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같은 오후
그림자는 길어진다
너의 말들이 만든 구멍으로
빛이 새어나간다
꿈결 같던 약속들은
시간의 손바닥에서 부서진 유리조각
나는 그것들을 주워 담는다
손가락이 베어도 말없이
거짓의 얼굴은
매끄러운 돌처럼 단단했다
나는 오래 속았다
너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을
진실이라 믿으며
이제 나는 안다
사람은 결국 자신의 그림자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의 무게는
행동보다 가벼웠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상처들이
밤마다 속삭인다
내 믿음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내 사랑이 얼마나 눈멀었는지
이제 나는 돌아선다
너의 부재가 만든 공간으로
그 텅 빈 자리에서
나는 다시 나를 만난다
어둠 속에서
별들은 제 자리를 지킨다
배신의 시간 너머로
나는 천천히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