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를 좋아하는 그녀
1. 30년만에 데이트
“그래야, 우리 노래방 가까?”
제주도 가서 하고 싶은거나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을 때 어떤 리액션도 없는 그녀였다.
제주에 도착해 식사를 마치고 향했던 우리의 첫 번째 여행 코스는 다른 곳도 아닌 노래방이었다. 그것도 코인노래방. 제주씩이나 와서 우리는 노래를 부르러 갔다. 제주라고 반드시 한라산이나 해변만 가야 하는 건 아니지만 웃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30년만에 엄마와의 첫 여행 겸 데이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2. 노래방의 발단
진도에서 제주까지 배를 타고 오는 1시간 반 동안 혹시라도 엄마가 뱃멀미를 할까싶어 걱정된 나는 엄마가 지루하지 않도록 에어팟을 나눠 끼고, 트롯곡을 신청받아 즉석 DJ를 해드렸다. 그 흥에 취한 나머지 엄마는 제주까지 가서 가고 싶은 곳으로 노래방을 꼽았다.
3. 오션뷰
- 배 티켓이 얼마나 되냐? 한 3만원 하니?
- 아니 성수기잖아~
- 4만원?
- 4만원대 티켓도 있는데 오붓하게 둘이 앉아서 바다보고 가려고 더 비싼 자리로 끊었어
- 그럼 5만원?
- 좀 더 비싸
- 6만원??
- 아니 7만원 좀 더 넘어(그리고 편도야)
- 싼 거 하면 되지 뭐하러 비싼 걸 끊었어
- 엄마, 이번 여행 컨셉은 프리미엄이야~
내 우려와는 다르게 1시간 반 동안 신나게 노래도 듣고 멀미도 하지 않으셨는데, 1시간 넘도록 엄마는 창밖의 바다를 보며 신기해하고 감탄하며 여행을 시작했다.
싼 좌석으로 선택하지 뭐하러 비싸게 오션뷰를 끊었냐는 엄마였다. 이코노미석 끊었으면 서운할 뻔.
4. 어쩔 수 없이 가는 여행
사실, 오션뷰고 제주고 상관없이 여행 자체를 원치 않으셨던 엄마였다. 그저 쉴 때는 집에만 있는 게 가장 좋다고만 말하셨다. 물론 사람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 재미를 몰라서 못 하는 것과 알고도 안 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장담컨대, 엄마는 호화를 누리며 편히 쉬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러한 경험을 적어도 한 번쯤은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이 여행을 부담스러워했고, 두려워했다. 며칠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고, 쉬는 동안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쓰기만 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여행을 가기 약 두 달 전부터 엄마에게 말해뒀다. 8월 초에 3일만 휴가를 써서 일정을 비워두라고. 미리 말을 해뒀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일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을 때, 다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니 엄마는 그냥 가지 않겠다고 했다. 아니 안 가고 싶다고 했다. 어떤 복합적인 감정으로부터 이러한 대답이 나온 것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며칠 뒤 미리 티켓을 끊고, 다시 통보하듯 말했다. 제주도 가는 표 끊었으니 전에 말해뒀던 날에 맞춰서 휴가 쓰라고. 물론 티켓은 미리 취소하면 환불받을 수 있는 것이었지만 엄마에게 그 말 한마디는 강력하게 다가올 것이란 걸 알고 했던 행동이다.
나의 일방적이고도 강압적인 통보와 미리 끊어놓은 티켓으로 엄마는 마지못해 휴가를 쓰고 3일간 나와 데이트 겸 여행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여행때문에 엄마는 주변사람들에게 “나는 그렇게 가기 싫다고 했는데 아들이 표를 이미 끊어버렸다고 해서 가요~” 라고 말할 때마다 웃으면서 말했다.
긴 여행을 끝나고 엄마가 일하는 곳에 가자 나와 여행간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꽤나 뿌듯해지는 순간이다. 가끔은 이런 독단적인 선택도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5. 선글라스
여행하면 하고 싶은 게 뭐가 있냐는 나의 끈질긴 물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날 더우니까 돌아다니는 것보다 집 안에 있는 게 가장 좋다고 철벽 방어를 하셨다. 물론 나 또한 찌는 듯한 한 여름의 더위 + 엄마의 나이와 체력을 생각해 좋은 숙소 위주의 여행, 최대한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로 구성했다.
그런데 여행 가기도 싫다는 듯 말하던 엄마는 짐 싸는 가방에 선글라스를 종류별로 두 개나 챙기셨다. ‘이것 참,, 계획에 없던 외부 일정을 추가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그와 동시에 엄마가 시간이 갈수록 들떠있는 게 느껴졌다. 귀여웠다. 내가 엄마의 어린 시절을 본 적은 없지만, 마치 소녀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기분은 좋은데 뭔가 부담되기 시작한다. 처음에 여행 안 간다고 하시던 사람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첫째날 숙소에 도착해 문을 열자 엄마는 혼자보기 아깝다고, 너무 좋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이건 예상하지 못 한거였는데..)
