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8화 나는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by 태연


“말할 사람이 없어요.”


그 한 문장이 망치처럼 가슴을 쳤다. 쾅, 하고.
그것은 분명 그 남자의 말이었지만, 동시에 내 안에서 오래전부터 떠돌던 말이기도 했다. 말할 사람이 없다는 건, 곧 살아 있다는 감각마저 겨울밤의 적막 속에 묻혀버리는 일 같았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뒤, 나는 자주 죽음을 생각했다. 아니, 생각했다기보다… 그런 생각들이 찾아왔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무단침입처럼. 어느 날은 현관 앞까지 와 있었고, 또 어느 날은 침대 밑에 엎드려 날 지켜보고 있었다.


SNS에서 몰래카메라 영상을 보게 되었다. 한강다리 위, 뛰어내리려는 남자,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가 망설이고 있는 그 틈에, 한 여자가 달려들어 그를 붙잡았다.

그녀가 떨리는 몸을 차분함에 숨기며 물었다.


“왜 그런 선택을 하려는 거예요?”


그건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 물음은 그의 손을 붙잡았고, 더 깊은 곳, 아무도 닿지 않던 어둠 속 무언가를 건드렸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죽고 싶다기보단, 너무 아팠던 건 아닐까. 살고는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르는 상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누군가 알아채주길 바라는 신호

.

그녀의 말은 신호에 대한 응답이었다.

다급했지만 정중했고, 조용했지만 단호했다. 그것은 생의 언어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가장 깊은 외로움은 아무도 없다는 게 아니라,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외로웠다. 말할 사람이 없었다.

감정도, 생각도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꺼내 보일 수 없었다. 가족들은 걱정했고 친구들은 곁에 있으려 애썼지만, 나는 더 깊이 안으로 숨었다. 슬픔이 너무 커서, 어디까지가 숨이고 어디까지가 울음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난 뒤, 나는 자주 상상했다. 또다시 누군가를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일이 닥친다면, 나는 아마도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

비워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감정은 차곡차곡 쌓여 커져만 갔다.

그 무게 앞에서 나는 아이가 되었다. 울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고, 그저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터지지 않게 하기 위해. 조용히 견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났다.


나는 늘 누군가와 함께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눌 수 없는 순간이 이어지면서 그 믿음은 서서히 허물어졌다. 결국 나는 혼자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분리된 삶 속에선 그 진실이 가려진다. 혼자 서는 법을 배워야 했다. 나라는 뿌리를 깊이 내려야 했다. 내 안의 흔들림이 멈춰야 비로소 세상의 실체가 보였다.

나는 두 손으로 환영을 붙들고 버텼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쥐고 있었기에 사라졌을 땐 새하얗게 질린 손끝만이 남았다. 서 있을 곳도, 딛고 일어설 다리도 없었다. 나는 천천히, 조용히 끝 모를 어둠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작은 체구에 어려 보이는 외모의 상담사 선생님이 있었다.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 한 치 흐트러짐 없이 내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적절한 순간마다,


“왜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요?”


조용한 의문을 건넸다. 그 질문들은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길로 살며시 이끌었다. 한 시간,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선생님과 나, 두 사람이 나누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는 어느새 하나가 되어 방 안 가득, 창틀과 문틈까지 비집고 스며들었다.

낯설면서도 낯익은 그 감정들은 의식의 저편에서 부드럽게 조각조각 흘러내려 흐릿했던 기운을 점점 맑게 했다. 주변의 공기마저 함께 물들어 스스로 치유되는 가벼움을 느꼈다.


판단 없이 들어주는 그 말들, 감정을 들여다보게 하는 조심스러운 질문들은 어린아이가 살기 위해 꽉 움켜쥐었던 두 손을 조용히 감싸 안아 포개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 힘을 빼게 했다. 그렇게 막막하고 거대했던 감정들이 조용히, 조금씩 흘러나갈 수 있는 작은 틈이 열렸다.



나는 마침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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