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영 Feb 26. 2016

작은 가방을 사다.

교환학생 일기#11 - '욕심'에 대한 이야기

오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전에,

글쓰기라고는 '과제로서의 글쓰기'만 해봤던 저에게 브런치 시작은 꽤나 큰 결심이었습니다. '나중에 꼭 책을 써보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의 첫 발을 내딛는 것이기도 하구요. 예전에도 블로그를 시작해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해봤지만 만들만한 콘텐츠도, 유지할만한 의지도 없었기에 '태초에 나는 블로그 같은 거 못할 사람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제 허접한 글 솜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고 반응해준다는 게 참 기분이 좋네요. 물론 기분 좋은 동시에 부담감도 생겼습니다. 재미있고 유익한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고요. 여러 가지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교환학생으로서 덴마크에 처음 와서 1주일 동안에는 쓸 말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모든 게 새롭고 모든 게 정신없이 지나갔어요. 그런데 이제는 이곳에서의 삶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예전만큼 매일매일이 새롭지는 않은 것 같아요.(이게 이 생활이 벌써 질렸다는 말은 아니에요!) 물론 며칠 뒤부터는 여행을 많이 다닐 텐데 그러면 또 매일매일이 새로울지도 모르겠네요. 


앞으로는 조금 더 사소하고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들을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한 계기도 꾸준하게 이곳에서의 느낀 생각과 감정들을 보관할 장소가 필요했던 것인 만큼,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성격의 글들을 적어볼까 해요. 글도 좀 짧아지고, 정리도 안되어 있을 수 있고, 구독자도 줄어들 것 같지만 그게 원래 하려던 방향이었으니까요. 

멋진 표현을 쓸 줄도 모르고, 괜히 오글거리기만 한 표현들을 친구들이 놀릴 때도 있겠지만, 솔직하고 조금은 오글거리게 쓴 감정표현들이 나중에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참이 지난 후에 때 큰 기쁨으로 돌아올 것 같아요. 


음... 요약하자면,

오글거리는 글이 불편하신 분은 뒤로 가기를 누르시면 됩니다!





작은 가방엔 욕심을 담을 공간이 없다. 


큼지막한 캐리어와 등산가방 같은 여행가방.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향하는 나의 가방들은 최대한 많은 것들을 눌러 담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수화물 규정을 약간 넘는 정도로 한 가득 짐을 날라주었던 나의 백팩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미 배가 불룩해진 여행가방을 등에 업고 캠퍼스를 누비고 싶지는 않았기에 새로운 가방을 사기로 했다. 


시내로 나가 가방 전문점을 둘러보는데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었고, 대부분의 가방들은 디자인이 너무 평범하거나 편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디자인도 눈에 띄고 편해 보이는 가방을 발견했다. 가격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는데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가방이 너무 작다. 

가방의 크기가 작은 것이 아니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좁았다. 15인치 노트북이 들어간다고 쓰여있긴 했는데 이게 과연 들어갈까 의심될 정도였다. 점원한테 물어보니 혹시나 노트북이 들어가지 않으면 환불해주겠다고 한다. 점원의 말을 듣고도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들어간다고 해도 노트북을 넣으면 노트 한 두 권 정도 들어갈 공간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얇게 나온 가방을 본 적이 없는데, 왜 이 나라 사람들은 비 실용적이게 가방을 얇게 만든 것인지 생각하며 괜히 덴마크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디자인한 사람은 덴마크 사람이 아니겠지만...


 



결국 그 작은 가방을 샀다. 묘하게도, 새 가방을 사서 돌아오는 길인데 마냥 신나지만은 않았다. 이 가방을 들고 기숙사로 걸어오는 동안에도 가방이 너무 작아서 앞으로 나에게 일어날 불편한 상황들이 몽글몽글 떠올랐다. 정말 가방이 작다면 환불해버리면 그만이다. 어째서 그 당시에는 별것 아닌 일인데도 불편함을 떨쳐버리기 힘들었던 걸까.




이 가방을 쓰기  시작한 지 1달이 되어간다. 나의 고민들이 무색하게, 단 한 번도 가방이 작아서 불편했던 적이 없다. 나의 노트북은 워낙 무거워서 노트북을 넣으면 다른 것들을 잘 안 넣게 되기도 하고, 필통과 노트북, 노트 한 권, 그 이상으로 필요한 것이 없다. 그 정도만 넣어도 충분히 묵직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더 넣고 싶지도 않다. 덕분에 나의 어깨는 한결 가벼워졌고, 비좁은 강의실 의자들 사이에 나의 얇은 가방을 내려놓기가 더 수월해졌다.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담고 싶었다. 

작은 가방이 주는 깨달음이 꽤나 신선하면서도 묵직하다. 이 가방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학기초에 과도한 열정으로 수강신청을 할 때의 내 모습, 시장에 가서 장을 볼 때도 가성비를 따지면서 다 쓰지도 못할 큰 뭉텅이의 야채들을 구입하는 나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진다. 손을 크게 벌려 많이 쥘수록 손아귀 안의 내용물이 망가지는 것을 알기 어렵다.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은 가방이 점점 가벼워진다고들 하는데 그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의 노하우가 생겨서 짐을 단출하게 싸는 것에 도가 튼 탓인지도 모르지만, 가방이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욕심을 넣을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프랑스 남부 여행하느라 브런치를 빼먹고 있었네요... 

조만간 시원한 바다 사진과 함께 남부 여행기도 올려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스하키 구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