고생해서 번 돈을 이렇게 썼다고 말하며 한 번 더 울었다. 반드시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을 굳게 만들었던 순간이었다.
6. 오마카세
오마카세 식당에 갔다. 셰프님이 말하길 딸이 부모님과 같이 오는 건 봤어도 아들이 엄마랑 오는 건 처음 본다고 하셨다. 물론 나도 처음이다. 좋은 건 혼자서만 즐길 줄 알았지, 이렇게 함께하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어쨌거나 보기 좋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는 중간에 우니를 정말 고급스럽게 만들어주시며 '이 우니가 원래는 한 피스에 3만 5천원짜리'라는 말을 하셨다. 엄마는 놀라다 못해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난 그걸보고 여행 끝날 때까지 오마카세 가격을 숨겨야겠다 생각했다. 식사 중간에 몰래 종업원분께 카드를 주며 결제를 부탁하는 치밀함을 보이기까지 했지만, 가격을 계속 궁금해하는 엄마에 못 이겨 결국 말해줬다. 마지막 날 여행 끝나고 돌아가 주변 사람들한테 자랑하라는 의미로.
시간이 지난 뒤 말해주니 생각보다는 별 타격 없이 끄덕이며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7. 죽음의 부조리
엄마의 얼굴을 이렇게나 가까이서 본 게 얼마만이었을까. 가까이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더 많이 늙어있었다. 주름이 많이 져 있었고, 작년까지만 해도 별로 보이지 않던 흰머리도 많이 나 있었다.
여행 다니는 내내 여자친구와 다니듯 손을 꼭 잡고 걸어 다녔다. 언제까지 이 손을 잡고 함께 여행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내용은 죽음의 부조리였다. 말 그대로 죽음은 부조리하다는 것.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지도, 예기치도 않게 찾아온다는 것.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아빠의 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1학년 여름방학이 시작하기도 전에 아빠는 돌아가셨다. 거의 반년만에 멀쩡해보였던 사람이 이 세상에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효도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엄마와의 행복한 시간을 계속해서 늦출 순 없었다.
성공하고나서 잘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아야지. 대신 조금만 더 기다리면 여행 퀄리티가 더 좋아질 것 같으니 기대는 해도 좋아.
8. 기획 의도
30년 전에는 세상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이였을 텐데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자꾸 멀어지게 됨을, 아니 멀어질 수밖에 없음을 느꼈다.
그래서 30년 만에 엄마와 찰싹 붙어있을 수 있는 데이트를 계획했다. 목표는 평생 돈을 모으기만 하고 자신에게 써본 적이 없는 엄마에게 자본주의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것. 나는 가끔이라도 누려봤던 좋은 숙소나 한 끼에 수십만원 짜리의 식사 같은 걸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것도 함께 즐기고 싶었다. 하루라도 빨리.
많은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본인들 자식자랑을 배틀하듯이 하는 게 낙이자 취미인가 싶을 때가 있다. 그 살벌한 전투속에서 우리 엄마가 꿀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엄마의 직장동료부터 가깝게는 친척들까지 대상이 그 누구던간에,
먼저 자랑할만한 자식은 아니더라도 주변 사람이 마치 약올리듯 ‘너는 이런 아들(or딸) 없지?’라고 싸움신청을 했을 때 당당히 카운터펀치를 날려 상대방을 다운시켜버릴 수 있는 그런 무기를 갖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걸로 내 역할은 다 한거다. 그래서 나는 잘 해야하고, 잘 돼야만 한다.
9. 느낀점
1) 여행하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걸 함께 하고, 알게 해주고 싶어 여러 종류의 차를 가지고 다니며 우려드렸다. 우전녹차부터 우전홍차, 다즐링 홍차, 대홍포 청차 등 많은 차를 드리고 어떤 게 가장 좋냐는 말에 엄마는 홍차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엄마의 취향을 알게 돼서 기쁘다.
2) 나의 20대를 갈아 넣어 다행히도 빛을 보기 시작한 서른이라는 나이는 생각보다 괜찮은 듯하다. 엄마를 위한 2박 3일이었지만 나의 쓸모를 느낄 수도 있었던 시간이었다.
3) 예전에 어디서 주워들었던 말 중에, 자신의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남자는 세상 그 어떤 여자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는 말에 큰 감명을 받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2박 3일간은 엄마를 행복하게 만든 남자가 됐다.
4) 엄마가 임영웅을 이렇게나 좋아한 지 몰랐다는 것. 노래방에서 자꾸 임영웅 곡을 선곡하는 걸로 봐서 임영웅 콘서트를 예매해야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박 같은 걸 느꼈다.
굳이 제주까지 가서 노래방에 가게 한 엄마의 빅픽처인 것인가,, 다음 여행은 임영웅 콘서트 가자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