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일기#11 - '욕심'에 대한 이야기
글쓰기라고는 '과제로서의 글쓰기'만 해봤던 저에게 브런치 시작은 꽤나 큰 결심이었습니다. '나중에 꼭 책을 써보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의 첫 발을 내딛는 것이기도 하구요. 예전에도 블로그를 시작해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해봤지만 만들만한 콘텐츠도, 유지할만한 의지도 없었기에 '태초에 나는 블로그 같은 거 못할 사람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제 허접한 글 솜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고 반응해준다는 게 참 기분이 좋네요. 물론 기분 좋은 동시에 부담감도 생겼습니다. 재미있고 유익한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고요. 여러 가지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교환학생으로서 덴마크에 처음 와서 1주일 동안에는 쓸 말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모든 게 새롭고 모든 게 정신없이 지나갔어요. 그런데 이제는 이곳에서의 삶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예전만큼 매일매일이 새롭지는 않은 것 같아요.(이게 이 생활이 벌써 질렸다는 말은 아니에요!) 물론 며칠 뒤부터는 여행을 많이 다닐 텐데 그러면 또 매일매일이 새로울지도 모르겠네요.
앞으로는 조금 더 사소하고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들을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한 계기도 꾸준하게 이곳에서의 느낀 생각과 감정들을 보관할 장소가 필요했던 것인 만큼,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성격의 글들을 적어볼까 해요. 글도 좀 짧아지고, 정리도 안되어 있을 수 있고, 구독자도 줄어들 것 같지만 그게 원래 하려던 방향이었으니까요.
멋진 표현을 쓸 줄도 모르고, 괜히 오글거리기만 한 표현들을 친구들이 놀릴 때도 있겠지만, 솔직하고 조금은 오글거리게 쓴 감정표현들이 나중에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참이 지난 후에 때 큰 기쁨으로 돌아올 것 같아요.
음... 요약하자면,
오글거리는 글이 불편하신 분은 뒤로 가기를 누르시면 됩니다!
큼지막한 캐리어와 등산가방 같은 여행가방.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향하는 나의 가방들은 최대한 많은 것들을 눌러 담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수화물 규정을 약간 넘는 정도로 한 가득 짐을 날라주었던 나의 백팩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미 배가 불룩해진 여행가방을 등에 업고 캠퍼스를 누비고 싶지는 않았기에 새로운 가방을 사기로 했다.
시내로 나가 가방 전문점을 둘러보는데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었고, 대부분의 가방들은 디자인이 너무 평범하거나 편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디자인도 눈에 띄고 편해 보이는 가방을 발견했다. 가격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는데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가방이 너무 작다.
가방의 크기가 작은 것이 아니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좁았다. 15인치 노트북이 들어간다고 쓰여있긴 했는데 이게 과연 들어갈까 의심될 정도였다. 점원한테 물어보니 혹시나 노트북이 들어가지 않으면 환불해주겠다고 한다. 점원의 말을 듣고도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들어간다고 해도 노트북을 넣으면 노트 한 두 권 정도 들어갈 공간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얇게 나온 가방을 본 적이 없는데, 왜 이 나라 사람들은 비 실용적이게 가방을 얇게 만든 것인지 생각하며 괜히 덴마크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디자인한 사람은 덴마크 사람이 아니겠지만...
결국 그 작은 가방을 샀다. 묘하게도, 새 가방을 사서 돌아오는 길인데 마냥 신나지만은 않았다. 이 가방을 들고 기숙사로 걸어오는 동안에도 가방이 너무 작아서 앞으로 나에게 일어날 불편한 상황들이 몽글몽글 떠올랐다. 정말 가방이 작다면 환불해버리면 그만이다. 어째서 그 당시에는 별것 아닌 일인데도 불편함을 떨쳐버리기 힘들었던 걸까.
이 가방을 쓰기 시작한 지 1달이 되어간다. 나의 고민들이 무색하게, 단 한 번도 가방이 작아서 불편했던 적이 없다. 나의 노트북은 워낙 무거워서 노트북을 넣으면 다른 것들을 잘 안 넣게 되기도 하고, 필통과 노트북, 노트 한 권, 그 이상으로 필요한 것이 없다. 그 정도만 넣어도 충분히 묵직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더 넣고 싶지도 않다. 덕분에 나의 어깨는 한결 가벼워졌고, 비좁은 강의실 의자들 사이에 나의 얇은 가방을 내려놓기가 더 수월해졌다.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담고 싶었다.
작은 가방이 주는 깨달음이 꽤나 신선하면서도 묵직하다. 이 가방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학기초에 과도한 열정으로 수강신청을 할 때의 내 모습, 시장에 가서 장을 볼 때도 가성비를 따지면서 다 쓰지도 못할 큰 뭉텅이의 야채들을 구입하는 나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진다. 손을 크게 벌려 많이 쥘수록 손아귀 안의 내용물이 망가지는 것을 알기 어렵다.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은 가방이 점점 가벼워진다고들 하는데 그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의 노하우가 생겨서 짐을 단출하게 싸는 것에 도가 튼 탓인지도 모르지만, 가방이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욕심을 넣을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프랑스 남부 여행하느라 브런치를 빼먹고 있었네요...
조만간 시원한 바다 사진과 함께 남부 여행기도 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