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에 내려앉은 하루

by 아무개


산책길 벤치에 앉아 있을 때였다.

민들레 씨앗 하나가

내 무릎 위에 가볍게 착지했다.


바람도 없는데

먼저 다가오는 것들은

이렇게 작은 것들일까.


손끝으로 건드리자

한때 내 곁을 뛰어다니던

그 아이의 털빛이

미세한 먼지처럼 되살아났다.

기억은 늘

가장 약한 부분을 먼저 흔든다.


어제와 같은 길인데

오늘의 하늘은

절반쯤 구름에 멍들어 있었다.

나는 그 아래에서

별로 변하지 않은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람에게도 원래의 온도가 있다면

나의 기본값은

아마 외로움 쪽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스쳐가지 않아도

천천히 제 자리로 돌아가는.


네가 자주 멈춰 서던 곳엔

너구리 몇 마리가

새끼를 낳았다는 걸

네가 알았으면.

네가 떠난 자리 위에서

다른 해, 같은 계절이 숨을 쉬고 있었다.


계절은 관성처럼 바뀌고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보지만

뒤를 본다고

시간이 멈춰주는 법은 없었다.


모든 색이 희미해지는 오후,

내 무릎에서 사라진 그 씨앗은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지만

사라지고 난 자리에서만

더 뚜렷해지는 것들이 있다.


오늘의 슬픔도

그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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