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5살의 나와 만나다.
처음 마주한 나
10월의 막바지쯤, 일주일에 한 번씩 심리상담사분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나를 처음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기대감 없이 왠지 모를 긴장감만을 안고 갔던 자리. 사당역의 5평 남짓한 작은 스터디룸에서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낯선 상담사 선생님과 마주했다. 좌측 창가에 조그마한 펭귄 미니어처 두 마리가 나를 잔잔하게 다독여주고 있었다.
처음 시작은 시스템 등록이었다. 상담 도중 위험 상태라고 판단될 시 가족에게 알린다는 동의서와 연락받을 수 있는 보호자란을 작성했다. 언제나 늘 그랬듯이 성인이 되어 훌쩍 어른이라고 불리는 나이가 되었어도, 그 자리에는 여전히 엄마를 적었다.
첫 질문이 아련하게 기억난다.
"요즘 기분은 어때요?"
나의 감정을 확인하는 것을 첫걸음으로, 쉴 새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생소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당시에는 상담사분에게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나를 바라보며 지난 감정 상태를 상세히 설명해 준 것 같았다.
'이런 일들로 이런 감정들을 품고 있었구나. 그래서 내가 지금 이러한 감정이 드는구나...'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지난 감정들을 바라보며, 미처 흘려보내지 못해 막힐 대로 막히고 고일 대로 고여 딱딱하게 굳어져버린 커다란 상처를 발견했다. 얼마나 놀라고 의아했는지 모르겠다.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생각과 감정들을 지니고 있었던 것에.
기억 속 아빠의 모습
젊었을 적 우리 아빠는 바람둥이였다.
거기에 술을 마시면 고주망태가 되어 사고 치기가 일쑤였고, 만취한 채 돌아와 맨손으로 집안을 자주 부수곤 했다. 아빠의 이런 만행은 잦을 대로 잦았다. 아침에 일어나 지난밤의 행태를 보고 미안해하며 치우는 아빠는 전날 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다행히 가족을 때리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남들에게 싫어하는 말을 할 줄 모르고 여린 마음에 쉽게 상처받아 쌓아 온 모든 감정들을, 술에 취해 집안을 부수는 행위로 토해내고 있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는 그런 아빠를 두려움에 떨며 지켜봐야 했다. 언니와 나는 그랬고, 엄마는 배려심 많은 평소 아빠의 모습을 보고 함께했지만, 술에 의식을 빼앗긴 아빠를 18살의 어린 나이에 임신한 채로 쭉 이겨낼 수밖에 없었다.
5살 때 일이었다.
어느 날 저녁, 엄마 아빠의 귀가가 늦어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두려움에 떨었다. 더군다나 엄마가 없을 때는 더욱더. 저 멀리 밖에서부터 의식을 잃은 아빠의 목소리가 동네를 마구 찢어대고 있었다. 언니와 나는 조심스레 작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어김없이 들려왔다. 현관에서부터 찢어지는 목소리와 함께 창문들이 마구잡이로 깨져가는 소리가. 집안에서는 가구들이 비명을 질러댔고, 잠긴 방 한쪽 구석에서는 우리 둘이 서로의 손을 꽉 붙잡고 앉아 있었다. 벽 너머로 들려오는 파편 소리에 온몸이 얼어붙은 채, 우리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언니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난 어떠한 물음도 하지 못한 채, 그 손에 이끌려 따라나섰다. 결국, 우리는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왔다.
깨진 현관문 사이로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거기에는 술에 절여져 자유인이 된 아빠가, 손에는 피범벅을 한 채 현관에서부터 거실을 마구잡이로 횡단하며 집을 부수고 있었다. 그 모른 척하고 싶은 아빠의 실루엣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깊게 새겨져 있다. 지우고 싶었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를 피해 동네 어느 아주머니 집으로 향했다. 어두운 주택가 골목을 언니의 손을 잡고 급하게 뛰어가고 있었다.
상담사님의 낯선 목소리는 여기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이 아이의 마음을 살펴보고 어루만져주는 것부터 하라는 듯이.
나는 항상 아빠보다는 엄마가 좋았고 엄마 편이었다.
아빠가 사고 칠 때마다 엄마의 그 불안한 시선과 보이지 않는 떨림까지 다 함께했다. 나는 엄마에게 늘 의지했지만, 엄마가 늘 안쓰러웠다.
좋아하는 엄마를 내가 그리 쉽게 보내줄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사건은 11살 때 추석이었다.
기분 좋아야 할 명절이지만, 친척들 앞에서 술에 지배당한 아빠는 엄마에게 정말 지울 수 없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자세히 적지 않는 이유는 우리 엄마가 또다시 그 일을 떠올리지 않았으면 해서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안방 문 너머로 약하고 작은 존재가 되어버린 엄마의 두 어깨가 움츠려든 채 흔들리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보았다.
어린 나에게는 정말 큰 충격이었다. 정확히 엄마가 느끼는 그 감정을 그대로 느꼈던 것 같다. 엄마는 내가 이 모습을 보았다는 걸 모르고 있을 것이다. 굳어진 몸이 되어 조용히 돌아섰고, 그 장면은 마음의 벽에 균열처럼 새겨졌다. 그냥 너무 슬펐고 애처로웠다.
이별의 순간
그 후 몇 년이 흐른 뒤 우리 엄마 아빠는 결국 이혼을 했다.
나는 엄마가 집에서 짐을 싸서 나가던 날 엄마를 붙잡지 않았다. 당시의 감정들과 장면들은 선명하게 여전히 남아있다. 그때 엄마가 알려준 된장찌개 레시피는 여태 잊지 못한다.
나의 눈을 바라보고 울먹이며 돌아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엄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마, 차 안에서 엄마가 혼자 많이 울었을 엄마를 상상한다. 그저 엄마가 행복했으면 했다. 아빠 때문에 힘들고 속상해하는 엄마 때문에 항상 마음이 쓰렸다.
엄마에게 울면서 가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엄마를 부둥켜안고 큰소리로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하지만 묵묵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그렇게 엄마를 보내주었다.
37살이 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난다.
발견된 상처
엄마 아빠의 이혼은 영원할 거라고 여겼던 우리 가족의 해체가 되어 가장 큰 상처로 남아있었다.
깊게 찢겨 나갔지만 꿰매지도 못한 채, 얇은 거즈로만 덮어놓고 모른 척 방치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20년이나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상담실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 상처와 마주했다. 그동안 단단히 봉인해 두었던 기억들이 하나씩 꺼내어지면서, 나는 그 안에 숨어있던 5살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서워서 떨고 있던 아이, 엄마를 보호하고 싶었던 아이, 아무렇지 않은 척 참아야만 했던 아이. 그 아이는 여전히 내 안에서 치유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 5살의 가여운 아이와 만났다.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그 아이에게 이제야 말을 걸었다. "많이 무서웠지? 혼자 참느라 많이 힘들었지?"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울먹였다. 나는 상상 속에서 그 작은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동안 혼자 견뎌온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용감했는지 말해주었다.
그리고 약속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고, 어른이 된 내가 지켜주겠다고.
그 순간 뭔가가 내 안에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상처가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치유의 시작이었다.
5살의 나와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만남을 통해 나는 비로소 진짜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상처받은 아이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안아주는 것, 그것이 치유의 첫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