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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양 Nov 25. 2024

삶이 허공이라면


모든 것은 끝이 아니라면 빈틈이다

떨어진 잎사귀는 흙으로 가라앉고

흙은 비를 기다린다

비는 바람에 휘말려 떠나면서도

돌아올 약속을 남긴다


이 모든 움직임 속에서

텅 빈 자리만이 제자리에 남아 있다

너의 손끝에서 흩어진 온기도

다시금 누군가의 이마 위에서 숨 쉰다


삶은 그런 것이다

나선형으로 이어지며 중심을 숨기고

돌아가는 듯 머무르지만

결국 우리가 밟고 서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던 그 자리


나는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지나간 뒤 남은 자국들은

때로는 아픔을 닮았고, 때로는 추억을 닮았다

그러나 손가락 끝으로 더듬다 보면

그 흔적마저 살아 있었다


삶이 허공이라면

그 허공은 차가움이 아니라 따뜻함이다

무엇도 가득 찰 수 없기에

비로소 우리는 흘려보내고, 받아들인다


빈 자리의 중심은 텅 빈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생명이다

그곳에서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온다

봄이 가득 차지 않는 이유는

빈틈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그 빈틈에 바람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허무가 너를 속삭일 때

고개를 숙이지 말고

고개를 들어 바람을 들여다봐라

그곳에서 우리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결국, 빈 자리는 허무의 이름을 빌린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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