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_여름
여름밤이 주는 묘한 기운이 있어요.
산책을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말하지는 못하는 저도, 여름밤에는 왠지 산책을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집에 에어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름밤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는 일은 너무 좋거든요. 흔히 생각하는 여름밤은 수면마저 방해하는 열대야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시골에서 산책하기 좋은 날의 여름밤이 생각납니다. 이제는 에어컨 없이 못 사는 세상이 다가왔지만 여전히 오래 쐬면 냉방병이나 걸릴 것 같은 인위적인 에어컨 바람보다는 여름밤의 자연 바람이 좋을 때가 많습니다. 물론 모든 여름밤이 좋은 건 아니에요. 간혹 그럴 때가 있어요. 습기라고는 하나도 없고 오히려 에어컨 바람보다도 더 상쾌하고 청량하게 느껴질 때, 자주 있지 않아서 더 귀하고 좋은 날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럴 때는 오히려 집에서 에어컨 바람만 쐬고 있는 게 아니라 산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도 밖에 나가서 걸어줘야 해요. 그럴 때는 강아지도 함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냥 주인들과 산책 나온 강아지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합니다. 어떤 것을 키운다는 건 굉장히 많은 책임감을 수반하는 일이니까요. 내 몸뚱아리 하나 건사하기 힘든 삶이었는데, 내가 누구의 삶에 깊게 관여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여름밤엔 가끔 산책을 나옵니다. 근처 편의점에 가서 캔맥주를 들고 벤치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 것도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정말 신기한 게 이럴 때는 모기도 없더라고요. 한 여름밤의 강력한 뽕에 취해 모기의 가려움이나 고통 정도는 가볍게 무시해버리게 되는 일종의 마약 효과일 수도 있고요.
생각해보니 에어컨 바람보다는 시원한 자연의 여름밤 공기가 더 좋은 건 제가 뼛속까지 촌놈이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서울에 와서 아무리 촌놈 티를 벗겨보려 사투리도 열심히 교정해보고,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강남 한복판에서 회사를 다니며 그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부티를 따라 해보려 했지만 따라갈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더라고요. 이걸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게 서른이라는 나이를 먹고부터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어느샌가 저도 이 속에서 동화되어 잘 살아가고는 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불과 1년 차이인 스물아홉의 나이부터요.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정말 외국에 처음 온 것처럼 느껴지던 이방인이라는 느낌은 확실히 줄어들었구나라는 걸 체감했거든요.
말이 자꾸 의식의 흐름대로 가는데 이건 어쩔 수가 없네요. 주제랄 게 없는 글이니까요.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상쾌한 여름밤의 공기는 뭔가 가슴을 부풀게 해주는 힘이 있어요. 특히 시골의 밤공기가 더 그런 것 같아요. 산책을 하다가 밤하늘을 바라보면 밝은 별들이 반짝반짝거리거든요. 운이 좋으면 별똥별도 볼 수가 있고, 아주 가끔은 눈앞에 개똥벌레라 부르는 반딧불이도 구경할 수가 있거든요. 이렇게 말하니까 정말 촌놈 같아서 부끄럽지만, 촌놈인 걸 어쩌겠어요. 시골의 여름 밤하늘을 여러 해 겪으며 별똥별을 생각보다는 많이 보며 지내왔는데, 왜 그 많은 소원은 하나도 안 들어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아쉬운 대로 별똥별대신 아무리 늦은 시간이 돼도 모두 불이 꺼진 건물을 찾아보기 힘든, 그래서 창밖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들과 밤거리에 반짝이는 네온사인을 대신 바라봐야 하지만 저에게는 시골 밤하늘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차를 마실 수가 있습니다.
레시피는 추후에 업데이트하여 공개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