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세계를 선택하고, 수용으로 그 이전을 기억하는 것에 대하여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같은 감정, 같은 관계, 같은 질문을
늘 같은 얼굴로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글은 그 반복을 바라보는 위치에 대한 이야기다.
이 반복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어딘가에서 멈춰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보통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믿음은 진실을 향해 가는 과정이고, 수용은 그 믿음 이후에 도달하는 상태라고.
하지만 이 둘은 순서의 문제가 아니다. 믿음과 수용은 전혀 다른 층위에서 작동한다. 진실은 믿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믿음은 도달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경험의 경로를 통과할지를 고정시킨다.
믿음에는 항상 가능성이 있다. 반대가 존재하고, 선택의 여지가 있으며, 그래서 유지하려면 에너지가 든다. 믿음은 마음이 무언가를 붙잡는 구조이다. “믿어야 해”, “흔들리면 안 돼”, “의심하면 무너져” 같은 문장들이 따라붙는다. 즉 믿음은 아직 분리된 상태에서 진실에 닿고자 하는 마음의 시도다. 그래서 그 안에는 종종 의지와 억지가 섞인다.
수용은 전혀 다르다. 설득이 필요 없고, 반대도 없고, 유지할 필요도 없다. 수용은 알아차림에 가깝다. 비유하자면 믿음은 "태양이 뜰 거라고 믿어"라고 말하지만, 수용은 "아, 이미 떠 있네"라고 말한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