?) 같은 또리와 제법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 왔습니다.


"여보세요?"


"네."


"혹시 카페에서 분양하시는 '첫째' 입양 됐나요?"


"아뇨, 아직 집에 있습니다."


"네, 그러면 제가 주말에 천안에 가서 데려오고 싶습니다."


그렇게 견주분과 대화 후, 약속 시간을 잡고 주소를 받습니다.


설레는 토요일이 왔습니다.


"또리야, 좀 기다리고 있어. 형아가 또리 친구 데리고 올게."


'살랑살랑'


또리도 뭔가 느낌이 온 걸까요?

평소보다 꼬리를 흔드는 좌우 각도나 높이가 더욱 활기차 보였습니다.


열심히 차를 몰아 천안에 도착했습니다.

수수한 단독주택의 작은 방안에 엄마와 동생들과 함께 누워 있었습니다. 우리 수니는요.

아! 사진 속의 모습 그대로인 수니는 정말 천사 같았습니다.


"아고, 아이가 너무 예쁘네요. 분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잘 키워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가져가세요."


견주분은 저에게 약봉지를 건네며 말했습니다.


"?"


"아, 다른 건 아니고요. 아이가 엄마 젖 먹다가 감염돼서 회충이 좀 있어요. 저희가 약 먹이고 있었는데 며칠 더 먹이시면 완치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수니를 데리고 서울로 향하는 길.

조주석에 앉은 수니는 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엎드려 앉아 쳐다보는 눈길이 어찌나 아련하던 지요.


"수니야 집에 가면 복돌이 오빠가 기다려. 너보다 2주 먼저 태어났으니까 오빠야. 복돌이 오빠랑 사이좋게 잘 지냈으면 좋겠네."


혼잣말도 하고 손을 내밀어 쓰다듬어 주기도 하면서 집에 도착했습니다.

둘의 첫 만남은 말 그대로 데면데면했습니다.

예상과 달리 또리는 수니를 보고도 별 반응이 없었고 수니는 집에서도 그냥 엎드려만 있었습니다.


그랬는데요,

수니가 집에 온 둘째 날부터 지옥문이 열렸습니다.

또리가 수니와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노는 게 미쳤습니다.

분명 노는 건데,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며 수니를 바라보는 눈빛은 너무나 맑고 따뜻한데,

이건 애를 완전히 잡아먹거나 혼수상태를 만들면서 놉니다.


'귀를 물고 온 집안 끌고 다니면서 수니로 방바닥을 닦고'


'목덜미를 문 채 껴앉고 수 십 번 옆 구르기를 해서 아이를 혼절시키고'


'수니 등에 올라타서 아이가 대자로 짜부라져 헛 구역질을 해대고'


하루 24시간 중에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우리 또리는 우리 수니를 하루 종일 괴롭힙니다.

수니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은 수니에겐 분명 지옥이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매일매일 벌이는 또리의 만행을 보며 전 생각합니다.


'우리 또리는 좀 미친놈인가'


그때 제 고민은 좀 심각했습니다. '저 미친 견을 수니와 분리시켜 놓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했을 정도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매일과 같이 그날도 또리가 수니의 귀를 물고 엎어치기 비슷한 동작으로 매다 꽂고선 누르기를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또 매일과 같이 우리 수니는 '아앙, 아앙' 비명을 지르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점점 변해갑니다. '끄응, 끄응'에서 다시 '끄륵, 끄륵', 급기야 '우웩, 우웩'으로 말이죠.

평소에는 수니가 또리의 누르기를 버티지 못했는데 이상한 비명과 함께 벌떡 일어서더니 구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수니는,


노란 고무줄(회충) 몇 개를 뱉어냈습니다.

분명 견주로부터 받아 온 구충제를 계속 먹였는데 말이죠. 다음 날, 동물병원에 가서 다른 구충제를 받아와 먹였습니다. 그랬는데도 약이 듣지 않더군요. 수의사 선생님께서 사람이 먹는 구충제를 사서 작게 잘라 먹여 보라시더군요.


우리 수니는 그렇게 사람이 먹는 회충약을 몇 번 먹고 다 나았습니다.

수니의 회충이 다 사라진 걸 어떻게 알았냐면, 그때부터 수니는 더 이상 또리에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수니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었죠.


그 순간, 수니가 또리에게 먼저 덤벼들던 그 순간, 또리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전 잊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잠깐의 놀라움을 주었을지언정 수니의 반격은 너무나 허무하게 또리의 귀 물고 엎어치기로 끝나버렸습니다.


우리 수니는 댕청미가 아름답습니다. 가끔 수니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합니다. 선천적인 댕청미가 있는 건지 아니면 아가 때 사람 회충약을 좀 많이 먹여서 그렇게 된 건지 말입니다.


또리는 저와 함께한 지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저를 핥아 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전 그 점이 서운하거나 섭섭하지 않습니다. 다섯 댕댕이 중 유일하게 꼬리가 긴 우리 또리는 절 보면 그 긴 꼬리를 언제나 열심히 흔들어 주거든요.

상남자 또리가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핥아 주는 대상은 복순입니다. 아프기 전부터, 그리고 조금은 버거운 몸을 갖게 된 지금도 또리는 매일 같이 복순이의 옆구리가 흥건해질 때까지 핥아 줍니다. 수니가 그만하라고 으르렁거려도 또리는 신경 쓰지 않고 숨이 찰 때까지 핥아 줍니다.


그런 너희가 형아는, 오빠는 정말 소중해.

이 글을 다 쓰면 너희가 좋아하는 소고기 사러 마트에 다녀올게.

언제까지 언제까지 밥 잘 먹도록.


# 다음 글은 순돌이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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