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영 Mar 27. 2016

테마가 있는 작은 도시들

유럽여행#4 프랑스 남부 여행 - 칸, 그라스, 앙티브, 생장 카프페라

1주일 동안 꽤 많은 수의 크고 작은 도시들을 방문했는데 작은 도시들도 나름의 테마가 있고, 개성이 있다.



영화제의 도시 칸!


나는 영화를 보는 눈이 낮다. 조금만 감동적이어도 눈물이 왈칵 올라오고, 스토리가 조금 유치해도 액션이 시원하다면 만족하면서 재밌게 영화를 즐기는 편이다. 다만, 스토리 중간중간에 깔리는 오만가지의 복선들과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결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데에는 큰 흥미가 없어서 쉽고 즐거운 영화들만 편식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소위 '작품성'이 높은 영화들이 나의 취향을 비껴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런 영화들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니 자연히 영화제에도 관심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영화제에 관심이 없어도 칸 영화제의 상징인 레드카펫은 밟아보고 싶었고, 세계적인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이 도시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물가는 비싸겠지? 명품이 엄청 많겠지? 거리는 화려하지 않을까? 등 의 막연한 호기심만을 가지고 별다른 사전 준비 없이 칸에 방문했다.


TV에 나올땐 이렇게 초라해보이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조촐했던 레드 카펫에서는 인증사진 한 장을 남기고 바로 돌아섰다. 레드카펫 구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화장실 기다리는 시간보다 짧았다.


비도 오고 날씨도 우중충하여 도시는 매우 차분했다. 모두가 제 할 일을 하러 길거리를 오고 가는데 우리는 목적지도 명확히 정하지 않은 채 거리를 배회했다. 완벽하게 관광객이 된 느낌. 여행자로서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지만, 아직 이 도시에 녹아들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영화 속 복선처럼, 이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들이 큰 결말을 초래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긴장감까지 더해져서 복잡 미묘한 영화의 한 장면 같이 되어버렸다.


전체적인 도시의 느낌은 차분하고 조용하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 전망을 내려다 보아도 흐린 날씨 탓인지 큰 감흥이 없었다. 지난 며칠간 봐왔던 비슷한 종류의 예쁜 건축물들보다 현장학습을 나온 프랑스 학생들에게 더 호기심이 생긴다.








예상했던 대로, 길거리에는 수많은 명품 가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와 상관없는 일인 양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간다. 영화제의 도시라는 사실을 너무 의식한 탓인지 도시 전체가 연극의 세트장 같다는 느낌이 든다. 풍경이 멋지거나 건물들이 화려하진 않았지만, 여행으로 들뜬 기분을 잔잔한 이슬비로 가라앉혀주고, 도시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칸 이었다.





향수의 도시 그라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익숙하지 않은 향이 코를 자극한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향들. 그라스는 도시 전체에 향이 가득한 곳이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지도를 받아 높은 지대에서부터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 그라스를 구경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서 놀랐다. 우리가 지금 이쯤일 것이라 예상했던 곳보다 두 배는 멀리 와 있었다. 직선보다는 곡선이 많고 구불구불한 길들 덕분에 미로 찾는 느낌도 든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도시의 사람들이 세계 향수 원액의 70프로가량을 만들어낸다니, 참 신기하다.


그라스에 오면 꼭 방문해야 한다는 향수 박물관에 갔다. 전시 규모가 굉장히 크고 향을 직접 맡아볼 수 있는 체험형 전시물도 많아서 좋았다.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좋은 향을 찾지는 못했지만 옛날에 사용하던 향수병들이 생각보다 예뻤다.



전 세계 유명 향수들을 크게 만들어 놓았는데 아는게 없으니...


박물관 끝에는 (당연하게도) 향수를 판매하는 곳이 있다. 향수들을 테스터에 뿌려보았을 때 향이 꽤 좋아서 사가고 싶었지만 비행기에 액체류를 반입할 수가 없어서 아쉽게도 살 수 없었다.

그라스의 향이 어땠는지 점점 잊혀지는게 아쉽다. 도시 전체에서 향이 나는 곳이 이곳 말고도 또 있을까. 돈 쓰기 싫어서 눈으로만 보고 코로만 향을 맡고 나왔는데 비누라도 살걸 그랬나...





싱그러우면서도 고풍스러운 앙티브


유명한 두 도시 니스와 칸 사이에 끼여있지만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앙티브. 피카소가 사랑했던 도시라고 한다. 피카소가 이곳에 살면서 많은 작품들을 남기고 이 도시에 기증했기 때문에 피카소 박물관이 굉장히 유명하다.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수많은 보트들. 모나코에서도 많이 본 풍경이었지만 잔잔한 수면에 비치는 깨끗한 하늘과 그 위에 떠있는 보트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결코 질리지 않는다.




