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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영 Apr 03. 2016

흥겨운 백 파이프 소리와 함께

유럽 여행#5 스코틀랜드 - 에든버러

정말 부끄럽게도 나는 스코틀랜드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나는 오로지 내가 살고 있는 세상만 들여다보았을 뿐, 그 바깥 세계에 대해선 거의 관심이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유로 환율이 얼마나 오르던지 나의 생활엔 변화가 없었고, 유럽의 나라들이 어디 있는지 몰라도 아무도 나에게 그에 대해 묻는 사람이 없었다. 비행기 한 번 타보지 않은 사람이어도 유럽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유럽에 대한 관심의 문제를 넘어, 스코틀랜드가 영국을 이루는 연합국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건 어찌 보면 상식 부족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배웠을 텐데도 스코틀랜드라는 나라가 백파이프를 등에 매고 치마를 입은 남자들이 있는 나라라는 어렴풋한 이미지만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만약 많은 사람들이 스코틀랜드에 다녀와서 나에게 '그곳 진짜 좋더라!'라고 이야기해 주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스코틀랜드가 어딘지도 모르고 유럽을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무식함을 스스로 꺼내 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곳이 얼마나 가볼 만한 곳인지 유럽을 방문할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가 만 3일 동안 여행한 도시는 Edinburgh, 스코틀랜드의 수도이다.

항공권이 저렴했던 탓도 있지만 에든버러 자체만으로도 볼거리가 풍부하다고 하여 주말을 껴서 3일간의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스코틀랜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띄었던 건 이층짜리 공항버스. 천장이 뚫려있는 버스는 아니었지만 괜히 2층으로 올라가 에든버러 중심가까지 이동했다.  

도착하고 나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풍경.

여행을 오기 전날까지만 해도, 3일 내내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올 수도 있다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날씨가 적당히 맑았다.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은 아니었지만 파란 하늘을 군데군데 찾을 수 있는 정도.


에든버러의 날씨는 생각보다 굉장히 추웠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체감상으로는 코펜하겐보다 더 추웠던 것 같다. 생각보다 찬 바람 때문에 우리는 옷깃을 단단히 여며야 했다.


숙소로 향하기 전에 잠깐 둘러본 스콧 기념탑.
건물 하나 하나가 마치 고성같다. 학교로 추정했던(?) 건물.
벽돌로 지은 집들의 분위기와 너무 맑지도 않은 하늘이 은근하게 어울린다.



스코틀랜드에 와서 절대 놓쳐서는 안될 장면인 백파이프 부는 아저씨. 사실 놓치기도 힘들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귀를 간질이는 백파이프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냥 거리를 지나다녀도 추위를 이겨내며 꿋꿋하게 연주하고 계시는 분들이 두 세분씩 꼭 보인다. 스코틀랜드의 동전을 아직 만져보지도 못한 우리는 차마 가까이 서지는 못하고 먼발치에서 사진과 영상으로만 연주를 담았다.







Bobby. 우리나라에 백구가 있고, 일본에 하치가 있다면 스코틀랜드에는 Bobby가 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만져댔는지 bobby 동상의 코끝이 반짝거린다. 행운이 따르는지 행복해지는지 잘 모르겠지만 괜히 한 번 손을 대본다.



도시 이곳저곳에서 풍기는 새로운 분위기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릴 무렵 살짝 아찔한 경험을 했다. 내가 있는 이곳이 영국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길을 건너려 하는데 내 바로 앞에서 큰 버스가 쌩하고 지나간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익숙한 방향대로 왼쪽에 차가 안 오는 것을 확인하고 건너려 했는데 보란 듯이 뒤통수에서 차들이 튀어나온다. 옆에서 놀란 날 보시며 아주머니들께서 아슬아슬했다며 농담을 던지신다. 자동차의 오른쪽 좌석에 위치한 핸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평생 달고다녔던 습관은 정말 무섭다. 길 건널때 조심.


칼튼 힐. 시내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작은 언덕이다. 노을 지는 풍경이 예쁘다 하여 시간을 맞춰서 올라갔는데 야속하게도 해는 구름 뒤로 숨어버렸다. 노을을 보지는 못했어도 내려다보는 에든버러의 풍경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잠시 더 기다리니 해가 구름 아래로 내려왔다. 마치 산불이라도 난 듯이, 구름에 불이라도 붙은 듯이 하늘을 새빨갛게 물들인다. 그 강렬한 색을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고자 하는 그곳의 사람들은 셔터를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론 나도 그랬고.



에든버러에 가서 꼭 하고자 했던 것 중 하나가 브리티쉬 펍에 가는 것이었다. 식비를 아껴서라도 펍에 가고야 말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꺾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왕이면 로컬 느낌을 물낀 느낄 수 있는 라이브 펍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분위기 좋은 브리티시 펍을 찾아 떠나는 여행
가격도 너무 비싸지 않고 분위기도 적당히 시끌시끌한 라이브 펍.
내가 상상했던 라이브 공연이 아니라 약간 당황했지만 스코틀랜드의 전통민요스러운 공연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신나는 스코틀랜드 음악을 듣고 있다 보니 내가 기타를 정말 잘 쳤다면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라이브 공연이 끝나고 연주자들이 맥주를 마시는 동안 잠깐 다가가서 잘 들었다며 인사를 나누고, 맥주 한 잔 같이 마시며 재밍(Jamming)을 제안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들이 무슨 곡을 연주하더라도 적당히 따라가며 즐길 수 있는 실력이라면, 그런 제안을 할 용기가 있다면, 그 순간은 참 행복할 것 같다.



