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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영 Feb 01. 2016

북유럽의 스타일을 만나다.

교환학생 일기#5 2016.01.25 

2016년 1월 25일, 안개 가득한 DTU의 아침.


뻐끔뻐금, 금붕어가 된 것 같다. 앞으로 걸을 때마다 촉촉한 물기가 얼굴에 묻어난다. 온 사방이 안개로 가득찬 컨테이너 기숙사는 기분 좋은 아침임에도 음침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자전거의 나라로 불리는 덴마크, DTU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학생들이 교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데 오늘은 오고가는 자전거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주말이어도 그렇지, 다들 어디 숨은거야. 


이런 안개에 자전거 전조등을 안 달면 사고나기 십상이다. 


오늘은 뒤늦게 덴마크로 온 재호형의 CPR 생성을 도와줄 겸, 지문을 등록하기 위해 이주민 센터를 방문하기로 한 날이다. 시내로 나가기 전에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희뿌연 안개를 헤집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 식당은 뷔페식으로, 원하는 음식을 마음대로 골라 담고 무게를 재서 무게만큼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더 싼 값에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는 학식이 있어서 이곳의 학식이 여전히 비싸게 느껴졌지만, 이러한 계산 방식은 상당히 합리적인 것 같다. 학교 식당이라 그런지 덴마크 치고는 크게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다. 


덴마크의 비싼 물가 치고는 저렴한 편에 속하는 DTU의 학식

식습관부터 북유럽 스타일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곳 음식문화에 완전하게 녹아들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한국에서는 맛보지 못한 신기한 맛의 음식들이 종종 있다. 많은 실패를 겪고 나면 안정적인 맛의 학식을 먹을 수 있게 될거다. 아, 그래도 배가 고프면 다 먹게 된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재호형이 서류를 인쇄하기 위해서 도서관에 들렀다. 내가 우리나라의 대학 도서관들을 많이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도서관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칸막이나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져 있고 너도 나도 공책에 열심히 무언가를 적어가면서 공부하는 우리나라의 도서관과는 달리, 이 학교의 도서관에는 공책에 바쁘게 무언가를 적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 대신 테이블마다 듀얼모니터가 설치되어 있고 프린터마저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있다. 


듀얼모니터 짱짱


심지어 침낭같은 곳에 들어가 누워서 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다. 시험기간에 해봐야겠다.

이해뿐만 아니라 암기도 요구하는 우리나라의 대학 서술형 시험과 달리 이곳의 시험은 이해를 바탕으로 교수님과의 면담(Oral test)으로 진행되는데, 이렇게 시험의 방식이나 강의의 초점이 다른 것이 문화적 차이로 이어진 것 같다. 아직 이곳에서 시험을 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나로써는 내가 알고 있는 것 조차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근데 뭐, 이곳에서의 생활은 시험보다 훨씬 더 도전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 많아서 성적은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다. 


훌륭한 도서관 시설에 충분히 감탄한 후, 우리는 biometric features(지문과 사진)를 등록하러 시내로 나갔다. 재호형의 CPR 발급을 도와주러 코뮨에 다시 가게 되었는데, 친절한 직원 덕분에 덴마크에서 인터넷 결제에 필요한 NEMID를 만들 수 있었다. 사용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주는 보안카드 같은 것도 받았다. 사용하지 않더라도 희귀한 기념품은 될 것 같다. 사진을 올리고 싶지만 모든 번호를 가려야해서, 그냥 생략.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끝났고 시간이 남자, 우리는 이케아(IKEA) 구경을 가기로 했다. 우리나라에도 이케아가 들어온지 꽤 되었지만 한 번도 가지 못했기 때문에 기대가 많이 되었다. 심지어 마케팅 수업의 case study 주제가 IKEA 였는데도 한 번도 못가봤다!



오! 신선한 충격이었다. case study를 할 때 그렇게나 많이 강조하여 나오던 이케아의 세심함(쇼핑리스트와 연필, 줄자를 곳곳에 배치하는 등)과 독특한 미로식 구조, 그리고 다양한 테마로 꾸며 놓은 쇼룸(show room)까지. 이케아를 처음 만든 사람들이 참 똑똑하고 영리하다고 생각을 했다. 덴마크에 1년 정도만 살았다면 훨씬 많은 것들을 샀을 텐데, 6개월 정도밖에 살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계속 다그치면서 구매욕구를 억눌렀다. 나중에 내 집이 생기면 북유럽 스타일 가구들을 배치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 때 되면 또 유행이 바뀌겠지만, 지금 보기에는 이케아의 쇼룸들이 정말 예뻤다. 



해가 일찍 지는 덴마크. 이곳에서는 오후 4시만 되면 해가 진다. 그래서 6시쯤만 되어도 한국의 12시 정도의 분위기가 난다. 거기에 아침부터 우리를 따라다녔던 안개까지 가세해 꽤나 스산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시내에 나가 볼일을 보고 간단하게 쇼핑 후 귀가. 정말 지극히 평범하고 단조로운 하루일과지만 북유럽에서 맞이하는 하루는 한국에서의 하루와 많이 다르다. 하지만 그게 어색하지는 않다. 익숙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또 잘 맞지 않는건 아닌 북유럽의 일상. 


북유럽의 스타일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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