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임에 이런 기능이?
나는 축구선수의 에이전트였다.
지금은 축구선수 에이전트라는 직업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아직 모르는 분들도 많을 거라 얘기를 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스포츠 에이전트:
- 선수 혹은 구단을 대신하여 계약을 체결하고 관리하는 사람.
- 선수 에이전트의 경우,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에서 선수 관리 및 계약 관리를 같이 진행하곤 한다.
나는 제리 맥과이어라는 영화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에이전트라는 직업을 축구 분야에서 해보았다.
(대단하게 한 건 아니고, 라이선스를 따고 잠깐의 업무 경험을 해 본 정도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커리어가 게임으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것을 들으면 놀라곤 하는데,
실제로 그랬다. 게임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버렸다.
평범한 공대생이 스포츠 에이전트를 거쳐, 스포츠 마케팅, 브랜드 마케터로 커리어를
이어온 데에는 이 게임으로 인한 영향력이 매우 컸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는 그 시점의 나의 기억이다.
(물론 미화되었거나 잊힌 기억도 있을 거라 일부 허구가 섞였을 수 있다.)
2004년 6월 중순.
나는 고3이었다.
대한민국의 고3에게 기대되는 것은 언제나 공부였다.
당시 나는 도무지 공부해도 점수가 오르지 않던 과학탐구 영역(특히 화학 2) 공부를 위해 인강을 자주 들었다. 메가스터디, 이투스 등의 사이트를 전전하며 당시에 유명하다고 하는 선생님들의 강의를 듣고 있던 차였다.
'아 공부하기 싫은데. 다른 거 좀만 봐야지.' 했다가 접한 게임은 이거였다.
챔피언십 매니저. 흔히들 CM이라고 했다.
내가 감독이 되어 팀원들을 영입/매각하고, 훈련 일정부터 전술까지 모두 관여해야 하는 게임이라고 했다.
'감독이 되는 게임이라고? 재밌겠는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고3이었고 녹록지 않았다.
그렇게 이 게임은 스치듯 지나갔고,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 각종 술자리에 휩쓸리다 보니 어느덧 한 학기가 지나버렸다.
대학교의 방학은 참으로 무료했다.
6월 중순이 지나고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던 나의 긴장도는 방학과 함께 갈피를 잃었고
하루종일 집에서 잠만 자거나 간혹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잠깐 떨고 집에 오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문득 본 기사.
영국에서 출시된 FM 2005라는 게임 때문에 이혼율이 급증했다는 것.
사람들이 축구 게임에 몰입하는 바람에 가정에 소홀해져서 이혼을 했다는 얘기였다.
'오 이게 예전에 CM 03/04 같은 게임인 건가? 한번 해봐야겠다.'
잠깐 게임을 켜고 난 후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나는 하루에 4시간만 자고, 20시간씩 게임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몇 년이 더 흘렀다.
병역특례로 개발자로 일하면서 군복무를 대체하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이거 또 뭐야? 에이전트? 에이전트가 뭐 하는 사람인데 나오지?'
나는 사실 에이전트라는 직업이 뭐 하는 사람인가 보다도
에이전트 수수료에 눈이 먼저 갔다.
게임 안에서 나는 세계적인 감독이었다.
그래서 호날두도 영입하고, 메시도 영입하고 그랬다.
그러다 보니 에이전트 수수료도 몇 백억은 우습게 나왔다.
'아니, 에이전트가 뭐 하는 사람인데 돈을 이렇게 많이 받아? 검색이나 해볼까.'
실제로 세계적인 선수인 크리스티아노 호날두의 에이전트는 당시 호르헤 멘데스라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호날두의 계약을 대신하여 체결하고 그의 매니지먼트를 해주며 몇 천억을 번다고 했다.
게다가 호날두 덕분에 포르투갈의 국가대표팀급 선수들이 이 에이전트 소속이었다.
'1명당 100억만 해도 얼마야...'
더 찾아보니 즐라탄의 에이전트 미노 라이올라, 테베즈의 에이전트 키아 주라브키안 같은 사람들도
얘기만 하면 누구나 알 것 같은 선수들을 대리하고 있었다.
'이거다. 이거 하면 돈이 된다.'
내가 영입할 수 있는 선수가 누군지는 상상도 못 한 채,
선수의 수에다가 한 명당 얻을 수 있는 수익만 연신 곱해대고 있었다.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