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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숟가락 Mar 15. 2023

숟가락이라 불리고 싶은 이유

  학기 초 이름을 알려주지만 학생들은 부르지 않는다. 가끔 “저기 역사 지나간다”라는 소리를 엿들을 뿐이다. 사람이 어떻게 과목이냐고 투정을 부릴 때도 있지만 학생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많은 과목의 교사들의 이름을 한번 듣고 기억하기는 어렵다. 나를 쉽게 설명하는 단어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소개한 나의 다른 이름은 '숟가락'. 딸아이가 다니는 대안학교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별칭이다. 대학 시절 인상 깊게 본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태희: 인우! 너 국문과지?
인우: 어. 왜?
태희: 나 어릴 때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젓가락은 'ㅅ' 받침이잖아. 왜 숟가락은 'ㄷ' 받침이야?
인우: 어?
태희: '수'에 'ㄷ' 받침이 있는 단어가 하나라도 더 있으면 말을 안 하겠는데,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숟가락' 딱 하나밖에 없거든. 뭐 어차피 2개가 발음도 똑같은데, 숟가락도 'ㅅ' 받침해도 되잖아?
인우: 어~ 허~참. 배고프네.
태희: 왜 그런 거야?
인우: 그러니까, 이 젓가락은 이렇게 집어 먹으니까 'ㅅ' 받침 하는 거고. 숟가락은 퍼 먹으니까 'ㄷ' 받침인 거고. 이게 약간 'ㄷ' 같이 생겼잖아 모양이
태희: 너 국문과 아니지? 어? 아니지?
인우: 야! 그거 4학년 돼야 배워!


  영화를 본 지 20년이 지났지만 이 씬은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수'에 'ㄷ' 받침이 있는 딱 하나의 단어이고, 'ㅅ'이 편한데 굳이 'ㄷ'을 쓰는 고집이 나에게도 특별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쉽고, 재밌게, 친근히 부를 수 있는 명칭이다.

  별칭을 알려주고 만날 때마다 아이들은 웃으면서 '숟가락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정', '태'자, '윤'자 선생님이라 부를 때와는 표정부터 다르다. '젓가락'을 뽑자고도 한다. 보통 과목마다 교사를 도와줄 학생을 ‘교과부장'이라는 직함을 주고 부탁하는데, 올해는 '역사부장'이 아닌 '젓가락'이라는 특별한 사람이 된다.


  이런 장면을 상상한다. 숟가락은 하루 3번 이상 사용하는 도구다. 나와 만났던 학생이 나중에 가정을 꾸리고 자녀와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국을 먹다 숟가락이라 불린 교사와 만난 기억을 꺼낸다. “내가 중학교 때 숟가락이라는 별칭을 가진 선생님이 있었는데….”

  이어지는 문장은 내가 어떤 교사로 살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대화가 따뜻하게 이어지게 지금 만나는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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