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떠나고 그 자리엔

11화 사랑한 만큼의 고통의 깊이가 느껴지리라

by 태연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선 고통의 근본을 알아야 했고,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삶의 목적을 알아야 했으며,

이 두 가지를 알기 위해선 나를 알아야 했다.


나는 나를 알지 못했다.
나는 나를 잊고 살았다.
나는 살아가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저 환상인지도 모르는 현실세계에서 돈을 쫓고 욕망을 쫓으며, 왜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조차 갖지 못했다. 이 세상에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짜라고 생각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철저히 무시했다. 지구라는 행성에서의 오감이 들려주는 것들이 전부인 줄 알았다. 느낌이나 직감, 기적 등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은 전부 우연이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했다.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다고 사회는 지속적으로 말해줬다.




그러다 나는 깨어났다.
아빠의 죽음이 주는 고통을 마주하게 됨으로써.

탄생과 죽음은 당연한 세상의 이치라고 배웠고, 우리 부모님의 죽음도 당연하다고 예상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뒤따르는 고통은 전혀... 전혀... 예상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아픔이었다.

충분하게 살다 평온하게 갔으면 축복과 사랑 속에서의 슬픔이 조금 새어 나올 뿐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모진 병으로 살기를 애원하는 사랑하는 이의 상실은 단순한 슬픔을 넘어서며, 세상과 나에 대한 분노 그리고 끝없는 자괴감으로 나를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끌고 갔다.

암에 걸려 숨쉬기조차 버거운 육체의 고통과 뼈만 앙상한 몸에 수시로 꽂아대는 주삿바늘, 바깥공기 한번 쐬지 못하는 괴로움에 시달렸지만, 이보다도 앞으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를 몸서리치도록 무서워했던 아빠는 너무나 살고 싶어 했다. 이런 아빠를 나는 지켜주지 못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빠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원망하고, 나를 괴롭히는 무지한 선택들까지 하고 있었다.

이에 점점 더 힘을 얻고 커지는 고통이라는 녀석은 내 온몸을 휘감고 정신까지 집어삼켜버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곳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걸. 그러기 위해선 그 녀석의 눈을 바라봐야 한다는 걸.

두려움에 가득 찬 채 마주한 그 거대한 고통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요히, 내가 만든 현실에서의 나의 겉껍데기와 내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던 환상의 가면들을 모조리 벗겨주었다. 그리고 곧 잔재된 모든 연기가 거치고... 그곳엔 순수의식을 가진 나만이 있었다. 원래의 나. 근본의 나... 그 순수한 의식은 마음속 깊은 곳에 가득 찬 고양된 에너지의 사랑이었다.


내 안의 나는 말하였다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살아가라.
이는 내가 원하는 삶의 최종목표로 이끌 것이다.

가슴이 원하고 가리키는 일을 하라.
온몸의 진동이 알려주는 그 일을 하러 이곳에 온 것이니.

가슴을 뛰게 만드는 그 일은 나를 살게 하고, 날마다 나를 창조하며 내 삶의 최종목표를 이루게 할 것이다. 나는 창조하러 왔노니.

고통은 진정한 나를 찾아 진정한 삶을 알려주기 위해서 나에게 찾아왔던 것이다.




마음속 아빠의 자리

그제야 보게 된 마음속 아빠의 자리에선 작은 터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끊임없이 차가운 뭔가가 흘러나오기를 반복 또 반복하였다. 그때마다 아물지 않은 벌건 상처를 날카로운 칼날로 베는 듯한 참기 힘든 고통이 느껴졌다.

끊임없는 흐름 속 차가운 감각조차 무뎌질 때쯤, 알 수 없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건 맑은 에너지의 샘물 같았다. 그리고 가늠할 수 없는 상처의 골을 투명하게 채우고 있었다.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마주하면 아빠의 샘물은 진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내 마음을 적신다.

그 샘물은 낯선 타인을 사랑하고 있는 나를 보게 해 주었다.


이해하는 마음

용서하는 마음
구별 짓지 않는 마음
타인의 고통을 덜어내 주고픈 마음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들어 주었다.

아니, 찾아주었다. 원래의 나를.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 죽음은 모두를 위한 새로운 시작임을 알게 되었다.

아빠의 죽음은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 주었다. 아니, 잊고 있던 잃어버렸던 나를 찾게 해 주었다.

그리고 마르지 않는 그 샘물은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같이 나누며 그들을 보듬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주었다.


이것이


아빠가 나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사랑한 만큼의 고통의 깊이가 느껴지리라.
그 깊이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를 사랑하며 만들어낸 그 웅장한 크기의 그곳엔
끊임없이 샘솟고 흐르는 순수한 의식의 샘물이 채워지리라.
그곳은 끊임없이 흐르며
나를 순수한 의식으로 살아가게 해 주리라.



이전 10화죽음은 나를 이 세상에 홀로 서있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