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일기#3 2016.01.22
코펜하겐 정복은 개뿔...
아직 내 기숙사 방도 정복을 못해서 아침에 저절로 눈이 뜨이는데. 그래도 새로운 잠자리에 적응해버리면 덴마크의 아침을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르니 부지런한 척좀 더해야겠다.
DTU가 위치한 곳은 Lyngby(륑비)인데, 볼거리가 많은 코펜하겐 중심부까지 가려면 s-tog를 타고 15분 정도 나가야 한다. 원래는 시내까지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원래 오늘의 계획은 introduction week가 시작하기 전에 덴마크 정착을 위해 필요한 서류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것이었다. 덴마크에서는 CPR number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번호가 있는데 이를 받기 위해서 스토어 센터에 갔다가 몇 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돌아올 생각이었다. 스토어 센터로출발하기 전, 기숙사 앞 우편함이 아직 내 이름으로 되어있지 않길래 이름 레이블을 받기 위해 accommodation center를 먼저 찾았고, 학식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을 먹을 때 우연히 성철이 형을 만났는데 성철이 형 또한 CPR을 받으러 나간다고 했다. 오, 기대도 안 했던 동행이 생겼다! 라며 기뻐하던 도중, 영일이에게 메시지가 왔다.
오늘 날씨가 엄청 좋은데, 시내 구경 안 갈래요?
'아직 여기 온지 3일 째인데 시내 구경을 할 정신이 있을까? 너무 아는 게 없고 코펜하겐에 대해 공부도 안 해서 마냥 끌려다니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코펜하겐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고 나중에 또 둘러보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기꺼이 영일이의 부름에 응했다. 성철이 형, 나, 영일이, 그렇게 세 남자의 즉흥적인 코펜하겐 관광이 시작되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덴마크의 겨울은 쉽게 맑은 하늘을 보여주지 않는다. 보통은 눈이 오거나 구름이 가득한 우중충한 날씨다. 나보다 이곳에 온지 1주일이나 더 된 영일이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1주일간은 이런 날씨가 볼 수 없을 것이다. 즉, 시내 구경을 나선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일단 밥을 다 먹고 난 뒤 나와 성철이 형은 CPR을 만들기 위해 스토어센터로 향했고, 영일이와는 잠시 후에 륑비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CPR 신청을 끝내고 교통카드 따위 없는 나와 성철이 형은 륑비역까지 또 걸었다. 먼 거리는 아니어서 금방 도착했다. 영일이와 만난 후, 우리는 바로 교통카드를 구입하고 본격적으로 코펜하겐 관광을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서로 존댓말을 했었는데 이 순간부터 말을 편하게 하기로 했다. 그래도 섞여 나오는 존댓말.
미리 코펜하겐 주요 볼거리들을 알아본 영일이 덕분에 어디 어디를 둘러보면 좋을지 쉽게 정할 수 있었다. 니로 포트(교통의 중심지인 것 같다)에 내려서 제일 처음 들어가 본 건물은 바로 디즈니 샵. 셀카봉을 들고 코펜하겐의 거리를 누비던 남자 셋은 '왜 우리나라엔 이런 장난감 가게가 많지 않은지' 한탄하기도 하면서 디즈니 샵에서 꽤나 재미있게 놀았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장난감들을 뒤로하고 이번엔 크고 웅장해 보이는 시청 건물에 들어갔다. 우리나라의 시청 건물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고, 생각보다 시끄러웠다. 흰색의 판넬이 눈에 띄는데, 아마도 학생들을 위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시청 건물에 뭐 볼게 있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시청의 천장에는 물이 흐르고 벽엔 꽃이 피고 있었다. 유럽 사람들의 여유와 예술적인 감각들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처음엔 저런 무늬들을 보고 '쓸데없이 고퀄'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용성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건물들을 생각하니 이 사람들의 이런 여유가 조금은 부럽게 느껴진다.
시청이 어찌나 큰지 1층 2층 3층을 다 돌고 출구를 겨우 찾아 나오니 벌써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그래도 우리는 걷는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놀이공원(맞나?)인 티볼리 공원에 도착했지만 겨울이라 운영을 안 한다. 하긴 이런 추운 겨울에 롤러코스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을 테니까. 날씨가 풀리고 봄이 오면 꼭 다시 와야지.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칼스버그 박물관. 정식 명칭은 NY Carlsberg Glyptotek. 덴마크에서 칼스버그라는 이름은 굉장히 자주 보게 된다. 맥주뿐만 아니라 박물관이나 건물들 등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 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고, 일단 들어가보자.
정교한 조각상들과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역시 그 말이 딱 맞다.
하나도 안 보인다.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전혀 모른 채로 구경을 해서 모든 작품들을 그저 예쁜 조각, 멋진 그림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주변에서 설명해주는 가이드라도 있었다면 귀동냥이라도 했을 텐데, 아쉽다.
이곳도 규모가 꽤 큰 편이라 모든 전시물을 다 보고 나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해는 이미 지고 하늘은 점차 어두워졌다. 몸은 피곤했지만 뉘하운 운하의 예쁜 야경을 보겠다는 열망으로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 정도를 지나 뉘하운 운하에 도착했다. 뉘하운의 규모는 생각보다 작았다. 하지만 그곳의 풍경은 작은 규모를 잊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물과 빛, 최고의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잔잔한 물결에 비친 색색의 빛깔이 나를 다른 세상으로 인도한다. 그 빛들은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동시에 고조시켰다.
한참 발품을 판 고단한 여행 후의 마주하는 야경은 언제나 옳다. 다시 한번 이 생각을 한다.
카메라 가져올걸...
뉘하운 운하는 삼각대와 카메라를 가져와서 다시 담아가야겠다. 핸드폰 카메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삼각대로 찍으면 훨씬 더 예쁘게 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때에도 날씨가 이렇게 맑아주면 좋겠네.
덴마크에 온지 3일째, 너무 많은 구경을 했다.
'너무'라고 표현한 까닭은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먹으면 체하듯이, 코펜하겐이라는 도시의 낭만과 여유를 천천히 둘러보고 느끼기에는 너무 빠른 시간이 아니었나 싶어서다.
그래, 오늘만 볼 건 아니니까. 앞으로 남은 4개월 동안 이 도시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천천히 적응하면서 여유 있게 둘러봐야겠다.
일기를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이 없었는데, 쓰다 보면 길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