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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숟가락 Apr 06. 2023

덕우 이야기

  덕우를 처음 봤을 때 어린아이 같은 귀여운 외모에 끌렸습니다. 사오정 흉내를 내면서 말을 할 때는 재밌습니다. 안면을 튼 지 2주가 지나자 친근해져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합니다. 아침마다 서로 안부를 물으며 학교에서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수업 시간에도 덕우는 혼자입니다. 모둠 시간에 도와줄 친구를 찾기 힘들고, 교사가 하는 수업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짝꿍은 친구가 아닌 무서운 선배 같아 물어보기 어렵고, 선생님이 쉽다면서 자꾸 알려주는데 귀찮기만 합니다. 그냥 빈종이에 나만의 세계를 그려봅니다.


  통합교육을 하겠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야심찬 수업 계획안을 세웠지만 교실에서 실천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역사를 쉽게 설명하는 글을 직접 써서 가지고 들어가서, 질문에 대한 답을 글에서 찾아 옮겨만 쓸 수 있도록 하는 수업도 특수교육 대상 학생에게는 어려운 일입니다. 45분 동안 30여 명의 학생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서 한 명에게 2분이 안 되는 시간을 할애할 뿐입니다.


  ‘나의 역사 쓰기’ 수행평가를 할 때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친구와 대화하면서 서로의 인생을 써주고, 내 삶을 돌아보며 나를 표현하는 활동에서 덕우는 침울했습니다. 마지막 ’내 인생 조사하기‘라는 과제만 남겨두었는데, 이것은 나의 어린 시절을 잘 아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 받아서 그대로 적는 문제였습니다. 덕우의 휴대전화를 함께 보면서 부모님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다음 시간 기다리던 아빠의 메시지를 받고 덕우가 밝게 웃으며 저에게 자랑부터 합니다. 궁금해서 보여달라고 했더니 나에게 다음 글을 보여줍니다.


엄마 생일인 09년 09월 04일부터 유도분만으로 고생하다가 2009년 09월 05일 오전 8시 50분 3.15kg(인가? 아빠가 갑자기 기억이 안 나네..)으로 태명이 축복이인 안덕우가 모두의 축복 속에서 아빠 엄마에게 천사처럼 찾아왔습니다. 너무 이뻐서 엄마가 수술해서 아픈 것도 모르고 아주 많이 덕우를 사랑했지요... 할아버지도 덕우가 첫 손 주고 너무 이뻐서 세상의 단비가 되어라라고 큰 덕자(德)에 비 우(비) 자를 써서 덕우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애기 때부터 어딜 가도 여자아이처럼 이쁘장하게 생겨서 딸로 오해도 많이 사고 그때마다 엄마는 아들이라고 한동안 얘기하고 다녔고.. 잘 울지도 않고 지금 말로 순딩순딩 했지 또 먹기도 많이 먹었고 때론 너무 많이 먹어서 분유며 모유며 다 토하고 놀라게 한 적도 많았습니다. 돌 지날 무렵 고열에 잘 울지도 않았던 네가 많이 울고 힘들어할 때가 있었어 아빠가 널 안고 응급실로 갔는데 덕우가 그 환경이며 사람이며 다 낯설고 차가웠던지 울면서 아빠라고 말문이 그때 처음 터진 거야.. 덕우가 너무 아파서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만감이 교차되는 날이었습니다.
덕우가 유치원 다닐 때 연말 발표회 때였나 아마 5살쯤 일 거야.. 태권도를 시범하고 유년부 친구들이 나와서 파도타기 하듯 격파를 시작하는데 드디어 아들 순서에서 사람들이 많아서 당황한 건지.. 무서웠는지.. 격파를 실패했습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다시 한번 용기를 내서 덕우 어린이 격파라고 외치는 순간 당당하게 손이 아닌 발로 밟아서 격파는 성공했지만 그날 참석한 학부모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했었습니다. 잘 못해도 어떻게든 헤쳐나가는 모습이 대견했습니다. 또 한 번은 7살 때 빅뱅의 뱅뱅뱅 노래에 맞춰서 춤 연습하고 무대에서도 떨지 않고 실수 없이 잘하고 멋진 날이었습니다.
학교 갈 무렵에는 덕우가 외로우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는데 의외로 친구들과 잘 지내고 학교에서도 인사를 제일 잘하고 밝게 웃어서 상도 받아오고 진짜 그 어떤 상보다 값진 선물이었고 대견했습니다.


  핸드폰에 적힌 정성스러운 글을 보니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 울컥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합니다. 아이가 느리건, 빠르건, 어리숙하건, 영특하건 상관없이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으로 교실에 있는 다양한 사람과 만나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덕우가 신이 나서 메시지를 수행평가지에 옮겨 적습니다. 전에는 5자 적게 하기도 힘들었는데, 한 시간 동안 집중하는 모습 처음 봅니다. 통합교육을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깨달았습니다. 학생을 중심으로 한 주변인 모두가 교육을 위해 힘을 모으는 것입니다. 장애와 비장애 아이를 통합하는 것만이 아니라 부모, 친구, 교사, 친척, 의사 등 한 아이를 위해 주변 사람들이 통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아이를 위한 교육이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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