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 그 말만 들어도 온몸이 떨린다. 그 단어는 차가운 바람 속에 묻혀 있던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겨울의 끝자락, 얼어붙은 땅 위로 눈물이 섞인 바람이 불어온다. 사람들은 그 바람을 피하려고, 따뜻한 집 안으로 들어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에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눈보라가 휘날리며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가고,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든 따뜻함을 찾아 헤맨다.
혹한은, 겉보기엔 차가운 자연의 현상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변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았을 그 차가운 고통, 그 추위는 단순히 날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추위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든 지키려 한다. 손끝이 시려울 때, 몸을 움츠리고 숨을 크게 내쉬며 그 추위를 잠시라도 피하려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쉽게 따뜻해지지 않는다. 그 추위 속에서 우리는 종종 외로움과 마주하게 된다. 바람이 차가운 만큼, 내 마음속의 그 차가움도 더 크게 느껴진다.
나는 그 차가운 추위를 어떻게든 피하려고 애썼다. 따뜻한 차 한 잔, 오랜 친구의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고 가족의 따스한 손길이 전부 내게는 위로였다. 그런데 그 위로들 속에서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는 얼음처럼 굳어져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추위는 단순히 외부의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시작되었다. 그 안에는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마주한 두려움이 존재했다. 그래서 나는 나조차도 그 추위를 피할 수 없었다.
혹한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서서히, 아주 천천히 다가온다. 마음의 구석구석에 조금씩 쌓이던 상처들이 차갑게 얼어붙으며 나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차가운 마음을 무시하려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사람들 속에 섞여 지나갔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차가운 마음은 깊어져 갔다. 사람들은 내가 아무렇지 않게 보이길 바랐다. 나는 그 바람 속에서 내가 무너지는 걸 보지 않으려고, 더 고독해졌다. 그 추위는 점점 내 안에서 커져만 갔다. 외부의 차가움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내 마음을 차갑게 만드는 그 고요한 시간이었음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어느 날 내가 돌아보니 그 추위는 이제 조금씩 지나가고 있었다. 차갑게 얼어붙었던 마음에 따뜻한 햇살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그 햇살은 사람들의 작은 손길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눈빛 속에서, 그저 일상 속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들 속에서 느껴졌다. 마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처럼, 그 속에서 나는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추위가 지나간 뒤에 남는 것은 그동안 내가 놓쳐버린 소중한 것들이었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 그들의 마음이 나를 얼마나 지켜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얼어붙었던 땅에 한 줄기 봄바람이 불어오면, 그 순간은 마치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때 비로소 나는 깨닫는다. 추위는 그저 지나가는 것이었다는 것을. 그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고, 나는 그 추위 속에서 더 강해졌다. 그리고 결국, 다시 봄이 오는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새롭게 시작되는 봄처럼, 사람은 추위 속에서도 다시 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추위 속을 걸어간다.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불빛을 하나하나 붙잡으며, 그 불빛들이 내게 이겨낼 힘을 준다고 믿으며. 그 속에서 나는 다시 자신을 찾고, 다시 따뜻해지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 길을 걸으며, 나는 이 추위가 나에게 선물한 것들을 하나씩 되돌아본다. 추위는 결코 나를 잠재우려 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 속에서 더 깊은 이해와 강한 의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추위 속에서 조차도 자신을 놓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