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서 만난 선수.
첫 이야기는 여기로.
그렇게 우리는 몇 주에 걸쳐 보고서와 영상 자료를 만들었다.
이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회사는 망하는 거였고,
우리는 이 시도에 회사의 운명을 걸었다.
선수에게 줄 문서를 다 인쇄하고 나니, 책 한 권이 우스울 정도였다.
여기에는 학교에서 배웠던 의사결정 방법론인 AHP를 활용하여 선수에게 추천하는 구단을 만드는 것,
각 구단별 현황과 분석 자료들이 빼곡히 자리했다.
(놀랍게도 오래된 메일함을 보다 보니 예전에 만들었던 문서가 있었다.)
'파주 NFC 센터에서 연습하고 있대. 토요일에 만나기로 했어.'
'드디어! 가는군요. 저 양복 하나만 사 올게요. 저 지금 양복이 다 작아져서 입을 게 없어요.'
(이때 당시에 지금의 와이프를 처음 만났다.
데이트를 하면서 정장을 하나 사러 가자고 했는데, 당시 통장에 딱 130만 원 있었다.
그중에 120만 원으로 정장을 사고, 남은 돈으로 와이프랑 밥을 먹었는데,
와이프는 내가 120만 원짜리 정장 사는 걸 보고 부자인 줄 알았다고 했다.
사실 난 외국에 선수 대리인으로 가는데 후줄근하게 갈 수 없어서 정말 정말 큰맘 먹고 산 정장이었다.)
어느 주말, 우리는 파주 NFC 센터로 가서 그를 만났다.
다른 선수들도 눈에 띄었다.
우리는 한 카페에 앉아서 우리를 소개했는데,
산책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국가 대표 선수였다.
'여기서 뭐 하냐.'
'아 형, 저 누가 소개해주신 분 만나고 있어요. 있다가 숙소에서 봬요.'
이런 식이었다.
우리는 카페에서 찬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우리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떤 에이전트이며,
우리는 어떤 에이전트가 되고 싶으며,
우리와 함께 하면 어떤 이익이 있으며,
우리를 선택해야 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우와, 책을 만들어 오셨네요. 이런 정보는 다 어디에서 찾으신 거예요?'
'인터넷과 지인들을 통해서 찾았어요. 저희가 정보력이 좀 괜찮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런 에이전트가 되길 지향하고, '
'계약하시죠.'
'네?'
'제가 위임장에 싸인해 드릴게요.
다만 영국이랑 프랑스는 안 되는 거 아시죠?'
'감사합니다. 영국, 프랑스 외 나머지 유럽이라고 명시해 둔 위임장이에요.'
우리는 미리 준비해 간 서류를 꺼내고 사인을 받았다.
얼떨떨했다.
우리는 몇 주 동안 이걸 위해 달려왔었다.
선수가 우리가 어떤 지점에서 고생했는지 너무 잘 알아줘서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만든 보고서는 따로 면밀히 보고 싶다고 선수가 챙겨갔다.
그렇게 위임장에 사인을 받아 들고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돌아오는 길엔 기쁜 마음도 잠시.
다시 걱정이 시작됐다.
'형 이제 어떡하죠. 우리 맨땅에 또 헤딩해야겠네요.
너무 우리를 과장해서 얘기했나 싶어요.
유럽에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어떻게 선수를 보내죠.'
'뭐 어쩌겠어. 오늘은 푹 자고 내일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그래도 한 고비 넘었어.'
(형은 의연하게 얘기하길래 계획이 있겠거니 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속으로 맘을 졸인 건 나보다 형이었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에 잠을 청하려고 누웠는데,
생각보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전에는 오로지 하나의 벽을 넘는 것에만 집중했는데,
그 뒤에 있던 더 큰 벽을 애써 모른 체하고 있었다는 게 피부로 다가온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