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오늘도 아빠를 잃은 애절한 슬픔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아빠를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수술 뒤, 1년을 견디셨다. 그러는 사이, 코로나가 길을 막았다. 혹시나, 그 한 번의 만남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까 두려워 나는 그 거리를 끝내 줄이지 못했다.
바이러스를 옮길까 봐, 아빠의 약해진 몸에 독이 될까 봐. 그 두려움이 사랑보다 컸다.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것이 전부였다. "딸아, 괜찮다"는 아빠의 목소리가 조금씩 약해져 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나는 여전히 한 발짝 더 다가가지 못했다.
2022년 늦봄,
아빠의 암이 다시 찾아왔다.
재수술은 어렵다는 말,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이어졌다.
병원 입구에서 아빠를 보았다. 두툼한 손을 흔들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렇게 힘 있게 웃던 모습이 내가 본 아빠의 마지막 건강한 얼굴이었다는 걸, 그땐 몰랐다.
다시 마주한 아빠는 달라져 있었다.
휠체어에 몸을 기대고, 바짝 말라버린 모습으로 로비에 있었다. 담담히 이야기를 시작하던 아빠는, 끝끝내 참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손으로 눈을 비비며 울음을 터트렸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며...
항암치료 후 몸이 더 악화돼,
가망이 없다고...
그 순간, 내 심장이 찢겨 나가는 것 같았다.
‘우리 아빠가… 이제 곧 죽는다고 울고 있어. 내 앞에서, 딸들 앞에서…’
세상은 멈춰 있었고, 나는 그 멈춤 속에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그날 이후, 아빠는 휠체어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조금씩 더 힘겨워졌다.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이는 것도, 숨을 쉬는 일도 너무나도 버거웠다. 그럼에도 아빠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남은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보려 했고, 끝까지 살아내려 했다. 죽음을 준비하면서도, 삶을 향한 의지만은 놓지 않았다.
나는 아빠의 곁에 앉았다. 손수건에 물을 적셔, 마른 피부를 천천히 훑었다. 굳은살과 주름을 따라 손길이 머물 때마다, 그 안에 담긴 세월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어깨와 다리도 조심스레 주물러주었다. 조금이라도 편안하길, 조금이라도 덜 힘들길 바라면서...
아빠의 숨이 오르내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늘어나길 기도하듯 바라면서. 하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매일 조금씩 더 얕아지는 숨소리, 조금씩 더 차가워지는 손끝을 지켜보며 나는 무력함에 잠겨갔다
그렇게 바람이 멈추듯,
고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아빠는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다.
긴 싸움을 내려놓고,
말없이 우리 곁을 떠났다.
희미한 시간 속에 남겨진 순간들이 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상처였다는 것을. 그 기억들은 여전히, 불쑥 나를 찾아온다. 아무 이유도 없이.
문득, 우리 앞에서 아이처럼 울던 아빠가 떠올랐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다. 같이 울어주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 장면이 왜 이렇게 자주 떠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은 흘렀는데, 그 울음은 아직도 내 귓가에서 젖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조용히 앉아 글을 쓴다. 의도적으로, 그 장면을 꺼내어 눈앞에 놓는다.
내 이야기를 가장 정직하게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라는 걸 알기에.
문장을 적어 내려가며 비로소 알았다.
그때 나는, 이렇게 슬펐구나. 이렇게 깊게 베어있었구나. 눈물이 가슴을 쪼개듯 흘러내렸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마음. 오직 감정만이 있었다.
참아야 한다고, 드러내면 안 된다고 눌러둔 슬픔.
나는 늘 그랬다. 감추고 외면하는 것밖에,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알게 되었다.
슬픔은 밀어낼수록, 더 날카로운 고통으로 되돌아온다는 걸.
그때 처음, 그 슬픔을 품어보기로 했다.
그러자 호수 하나가 보였다. 물빛은 깊고, 고요했다.
나는 한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때야 보았다.
호수 건너편에,
또 다른 내가 서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이 줄어들 거라 믿었다. 하지만 여전히 슬픔은 내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다만, 그 모양이 달라졌다. 벽이 아니라 사람들의 슬픔이 와서 잠시 기댈 수 있는
조용한 숲처럼.
나는 그곳에서
오늘도 아빠를 잃은 애절한 슬픔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렇게 아빠의 자리가,
내 안에서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
아픔에서 그리움으로, 상실에서 사랑의 기억으로.
아빠는 떠났지만, 아빠가 내게 남겨준 것들은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그것이 슬픔이 숲이 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