펍에서 신나게 수다를 떨고 숙소로 늦게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이랜드 투어를 하기 위해 여행사를 찾아갔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거리는 밝던 어제와는 달리 쓸쓸한 느낌을 준다.





우린 늦지 않게 도착했고, 엄청난 수다쟁이 아저씨와 함께 하이랜드 투어를 시작했다. 차에 탄 순간부터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시는 아저씨 덕분에 재미있기도 했고 피곤하기도 했다. 계속 집중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나중엔 아저씨의 말을 자장가 삼아 숙면을 취하기도 했다.



장소마다 이름을 알려주어 적어놓기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 경관에 붙은 이름이 무엇이든 상관이 없을 것 같다. 적당한 시기에 와서 눈 덮인 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대신 엄청나게 추웠다.






광활한 풍경을 계속해서 보다 보면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조금씩 무뎌지고 그와 동시에 내가 작아짐을 느낀다. 저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내가 놓인다면 어떻게 될까. 규모의 차이는 매우 크지만 우주비행사들이 겪는 우울증이 이런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가끔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만 보통은 탁 트인 경관이 다른 생각들을 말끔하게 치워주는 경우가 많다.


괴물 네시가 산다는 네스호에 방문해서 따듯한 차도 한 잔 마셨다.
맑던 날씨가 이쪽으로 오면서 급격하게 흐려진다. 전설이 생길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으슬으슬 춥던 네스호를 거쳐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위스키 판매점. 이곳에서는 위스키를 마음껏(?) 맛볼 수 있었다. 워낙 도수가 세서 조금만 먹어도 향이나 맛이 확실히 느껴지기 때문에 양이 적어도 괜찮았다. 위스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을뿐더러 양주를 별로 안 좋아했었는데 이곳에서 몇 종류의 위스키를 먹어보고 나서 위스키가 참 괜찮은 술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샀다...)




돌아오는 길에 아저씨께서 경치가 좋은 장소에 두 번 정도 더 내려주셨다. 한 곳은 댐이었고 한 곳은 계곡이었다. 매년 명절마다 받는 종합 선물세트처럼, 보통 자연경관 하면 떠오르는 산, 호수, 계곡 등을 하루 만에 속성으로 볼 수 있는 종합 선물세트 같은 투어였다.




하루가 더 지났고 드디어 에든버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갈 차례다. 바로 에든버러 성이다. 입장료가 꽤나 비싸서 조금 놀랐지만 역시나 그냥 지나칠 순 없으니 들어가기로 한다.

에든버러 성에서 바라본 에든버러 시내
에든버러 성에서 바라본 에든버러 시내2


성이라 해서 하나의 큰 실내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을 줄 알았는데 작은 건물들로 나뉘어 있었다. 작은 건물들에는 다양한 테마가 있는 박물관들이 있어서 다 보려면 꽤 긴 시간이 걸린다.

성 안이 아니라 작은 마을 같다.
함께 갔던 친구 두 명과 나의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했던 크림위스키. 정말 맛있었다.
아쉬워서 파노라마 한 장 더.
에든버러를 배경으로.
문뜩 위를 올려다보는데 프로의 향기가...
성 안에 설치되어 있는 대포의 시점.



넓은 성 관람을 마치고 다시 시내로 들어섰다. 이미 몇 번 오갔던지라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로열마일. 새빨간 투어 버스도 보이고 J.K 롤링이 해리포터를 썼다는 카페인 the elephant house 도 스치듯 구경했다.


생각보다 평범한 카페였다. 사람이 많고 기다려야해서 음식을 먹어보진 않았다.


큼지막한 관광지를 이미 다 둘러본 우리는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한적하게 걸어 다니며 거리의 예술가들을 구경했다.



쇠사슬을 손을 쓰지 않고 푸는 묘기를 부리시는 것 같은데 그다지 신기하지는 않았지만, 내 카메라를 보고 잘 찍으라며 활짝 웃어주셔서 좋았다.


홍대 거리처럼 버스킹을 하는 사람도 있다.


도시의 분위기 때문인지 빨간색이 눈에 잘 띤다.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는 아서 시트. 아래에서 올려다볼 땐 저길 어느 세월에 다 올라가나 싶었는데 한 발 한 발 오르다 보니 생각보다 금방 오를 수 있었다. 다만 갑작스럽게 날씨가 안 좋아지는 바람에 아서시트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심지어 꼭대기에서는 눈 알갱이가 얼굴에 부딪히는 게 굉장히 따가웠고 내려오는 길에는 눈과 비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진눈깨비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길
날씨가 맑았을 때 이곳을 올라왔어야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맞던 눈과 모양이나 느낌이 다르다. 결정 알갱이도 크다.
눈을 배경삼아 우아하게.


비를 맞으며 한참을 걸어서인지 숙소에 돌아오니 굉장히 힘들었다. 1시간 정도 쉬었다가 숙소 안에 있는 바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바에 있던 탁구대에서 탁구를 치며 놀고 있는데 한 외국인 친구가 다가오더니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왔어요?


처음엔 그게 한국말일 것이라 생각을 못해서 다시 물어봤지만, 똑똑하게 들리는 한국어 발음. 알고 보니 여자친구가 한국인이라 한다. 여자친구와 2년을 함께 살다 보니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쓸 것 같은 어휘 선택, 심지어 TV 프로그램이나 연예인들에 대해서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겨우 2년 공부해서 이 정도라니. 영어를 몇 년 동안 공부한 나는 대체...


자발적인 학습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렇게 그 유쾌한 프랑스 친구와 페이스북 친구까지 되고, 새벽 세시까지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2시간 정도 잠깐 눈을 붙였다.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5시에 호스텔에서 나와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았던 3박 4일의 에든버러 여행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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