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리 오가이 <다카세부네> 정만식의 목소리로 듣고
밤의 정적 속에서 배 한 척이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교토의 다카세 강,
죄인을 싣고 가는 '다카세부네(高瀬舟)'다.
이 고전 단편을 눈으로 읽는 대신 귀로 듣기를 택했다. 낭독자는 배우 정만식. 탁하고 굵직한, 다소 거친 그 목소리가 귓가에 닿는 순간, 나는 이미 차가운 강물 위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죄인 '키스케'와 호송관 '쇼베이'가 나누는 대화의 공기를 납처럼 무겁게, 그리고 기이할 정도로 담담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낭독이 아니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2인극이었다.
만족(知足)이 아니라 감사(感謝)였다
이야기의 초반, 호송관 쇼베이는 죄인 키스케를 보며 기이함을 느낀다. 섬으로 유배를 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키스케는 평온하다 못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쇼베이는 이를 '지족(知足)', 즉 분수를 알고 만족하는 것이라 여긴다. 뼈빠지게 일해도 늘 부족함에 허덕이는 자신과 달리, 욕망의 크기가 작아서 쉽게 만족하는 죄인에게서 부끄러움과 묘한 경외감마저 느낀다. 작가 모리 오가이가 당시 물질만능주의 세태를 비판하며 던진 '지족의 철학'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정만식의 목소리에 실린 키스케의 독백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것은 단순히 '만족'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마음 편히 지내본 적이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밥을 먹여줍니다. 제게는 이것만으로도 분에 넘치는 일입니다."
만족은 기준선이 있다. 컵에 물이 어느 정도 차야 비로소 '됐다'고 느끼는 충족의 상태다. 반면 키스케가 보여준 것은 '감사'였다. 텅 빈 컵이라도 내게 쥐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긍정하는 태도. 감옥에서 주는 밥, 노동 없이 얻은 동전 몇 푼에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는 그 마음은 욕망을 거세한 체념이 아니라, 삶의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순수한 감사의 영역이었다.
논리의 공백을 채우는 진정성
그 '감사할 줄 아는 태도'가 왜 중요했을까. 그것은 이 소설의 핵심 딜레마인 '안락사' 장면의 설득력을 결정짓는 열쇠였기 때문이다.
키스케는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해 고통받는 동생을 발견한다. 군의관 출신이었던 작가의 이력을 증명하듯, 낭독을 통해 들려오는 그 장면의 묘사는 끔찍하리만큼 상세하다. 처음엔 키스케가 의사를 부르려 하자, 동생은 원망 섞인 쇳소리로 간청한다.
"의사가 온다고 낫겠어? 아아, 괴로워... 빨리 뽑아줘, 부탁이야."
키스케가 망설이는 동안 동생의 눈은 무서운 재촉과 증오로 가득 찼다. 하지만 키스케가 마침내 "알았어, 해줄게"라고 답하는 순간, 그 원망스럽던 눈빛은 찰나에 기쁨으로 변한다. 그 안도하는 표정을 본 뒤에야 키스케는 칼을 뽑는다.
나였다면 어땠을까. 사랑하는 가족이 고통 속에서 죽음을 간청할 때, 나는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까.
사실 키스케의 행동이 정당했는가에 대한 논리적 설명은 불충분하다. 법적으로는 명백한 살인이고, 윤리적으로는 구원이다. 이 딜레마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깊은 강이 흐른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키스케의 선택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평소 보여준 '감사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작은 것에도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동생을 죽이면서 느꼈을 고뇌는 거짓이 아닐 것이다. 작가는 치밀한 논리로 안락사를 변호하는 대신, 키스케라는 인물의 됨됨이를 먼저 보여줌으로써 청자를 설득해 버린다. 논리의 거대한 구멍을, 한 인간의 진정성이 메워버린 셈이다.
판단을 유보한 채 미끄러져 가는 배
쇼베이는 혼란스러워한다. "윗분의 뜻에 따르겠다"며 판단을 회피한다. 의사로서 생명의 존엄을 알았고, 관리로서 법의 엄격함을 알았던 작가 모리 오가이. 그는 안락사가 옳은지 그른지 결론 내리지 않았다. 그저 묵직한 질문 하나를 어둠 속에 던져놓을 뿐이다.
"다카세부네는 검은 물 위를 미끄러져 갔다."
오디오북이 끝나고 정적이 찾아왔을 때, 나에게 남은 것은 서늘한 질문 하나였다. 비극적인 선택의 순간, 그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은 내가 내세우는 논리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것.
어둠 속을 미끄러져 가는 다카세부네처럼, 답 없는 질문들이 내 안을 유유히 흐른다.
The legitimacy of a tragic choice is proven not by logic, but by the attitude with which one lives.(26.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