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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영 Apr 14. 2016

친구를 위한 이름 시

교환학생 일기#14 - 오래 기억하고 싶은 이름들.

2016년 4월 13일. 조금 솔직해져 보자면


프랑스 남부 여행을 시작으로 나의 교환 학생 생활은 잠시 멈춘 듯했다. 유럽 여행도 교환학생 생활의 일부이긴 하지만 내가 학생으로서 이곳에 온 것인지 여행자로서 유럽 전역을 싸돌아다니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마음이 붕 뜬 채로 지냈다. 몸은 기숙사에 있어도 마음은 일주일 전에 내가 다녀왔던 여행지에서 쉽게 헤어 나오질 못한다. 수많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보정하고, 그때의 감정을 서툴게나마 기록한다. 여행에서의 황홀했던 기분을 최대한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한 줄의 표현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면 더 좋을지 고민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이 내게는 너무 새롭고 즐겁다. 머릿속에 담아두고 지나가기에는, 흐려지게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억들 뿐이라 억지로 시간을 내서라도 꺼내 두려고 했다. 평소에 한 번도 하지 않던 글쓰기가 재미있었고, 귀찮게만 느껴졌던 사진 정리도 즐거웠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여행을 정리하는 데 쏟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의 교환학생 생활은 점점 속이 말라가기 시작했다. 처음 이곳 기숙사에 도착을 때는 그 추운 날씨에도 꿋꿋하게 혼자 나가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카메라에 담으려 했었는데 이제는 그 하늘이 그저 '가끔 볼 수 있는 예쁜 하늘'이 되어 버렸다. 또, 지금보다도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던 그때엔 일부러라도 마지막까지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를 뜨지 않았는데 지금은 적당히 피곤해지면 일어나게 되었다. 


낯선 곳에서 억지로 적응하려고 발버둥 치려던 처음의 모습과 이곳의 일상이 너무 당연하게 되어버린 지금의 모습, 그 사이를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약간의 새로움과 설렘이 있는 상태로.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 교환학생의 일을 떠올린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릴까. 니스의 해변? 아이슬란드의 오로라? 물론 그런 것도 다 좋았는데, 아마 컨테이너에서 함께 밥을 먹던 친구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지극히 평범하고 유별나게 재미있지도 않은 그 식탁이 왜 제일 먼저 떠오를 것만 같은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난 지금 이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소중한 시간들을, 나중에 그리워할 시간들을 너무 아무렇게나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지난 3월 25일, 난 친구들로부터 참 좋은 선물을 받았다. 이 날 우리 컨테이너에서는 정말 신기하게도 나와 생일이 같은 루보와 나를 위한 소박한 생일 파티가 열렸다.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나와 루보의 과일 초상화(?)와 나탈리, 레베카, 아드리아노, 오웬이 만들어준 파인애플 케이크.


머리스타일이 너무 나 같다...


이때의 행복했던 기억도 그냥 지나가 버릴 뻔했는데 며칠 전 문득 이 날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이 친구들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주고 싶어 졌다. 이 친구들은 나를 '6개월도 채 안돼서 돌아간 영어 잘 못하는 한국인 친구' 정도로 기억하더라도 나한테 이 친구들은 '처음으로 제대로 사귄 고마운 외국인 친구들' 이니까. 


어떤 선물이 좋을지 고민하다가 캘리그래피를 연습해보려고 가져왔지만 몇 번 꺼내보지도 못한 붓펜이 내 필통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떠오르면서 한글로 이름을 써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름만 쓰고 선물이라 하기가 민망할 듯해서 결국 이름으로 시를 쓰기로 했다. SNS에서 잠깐 유행했던 바로 그 이름 시.

시를 써본 적도 없는 내가 왜 그랬을까... 유난히 할 일이 많던 그 밤, 할 일들을 다 제쳐두고 어떤 내용을 쓸지 고민했다. 시라기보단 그냥 짧은 문장이지만 예쁜 내용을 담고 싶었고 어울리는 사진들도 찾아봤다. 



생각보다 외국인 친구들의 이름으로 시를 쓰는 건 어려웠다. 내용만 생각하기에도 벅차서 멋들어진 글씨체로 직접 쓰는 대신에 예쁜 폰트로 프린트해주기로 하고 그 다음날 바로 도서관에서 인쇄해 와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날은 아무런 특별한 날도 아니었지만. 


글자에 맞추려다 보니 조금 억지스럽고 오글거리는 내용이지만 친구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번역은 각자 알아서 하라고 숙제를 내주었지만 다들 자기 이름의 내용이 뭔지 너무 궁금해하길래 다음날 바로 가르쳐주었다. 누구는 자신의 이름이 한글로 적혀있는 걸 신기해하기도 했고 너무 좋은 선물이라며 안아주는 친구도 있었다. 내가 받은 생일 케이크에 비하면 이 종이 한 장은 정말 작은 선물이었지만, 이걸 받고 진심으로 기뻐해 준 몇 친구의 반응은 오히려 나에게 충분히 큰 선물로 되돌아왔다. 그 웃음들과 기뻐하는 모습들이 메말라가던 나의 교환학생 생활을 다시 촉촉하게 만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못 볼 얼굴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까 이 이름들을 더 오래 기억하고 싶어 진다. 이 친구들은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알까. 이 친구들이 한글을 몰라서 이 오글거리는 글을 읽지 못하는 게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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