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은 그저 날짜에 불과한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겨울의 그림자가 우리 삶 속 깊숙이 스며든다. 차가운 바람이 갑자기 창문 틈새로 파고들 때, 마치 오랫동안 놓쳤던 어떤 기억이 떠오르듯, 겨울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속삭인다. “준비됐니? 이제 너의 마음을 덮어버릴 시간이다.”
입동을 맞이하는 아침, 창밖은 이미 흐릿한 하늘을 띄우고 있었다. 뿌옇게 흐린 빛이 마치 세상의 끝자락에 기대어 있는 듯, 따뜻한 햇살은 찾을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생각했다. 왜 겨울은 늘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올까? 겨울은 그저 차가운 바람, 싸늘한 온도, 쏟아지는 눈이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무수한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길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나뭇가지에 붙은 마지막 낙엽을 보게 된다. 그 낙엽은 이미 더 이상 꽃을 피울 수도 없고, 여름의 푸르름을 기억할 수도 없다. 그저 부서져 가는 모습으로 끝을 맞이할 뿐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그것도 결국, 우리 같다.' 우리는 어느 순간, 그 낙엽처럼, 지나온 계절을 떠나보내야 할 때가 오기 때문이다. 그 낙엽이 마지막으로 떨어지는 순간처럼, 우리에게도 어느 날, 모든 것이 ‘끝’이라는 순간이 찾아온다.
입동이 오는 그날, 나는 그녀와 같은 의미를 지닌 것들을 생각하며 창문을 열었다. 그 바람은 온몸을 휘감고 지나가면서 내 속에 있던 묵은 기억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사랑했던 사람의 웃음, 떠나간 사람의 울음, 지나치게 뜨겁던 여름날의 피로… 겨울은 모든 걸 정리하는 시간처럼, 그렇게 마음을 비우게 만든다.
겨울의 시작은 그 자체로 차갑고 쓸쓸하다. 그러나 그 차가움 속에 숨겨진 따뜻함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겨울을 살아내는 법일 것이다. 손끝이 시려워지면, 그것을 감싸는 따스한 장갑 하나가 필요하듯, 마음도 어느 순간 그리운 것들에 대해 묻고 싶어 한다. 우리가 지나쳐온 모든 계절을 되돌아보며, ‘그때’ 나에게 다가갔던 따뜻한 순간들을 떠올린다. 그리운 사람의 미소, 한때 내게 세상의 전부였던 그 사랑의 기억들이 다시 나를 스쳐 간다.
입동은 그냥 겨울의 첫 시작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더 크다. 겨울의 첫 바람은 우리의 마음을 덮어버린다. 얼어붙은 땅을 깨고 나온 봄의 꽃을 기다리며, 우리는 매년 그 시절을 되새기고, 다시 한 번 마음을 채운다. 겨울은 지나가면 다시 봄이 오듯, 나의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치유될 것이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