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에 다시 불이 들어오다

by 아무개


한동안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린 사람처럼 살았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움츠리고,

버려지지 않기 위해 더 붙들며.


그러다 어느 날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에

나는 조용히 가운데로 몸을 옮겼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


길게 자라 방황처럼 흘러내리던 머리를

싹 잘라냈다.

사라진 건 머리카락뿐인데

가벼워진 건 삶의 방향이었다.


그동안 멀리 밀어두었던 것들이

하나씩 나를 다시 찾아왔다.


소설은 오래 열린 창문처럼

내 안에 바람을 불어넣었고,

영화는 잃어버린 감정의 자막을

다시 켜주었고,

음악은 내 이름을 부르는 듯

심장 전체를 환하게 울렸다.


나는 그때 비로소 알았다.


세상을 바꾸는 건

커다란 선택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 자리 이동 한 번,

지방처럼 붙어 있던 마음을

한 번 밀어내는 용기라는 것을.


나를 버티게 하는 건

누구의 손도, 어떤 약속도 아니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나의 가운데,

그 조용한 중심이

다시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제 나는 안다.

언제 흔들리더라도

돌아와 앉을 자리는

언제나 이곳이라는 것을.


오늘도 나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내 중심의 온도에 몸을 맞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내가 돌아올 곳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루 다섯 번의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