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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엽시계 Mar 26. 2022

어쩌면 당신은 가족 학대범 일수 있다.

반려동물인의 동물학대

반려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정말 많기는 많은 모양이다.

반려 동물인들의 숫자가 1,5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하니 정말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이겠지.     


과거에는 애완동물이라고 했는데 나와 함께 인생을 살아간다는 의미의 반려동물로 불린 지도 한참 되었다.     

반려동물 관련 산업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

반려동물 호텔까지 있을 정도니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조상님의 말씀이 절떠오른다.     





그런데 과연 지금 반려동물과 삶을 함께 하시는 분들 중 과연 진정으로 그 동물을 진짜 가족으로 여기고 사랑하는 이들이 몇이나 있을까 궁금해진다.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동물을 키우면서 “나는 동물을 사랑한다.”라는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표적인 반려동물은 누가 뭐라 하여도 강아지, 즉 개일 것이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아파트나 연립주택 형식의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랑스러운 강아지는 시멘트 바닥의 방에서 자라고 있다.

네 발로 땅을 밟고 살아가야 하는 동물인 개가 말이다.     


여러 마리의 개를 키우는 사람들도 지만 보통은 한 마리의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그 개는 주인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방 안에서 혼자 외로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외로움에 지쳐 한자리를 계속 도는 이른바 정형 행동 즉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개들의 모습을  한 번 정도는 TV에서 보았을 것이다.     


주인이 집에 올 때까지 좁은 집안에서 외로움에 힘들어하는 그 개의 아픔을 주인은 진정 모르고 있는 것일까?     



가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곤 한다.     


키우는 개의 짖는 소리에 이웃집과의 분란을 방지하기 위해 개의 성대를 수술해서 짖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러면서 그 개와 함께 하기 위해 그 개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새끼를 가질 수 없게 다른 개를 임신시키지 못하게 중성화 수술까지 시키는 경우도 많이 볼 수가 있다.    


모든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종족 번식의 욕망을 주인이라는 지위로 그것을 막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 개를 사랑하기 위해 같이 살기 위해라는 변명이 말이 되는 것일까?     


만일 부모님이 사랑하는 나를 위해 나의 성대를 절단하고 내가 아이를 갖지 못하게 나를 불임 수술 대위에 눕힌다면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신의 삶을 함께 하는 동물이라고 말하고 우리 개는 단순한 개가 아니라 가족이라고 말하면서 어찌 그리 잔인하게 자신의 가족에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신의 가족을,

자신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집에만 있게 하고,

조금 시끄럽게 떠든다고 성대를 제거하고,

아이는 필요 없다고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진정 자신의 가족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동물을 키우면서 자신은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의 착각에 빠져 사는 사람이라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휴가철만 되면 길거리에 버려지는  수많은 동물들이 바로 그런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물론 사랑으로 자신의 반려동물을 보살피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가끔 TV를 보다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느껴질 정도로 동물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존경심까지 들 도 있다.     


나도 어린 시절도 그랬지만 지금도 개를 무척 좋아한다.

어린 시절 집에서 키워 보기도 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키우지 않는다.     

갑자기 싫어져서가 아니고 깊이 생각을 해보니 나의 집에는 마당도 없고 좁은 방안에 에너지 넘치는 개를 키우면 개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몇 해전 TV 프로그램에서 한 개가 낳은 여러 마리의 새끼들이 각기 다른 곳으로 입양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한 강아지는 대형 아파트에 사는 사람에게 양되어 초호화 프리미엄 사료를 먹고 자라고,

한 강아지는 시골에 살고 계신 한 할아버지에게 양되어 넓은 마당에서 보통 사료를 먹으면서 자라고 있었다.     


넓은 호화 아파트에  초호화 사료를 먹는 강아지보다 넓은 마당과 들이 있는 시골 마을에 입양돼 그냥 보통 사료를 먹고 자라는 강아지가 훨씬 행복한 강아지 아닐까?.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신다면 혹시 자신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키우려고 하는 건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부탁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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