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는 언젠가 죽음이라는 영원한 단절을 겪는다. 그 이름은 언제나 다를지는 몰라도 말이다. 우리는 사실 이 단절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 이 단절이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의 정확히 어떤 점을 끊어내는지 안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침묵으로 대체되었다. 당신이 취할 수 있던 모든 행동은 하나로 고정되어 버렸고, 당신은 아무런 대항도 할 수 없다. 죽는 순간 우리는 하나의 가설의 모음에서 여러 개의 사실의 조각들로 변해버린다. 내가 발생시킬 수 있는 모든 사건의 경우의 수는 사라지고, 남겨진 여러 이들의 마음속에서 그들이 기억하고 싶은 방식대로 정해진채로 남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죽음이 우리로부터 진정으로 끊어내는 것은 불확정성이다. 예를 들자면 우연히 원하는 것을 얻거나, 당신이 10년 뒤 대단한 사람이 되거나, 생각지 못한 사랑을 찾는 것 같은 불확정성 말이다.
거꾸로 이야기해 보면, 산 사람으로서 부여된 고유한 가치 중 하나 또한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당신 또한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불확정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 갖는 꿈과 계획의 대부분은 잊혀지기 마련이고, 그 중 몇 가지만 우리의 기억에 남고, 그 중 한 두기지만 성공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간다.
산 사람에게 확정되어 있는 것은 불확정성과 죽음뿐이기 때문에,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당신이 불확정성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뜻이니,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니 불안하더라도 살아있음을 충분히 느끼길 바란다.
재밌는 점은 불확정성이란 현재를 지나 과거가 됨과 동시에 확정된 이야기들로 변한다는 점인데, 그런 의미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과정은 불확정성을 확정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산 자는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다. 그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는 사실이야말로 삶의 가장 큰 기적이자 축복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당신만의 이야기를 충분히 살아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