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톤 체호프 <롯실드의 바이올린> 정동환 배우의 목소리로 듣고
정동환 배우의 목소리는 인물을 미화하지 않았다.
칠십 평생 관을 만들며 살아온 노인, 야코프의 인생은 낮고 거칠었고, 그 목소리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연극 무대에서 단련된 음성은 인물을 연기하기보다, 한 생을 증언하는 쪽에 가까웠다.
오디오가 끝나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때 문득 이런 질문이 남았다.
나는 지금 계산만 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야코프는 수첩을 들고 살았다.
그 안에는 늘 손해만 적혀 있었다.
오늘은 일이 없어 얼마 손해, 휴일이라 또 얼마 손해.
그에게 인생은 ‘벌지 못한 이익’의 목록이었고, 세상은 자신에게 불리하게만 작동하는 장부였다.
아내의 이름은 마르파였다.
마르파는 죽음을 앞두고 오래전 버드나무와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야코프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 말을 잠꼬대처럼 흘려보냈다.
오십 년을 함께 살았지만, 그는 기억보다 계산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이익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마르파가 떠난 뒤에야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 있다.
말없이 물을 길어오던 손, 벽에 바이올린을 걸어주던 몸짓, 당연하다는 듯 차려지던 밥상.
그는 평생 고마움을 말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가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제야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야코프의 수첩은 ‘못 번 돈’을 기록할 게 아니라, ‘고마움을 표시하지 못한 순간’들을 적어야 했던 게 아닐까.
죽음을 앞두고 그는 고해를 한다.
그러나 신부에게 하지 않는다.
그의 마지막 선택은, 평생 멸시하던 유대인 롯실드에게 바이올린을 건네는 일이었다.
그 순간 바이올린은 더 이상 악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말 대신 건네는 사과였고, 돈 대신 남기는 마음이었으며, 기억 대신 남기는 소리였다.
야코프가 떠난 뒤, 롯실드는 그 바이올린으로 연주한다.
그 음악이 어떤 곡이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아마 체호프는 우리가 각자의 인생으로 그 소리를 채우길 바랐을 것이다.
오디오를 끄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기록하며 살고 있는가. 내 수첩에는 무엇이 적혀 있는가. 그리고 나에게도 바이올린이 있는가.
말 대신 남기고 있는 것, 아직 건네지 못한 것.
그것이 우리 각자의 바이올린일 것이다.
계산기가 멈춘 뒤에야 들리는 그 음악을, 나는 지금 연주하고 있는가.
Am I playing the music that can only be heard after the calculator stops?(2026.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