카레 요새.

앙티브에 도착했을 땐 점심시간 즈음이었고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우리는 배가 고팠으나, 가까이 있는 요새를 먼저 보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바로 카레 요새를 향해 걸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요새인지라 입구를 찾는 것부터 애를 먹었다. 문처럼 생긴 곳 앞에서 얼쩡거리는 우리를 보고 해변을 따라 돌아가는 길을 알려준 프랑스 친구 덕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가이드와 함께 동행하면서 요새의 이곳저곳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이 방은 어떤 용도로 사용됐으며, 이 우물은 언제부터 만들어진 것이고...'

아무것도 모른 채 듣는 것보다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보니 훨씬 재미있었다. 가이드 아저씨가 바닥이 왜 우물 쪽으로 기울어졌는지까지 설명해주실 정도로 자세하고 열정적이었다.


망루 같은 역할의 건물인데,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 네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재미있는 요새 탐험을 마치고 앙티브의 시내로 들어왔다. 트립어드바이저에 나와있는 명소들을 위주로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피카소 미술관.

그림을 볼 줄 모르기에 피카소의 그림이 왜 그렇게 비싼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가 분명히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었다는 것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미술 교과서에서 보던 유명한 그림들 말고도 도깨비나 괴물 등을 테마로 한 우스꽝스러운 습작들도 있었는데, 만약 피카소가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유명한 웹툰 작가나 만화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는 트립어드바이저 1위 관광명소인 'Le Sentier du Littoral'라는 해안 산책로를 꼭 가보고 싶었지만 피카소 박물관에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 머무는 바람에 2분 차이로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깔끔하게 포기하고 시내를 더 둘러보기로 했다.



누군가 빨간색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줬으면.
이 사진을 찍으려다 두 신발이 홀딱 젖어버렸다...



앙티브의 느낌과 색감은 니스의 것들과 비슷하지만 왠지 모를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활발하면서도 체면을 지키는 도시랄까.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온화하고 따듯하다. 보트들이 쉬고 있는 바닷가 너머로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노을을 배경으로 한 채 앙티브를 떠났다.




세계적인 부자들이 사는 곳, 생장 카프페라!


여유롭게 잡은 일정 덕분에 마지막 날 몇 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이 여유를 활용해서 남들이 많이 가보지 않는 곳을 다녀오고 싶어서 생장 카프페 라에 다녀왔다. 에어비엔비 호스트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세계적인 부자들이 이곳에 집이나 별장을 짓고 산다고 한다. 심지어 이곳의 땅값이 도쿄보다 비싸다고 한다...





깨끗한 바닷물과 시원한 바람. 창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이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 집이라니. 돈을 좇지 않으리라는 가치관도 이 멋진 풍경을 베란다 삼은 집들 앞에서 흔들리고 만다.


돈 많이 벌고 싶다... 많이 벌어서 여기에 별장 하나 짓고 오고 싶을 때마다 오고 싶다...


집은 몇 개 안 보이는데 보트는 엄청 많은 것 같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라고 알려진 가문, 로스 차일드가의 별장이 바로 이곳에 있다. 요새나 성을 제외하면 이번 여행에서 봤던 건축물들 중에 가장 큰 '일반적인 용도(?)'의 건축물이었다. 그 정도로 큰 규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별장은 '딸'의 별장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상상도 잘 안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돈이 많은 가문인가 보다.


건물의 색이 핑크핑크한 이유는 딸의 별장이어서인가...


별장 앞에 있는 정원에서는 15분마다 클래식 음악에 맞춰 분수쇼를 한다.
정원의 규모도 상당한데 마치 식물원 같다. 지역별로 품종을 다르게 하여 조성해 놓았다.


생장 카프페라에는 유독 조깅하는 사람들이 많다. 선글라스 끼고 음악을 들으며 가볍게 해변을 따라 달리는 이곳 사람들의 얼굴엔 근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자신감 가득한 그들의 표정만으로 이 사람이 이곳에 사는 사람인지 타지 사람인지 구분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다 나름의 근심과 걱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해보지만 여유로워 보이는 그들의 삶이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파도 치는 해변에서 저 둘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까.


니스에서 공항으로 가는 길,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성공적인 첫 유럽 배낭여행을 마치며.

1주일이라는 기간,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하는 내내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힘든 일도 있었고, 배도 많이 고팠고, 너무 많이 걸어서 발바닥도 욱신거렸지만 참 풍족하고 알찬 여행이었다. 사진들을 다시 꺼내어 보니 쓰고 싶은 말이 참 많지만 다음 여행을 위해 적당히 줄여야겠다.


정말 아름다웠던 해변을 눈에 담아갈 수 있어서 행복했다. 좋은 사진들은 덤!




매거진의 이전글 이름값 하는 도시, 니스(Nic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