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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변양변 Sep 29. 2021

1. 범죄자가 무죄 주장을 부탁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변호사 직업정신과 양심의 충돌

"제가 범죄를 저질렀는데, 저를 무죄로 만들어주세요."




위처럼 어떤 의뢰인이 찾아와 부탁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답변하실 것 같으세요?

변호사 입장에서도 상당히 고민되는 상황일 겁니다.


원칙적으로 변호사는 의뢰인으로부터 위임된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건을 수임했다면, 변호사는 기록을 보고 증거관계를 검토하며 무죄 주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그렇게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변호사는 항상 이익만을 좇아서는 안 되며 법에서도 변호사의 사명을 '기본적 인권 옹호 및 사회정의의 실현'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법 제1조>


그럼 변호사는 직업정신과 양심이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제가 군사법원 국선변호인이던 시절 변호인을 사임한 적이 있습니다.


'랜덤채팅을 통해 조건만남을 하겠다고 나온 미성년자들을 자신이 성매매 잡는 경찰관이라고 속여 협박하여 관계를 가지게끔 하여' 강간하였다는 사실로 기소되어 재판받고 있던 피고인이었는데요, 저는 새내기 변호사였고 세상의 모든 억울한 의뢰인을 위하겠다는 당찬 포부로 가득 차 있는 상태라 정말로 자신은 성매매를 했을 뿐 강제로 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는 의뢰인의 말을 저는 모두 믿었었죠.


저는 너무나도 억울하게 구속되어 있는 의뢰인을 위해 사방팔방 증거를 수집하러 다니던 중 의뢰인 어머니랑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의뢰인 어머니가 갑자기 "우리 아들 차에서 웬 휴대폰 공기계를 발견했는데, 거기 녹음파일을 틀어보니 자기가 성매매 잡는 경찰관이다 이런 소릴 하더라고요. 이런 걸로 애들 돈 뜯고 다니는 거 아닌가 해서 제가 돈 필요하면 나한테 얘기하라고 한 적이 있었어요."라고 하더군요.


저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성범죄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던 사실은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인지는 전혀 모르고 계셨거든요.


그래서 저는 다시 의뢰인 접견을 가서 물어봤습니다. "저한테는 전혀 경찰관이라고 얘기하며 협박한 사실이 없다고 했었는데, 어머니가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의뢰인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그래도 자신은 협박한 사실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변호인과의 관계에서는 신뢰가 있어야 된다고 말해주며 사실대로 말해야 제가 재판에서도 더 방어를 잘 할 수 있다고 얘기했었지만 결국 의뢰인은 끝까지 말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저는 돌아가서 제 사무실 자리에 앉아, 위 사건에 대해 사임을 요청하는 신청서를 작성하여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이미 신뢰관계가 모두 깨진 상황에서 변호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신청은 이튿날 수리되어 저는 그 사건에서 공식적으로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의뢰인은 범죄사실이 전부 인정되어 중형을 선고받았다고 전해들었습니다.




만약 직업적 가치관과 개인의 양심 사이에서 고민될 때, 제가 사선 변호인이었다면 수임하지 않을 자유가 있었으니 상대적으로 판단하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위와 같은 고민 때문에 형사사건을 기피하는 변호사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의뢰인들은 종종 판사를 속이기 위해서는 내 변호사부터 속여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변호사업의 본질이 위임사무를 처리하는 것이고, 변호사도 사람이라 양심의 영역에서 신뢰관계에 문제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사임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으므로 '내 변호사에게조차 거짓말 하는 의뢰인'은 어디가서도 대접받지 못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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