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잠을 자지 않습니다
학교를 옮기고 학교장과 전입 교사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교장은 이렇게 단언했다. 중학교에서 열 해 남짓 수업을 하면서 다른 교사 못지않게 학생들을 재워왔던 터라 그 말을 듣고 덜컥 겁이 났다. 인문계 고등학생은 다른가? 고등학교 교사는 더 훌륭한가? 학교 문화가 그런 것인가? 등 여러 생각들이 스쳐갔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의 말은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먼저 교장은 수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을 매일 온종일 볼 수 없다. 본인이 보지 못한 것을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 또한 학생들이 오늘 수업 시간에 안 잤다고 해서 내일도 자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강사의 화려한 강의라도 학습자가 관심 없고 모르는 내용이면 잠이 올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3월에 교실에 들어가니 내가 경험한 교실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눈은 뜨고 있지만 수업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는 학생들은 중학교보다 더 많았다. 2년 동안 거꾸로 수업, 프로젝트 수업, 글쓰기 수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심을 끌어보려고 했지만 모든 학생들을 깨우는 데는 실패했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다양한 형태로 잠을 잔다. 첫 번째 유형은 쉬는 시간부터 잠에 빠져 깨지 않는 학생이다. 이 학생을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났더라도 다시 잠에 취한다. 전날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상태다. 잠을 못 잔 이유는 여러가지다. 아르바이트, 게임, 불면증 등을 꼽을 수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수업이 시작되면 잠잘 준비를 하는 학생이다. 교사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런 학생은 좀 얄밉고 자존감을 떨어지게 한다. 쉬는 시간에 신나게 뛰어다니는 것을 봤는데 수업만 시작하면 준비해 놓은 베개를 꺼낸다. 이 학생들은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업 자체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특정 과목만 싫어할 수도 있다.
세 번째 유형은 수업을 열심히 들으려고 했으나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참을 수 없는 학생이다. 이런 학생은 측은하고 불쌍하다. 졸다가 스스로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든 수업을 들으려는 노력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교사로서 학생이 결국 잠이 들면 깨우기가 미안하고, 더 좋은 수업을 준비하겠다고 다짐하게 한다.
네 번째 유형은 잠을 자지 않고 자는 척하는 학생이다.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다. 책상에 엎드려 있어서 교사가 다가가면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잠을 안 잤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눈을 보면 정말 안 잔 게 확실하다. 그런데 넌 왜 엎드려 있니?
형태가 어떻든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잠을 잔다. 잠을 자는 행위가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잠은 피곤을 해소해주고, 기분을 상쾌하게 해 준다. 코를 크게 골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 자면 배울 기회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안타깝다.
그렇다면 교사가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을 깨워야 하는가? 가르쳐야 하는 교사가 잠을 자는 학생을 깨우는 것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내가 학생일 때 졸면 분필 공격을 받거나 뒤로 나가 엎드려 뻗쳤다. 교사가 되고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는 학생을 볼 때,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프거나 힘들어서 엎드려 있고 싶으면 수업 시작 전에 나에게 양해를 구하라고 했다. 미리 말하지 않은 학생은 일으켜 세우거나 세수를 하게 해서 잠을 깨웠다. 그때마다 착한 아이들은 내 말을 들었지만 잠에서 깨어났다고 수업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최근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학생들을 깨우는 것이 두려워진다. 수업 중 책상에 엎드려 있던 학생을 강제로 일으켜 세우고 억울하면 신고하라고 말한 교사가 1심 재판에서 벌금과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처분받았다. 또한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잡자는 학생의 몸을 만지며 흔들어 깨우는 것도 성적 괴롭힘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4명 중 1명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단순히 잠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수업을 듣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더 깊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학창 시절 잤다고 벌을 받으면 감정이 상해 수업을 듣기 싫어졌다. 내가 한 수천 번의 수업 중 교실 안에 모든 사람이 집중해서 내 이야기를 들은 순간은 아마 없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없다. 진실을 파고든다면 내가 수업할 때 모두 깨어있다면 감사해야 한다.
수업에서 자는 행위는 단순히 수면 욕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다. 학교라는 질서에 학생들이 대응하는 행동 방식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자는 학생은 많아진다. 역사 시간에 자는 아이가 체육 시간에는 깨어 있는다. 좋아하는 교사의 수업은 안 자려고 노력한다. 학생들은 학교급, 과목, 교사 등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 아이들은 졸려서 자기도 하지만 우리가 자게 만든 건 아닌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잠을 선택하는 학생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자존감’이 훼손되어 있다. 그동안 학교에서 이루어진 교육 활동에서 인정받지 못한 경험이 그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다. 엎드려 있으면서 ‘내가 수업 시간에 잠을 자서 공부를 못하는 거야’라고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한다. 위협적인 상황에서 거북이가 껍질 속으로 들어가듯이 아이들은 수업이 나를 공격할 때 웅크려서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엎드려 있는 학생 주변에 투명한 보호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2020년 특성화 고등학교로 오면서 고민은 더 깊어졌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내신을 신경 쓰는 학생이 있어 수업을 듣는 학생이 소수라도 있었다. 특성화고는 전문 교과와 보통 교과로 나눠지는데 보통 교과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떨어진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기본적인 역사 지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교과서 핵심 내용을 요약한 자료를 가지고 강의식 수업을 했다. 그러자 전부 잠들었다. 깨어 있는 학생도 있었으나 혼자 수업하는 교사를 측은하게 생각하는 배려심을 가진 한두 명의 학생이었을 뿐이다.
변화된 상황은 수업의 본질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만들었다. 방학 동안 생각하고 2학기 수업을 새로 짰다. 만나는 학생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를 역사와 연결시켰다. 축구, 음식, 가족 등과 관련된 역사를 조사하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수업 방식도 바꿨다. 학생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읽기를 돌아가면서 하고, 쉬운 질문을 넣어 글을 쓸 수 있게 하였다. 모든 학생이 깨어 있지는 않지만 처음보다는 나아졌다.
이 경험을 통해 소소한 깨달음을 얻었다. 학생들은 교사가 가르쳐야 하는 수업보다 자기에게 맞는 수업에 관심을 보였다. 배워야 하는 당위성보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따라 행동이 달라졌다. 관계가 좋으면 어제 잤던 학생이 오늘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관계가 좋지 않으면 어제 잔 학생은 컨디션이 좋은 오늘 딴짓을 한다.
학생이 자는 것을 막을 순 없지만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는 명확해졌다. 나는 자는 아이들을 몰아세우지 않고 궁금해하려고 한다. 학생에게 내 수업을 따라오라고 명령하지 않고 내가 학생의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교사와 학생이 함께 수업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