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나를 이 세상에 홀로 서있게 만들었다

10화 아빠의 죽음은 나를 이 세상에 홀로 서있게 만들었다

by 태연

모두 다 사라져 버렸다는 망각 속에서

그저 견딜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은

절실한 외로움으로 나를 한없이 끌어내렸다.


아빠의 죽음이 나를 깨웠을 때, 온몸 가득 채운 고통은 아빠를 잃은 슬픔만이 아니었다. 여태 가뒀놓았던 괴로운 감정들이 이를 계기로 원자폭탄처럼 연속적인 폭발을 일으켰던 것이다.

지난 세월 억눌러온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

고등학교 1학년, 부모님의 이혼 후 우리 가족은 분열로 인한 슬픔을 각자 견뎠다. 모두 상처를 받았지만 그 누구도 어느 누구에게도 괜찮은지 물어보지도 안아주지도 않았다.

엄마가 떠난 집은 적막했고 불안했다.

그저 각자의 상처를 숨기느라 애쓰며, 이에 대해 우리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세월에 맡긴 채 고통 속에 있음을 부정하고, 같이 밥을 먹을 때도 언제나 외로움이 입에 썼지만 외면했다.

짙고 무거운 공기가 집안을 점령했고, 어찌할 바를 몰라 밖으로 돌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저 서로 모르는 척했다. 원래 그렇게 하는 거라고 여겼다.

그땐...


그 적막과 그 불안은 27살이 되어서야 겨우 누그러졌던 것 같다.

아빠와의 단둘이 삶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서야.



감정을 묻어버리는 법

언제나 그랬다. 괴로움이 밀려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 안을 들여다보는 일은 감히 생각조차 못했다. 시간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그런 사회의 믿음에 기대어, 나도 모르게 감정을 덮을 것들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어느새, 내 안의 감정들은 말도 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스스로 다 잘 넘겼다고 여겼다.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며, 감정을 잘 다루었다고 착각했다.

"상처는 그냥 내버려 두는 거야. 들쑤시면 덧나." 그렇게 배워왔다.


억누르고 모른 척했던 감정들.
그 조용한 두려움과 죄책감은, 결국 더 깊이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나의 생각과 감정을 지배해 왔다.






폭풍우의 시작

20여 년이 흐르고 아빠의 죽음이 나를 깨웠다.

엄청난 위력과 파괴력은 삶의 감각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앗아갔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나에 대한 인식도 하지 못한 채 차오르는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괴로워 하루에도 몇 번씩 의식을 잃었다.

어떠한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는 이곳에서 나를 꺼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겨진 가족들과 똑같은 슬픔을 나눌 수 있을 거란 당연한 기대감이 채워지지 못한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슬픔으로 오롯이 혼자라는 생각과 비워내지 못한 실망감에 공허함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처음으로 나를 들여다보다

그러다 타인이 던진 나지막한 질문을 시작으로, 내 마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조금은 낯선 타인이 되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 일이 나에게 엄청난 큰 변화와 근본적인 참나를 만날 수 있는 문을 열어줬다는 것을 당시엔 알지 못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처들이 내 안에 있었고, 감정들과 뒤엉켜 덩어리져 있었다. 그 덩어리들을 겉에서부터 천천히 해제하기 시작했다.

어떠한 일로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됐으며,

왜 이러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를 바라보며

지난날 까닭 없는 나의 행동들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상처의 뿌리를 찾아서

아빠의 병간호를 하면서도 생각의 다름과 의견차가 있었던 언니와 대립하며 언니와의 분리를 느꼈고, 죽음을 애도하는 과정에서는 엄마와 언니가 나와 같은 깊이의 슬픔을 공유할 수 없음에 아빠와 내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아빠를 목숨보다 사랑한 사람이 나뿐이었다'는 생각까지 들며, 그게 왜 그렇게 애달픈지, 왜 이러한 생각과 감정이 들었는지...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상처부터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솔직해줘야 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거부했던 일들과 감정들을, 감았던 포장지들을 하나씩 벗기고 뜯어 숨겨놓았던 것들을 완전하게 꺼내 놓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했다. 어떠한 감정도 생각도 판단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나를 품었다.






치유의 시작

그러고 나서야 가족에 대한 애착이 컸던 나를 보았고, 가족과의 해체로 인한 아픔이 세월을 따라 커지며 그리움으로 변해 있었다는 걸 알았다. 아빠와 나만 남겨졌다고 생각하며 같이 살아왔기에 아빠에 대한 책임감이 더욱 강해져 있었고, 그에 따르는 죄책감이 나를 더 옥죄고 있었던 것이다.


외다리 가정이 되어 겪은 불안함을 토닥여주었다. 엄마의 새 출발을 응원했지만 상처받았음을 인정했고, 엄마의 고단함을 같이 느꼈음에도 상처받은 나를 스스로 질책한 것에 "그럴 수 있다"라고 말해줬다.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엄마와 언니에게도 같은 무게의 슬픔으로 아빠를 애도하길 원했던 나에게 다름을 알려주었고, 그 속에서 하나 됨의 가족의 따뜻함을 다시 느끼고 싶었던 나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었다.



폭풍우 속에서 걸어 나오는 법


아빠의 죽음은 나를 이 세상에 홀로 서있게 만들었다.


실체를 보지 못하게 사방으로 가로막고 있던 나를 형상화한 감정의 덩어리들과 잡음의 생각들이 모두 걷히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총체적인 복잡한 알 수 없는 그 거대한 폭풍우 속에서 바로 서서 걸어 나가기 위해선, 그 거대함의 근본적인 이유부터 찾아야 했으며, 그 속에 갇혀버렸다고 착각하고 있는 나를 먼저 알아차려야 했다.


그리고 묶여 있는 줄을 찾아

그 속에 감정이라는 형상으로 나를 그리고 있는 양상들을

바라봐주고 다독여주고 지켜봐 주면

그 거대함 속에서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정중앙에 떠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저 지금이라는 순간,

현존을 위한 다리를 일으켜 세워 멀어져 가는 폭풍우를 걸어 나오면 되었다.



고통은 나를 파괴하려 온 것이 아니었다.

나를 찾게 하려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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