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오래전부터 나를 괴롭히던 것이 있는데, 바로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외로움이다. 독일에선 타지생활을 하는 유학생과 외국인 입장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또 동시에 한국에선 외국에서 수학을 전공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보였다. 아마 내가 어떤 공부를 하는지 그들에게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또는 내가 설명했을때 그들의 싸늘한 반응 때문에 더 크게 체감되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어딜가도 이해받지 못하던 나는 어딜가도 외로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고, 그런 독일에서의 삶은 창살없는 감옥같있다.
그치만 정말로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던걸까? 나는 정말 여기까지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걸 이겨내고 왔던걸까? 나는 정말 내 생각만큼 외로웠던 사람이였나?
어쩌면 이 세상에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세상에 나 홀로 남겨졌다는 생각은 모든것을 혼자서 마주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혹은 그렇게 해왔었다는 일종의 오만함이었을지 모른다.
시계를 2018년 1월로 돌려보자. 그때 당시 나는 내 동료들과 비교해 꽤 괜찮은 재능과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평생을 바쳐 역사에 남은 수학자들과 고작 6개월을 공부한 나를 비교하며 헛되게 자존감을 태워 우울함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무지개를 쫓고있었다. 그때 나를 수학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잡아준 친구들이 없었다면, 또 나를 잡아준 Z 교수님이 없었다면 아마 그쯤에서 난 자퇴를 했거나, 진로를 바꾸게 되어 지금의 나는 확실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시계를 돌려 2019년 8월즈음으로 가보자. 그때의 나는 우울증으로 꽤 고생을 하고있었다. 예를 들자면 주말에 시간이 나면 뭘 할지 몰라서 집 앞 타일모양에 발을 맞추면서 제자리를 빙글빙글 돈다거나 아니면 방 안에서 일주일을 보내거나 아니면 더 안좋은 것들 말이다.
이때부터 나는 매주 상담치료를 받았다. 상담치료에서 가장 먼저 했던일은 부숴져버린 내 일상의 틀을 재건하고, 자기를 좀먹는 일종의 처형장이면서 동시에 감옥이 되어버린 내 방에서 나를 꺼내는 일이였다.
몇개월간의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통해 나는 어느정도 일상을 회복할 수 있었고, 또 나의 상황을 알고 항상 나를 챙겨주던 많은 사람들이 나의 뒤를 확고히 지지해줬었다. 나의 우울증은 내가 강해서 이겨냈던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노력의 총 집합체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계를 2021년 7월로 돌려보자. 그때의 나는 졸업논문을 쓰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내 주변 친구들이 같은 지도교수님 하에서 졸업논문을 쓰고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주제는 완벽히 이해는 못했지만 지도교수님이 같다는 걸 매개체로 꽤나 서로한테 의지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논문을 잘 마치고 졸업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것또한 나 혼자 이뤄낸것이 아닌 연휴에도 몇번씩 내 draft를 첨삭해주셨던 M 교수님, 사진속 내 친구들과, 같은 집에 살았던 Colin 등 내 친구들과 정신적으로 힘들때 도움을 줬던 Charlotte같은 친구들의 도움이 같이 만들어냈던 것 같다.
또 대학을 다니는 내내 나를 지원해줬던 우리 가족과 내 동창 친구들 및 서울대에서 알게된 모든 사람들이 없었다면, 단언컨대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잊지말아야 할 점은 내가 이 세상에 정말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고 느꼈을지라도, 내가 정말로 혼자였던 순간은 단 한 순간이라도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혼자라고 느꼈던 기간만 존재했을 뿐.
누구나 나와 같은 경험을 할때가 있을것이다. 나 혼자 이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져버렸고, 나는 신도 외면한 내 스스로를 구제해야하는 운명이라고. 다만 주위를 둘러보면 사실은 생각지도 못했던 누군가가 당신의 뒤를 받쳐주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조금 무책임하고 뻔한 말 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누가 되었건, 설령 그게 미래에 같은 고통을 받는 나 자신일지라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