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70년 전의 기계가 최첨단 공학보다 완벽하게 느껴질까?
나는 카메라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1954년에 출시된 라이카 M3는 내게 단순한 수집품이 아니라 공학적 영감을 주는 오브제다.
많은 사진가들이 M3의 필름 와인딩 레버를 감으며 감탄한다. 심지어 최신형 라이카 MP나 M6를 만져본 사람들도, M3 특유의 그 부드럽고 묵직한, 마치 유압 실린더가 움직이는 듯한 조작감은 따라올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다. M3가 만들어지던 시절은 컴퓨터는커녕 제대로 된 전자계산기도 없던 시절이다. 반면 지금의 라이카는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오차를 제어하는 최첨단 CNC 머신으로 부품을 깎는다.
그런데 왜 70년 전의 낡은 기계가 현대의 정밀 공학보다 더 완벽하게 느껴지는 걸까. 사람들은 이를 막연히 장인 정신이나 감성이라 부르지만, 공학도의 시선으로 뜯어보면 거기에는 명확한 기술적 이유가 존재한다. 바로 치수 정밀도와 촉각적 완성도의 차이다.
현대의 정밀도는 수치로 증명된다. 설계 도면의 치수와 얼마나 일치하는가. 하지만 우리가 M3에서 느끼는 완성도는 마찰의 영역이다. 토크가 얼마나 매끄럽게 전달되는가, 움직임의 시작과 끝에서 진동이 없는가. 이 차이는 제조 철학의 근본적인 지향점에서 갈린다.
현대 제조업의 제1 원칙은 교환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A라는 기어와 B라는 기어가 맞물린다고 가정해보자. 대량 생산 시스템에서는 A와 B를 각각 별도로 가공한다. 이때 설계자는 필연적으로 공차를 설정한다. 아무리 정밀한 CNC라도 미세한 오차는 존재하기에, 서로 다른 A와 B가 만났을 때 끼이지 않고 작동하려면 최소한의 여유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효율적이다. 고장이 나면 부품만 갈아 끼우면 된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기계적 유격, 즉 부품 사이의 미세한 틈을 허용해야 한다. 이것이 현대 산업이 이룩한 표준화의 기적이자 동시에 감성적 한계다.
하지만 1954년의 라이츠 공장은 달랐다. 그들은 교환가능성 대신 개별 맞춤이라는 비효율을 선택했다.
당시의 기술자들은 기어를 깎은 뒤 조립 단계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맞물리는 기어 A와 B를 짝지어 놓고, 두 부품이 완벽하게 밀착될 때까지 손으로 돌리며 서로를 갈아냈다. 이를 래핑이라 부른다.
공학적으로 래핑은 단순히 치수를 맞추는 작업이 아니다. 금속 표면의 미세한 돌기를 제거하여 접촉 면적을 극대화하는 마찰학적 공정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기어 사이의 마찰 특성이 균일해지고, 움직임이 시작될 때 툭 하고 걸리는 스틱슬립 현상이 사라진다. 현대의 CNC가 범위 안의 정밀도를 추구한다면, 래핑된 M3의 기어는 접촉 그 자체의 완결성을 추구한다. 와인딩 레버를 돌릴 때 느껴지는 그 비현실적인 부드러움은, 기계적 유격이 없는 게 아니라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수준으로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식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극악의 유지보수성이다.
M3의 내부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깎여나간 부품들로 이루어진 폐쇄된 생태계다. 그래서 주요 구동부가 마모되면 단순히 새 부품을 끼우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장인이 다시 그 새 부품을 주변 부품에 맞춰 갈아내는 피팅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비용과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결국 M3가 현대의 카메라보다 좋게 느껴지는 이유는 기술이 더 뛰어나서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이 부족해서 노동력을 갈아 넣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는 독일의 숙련공 인건비가 저렴했고 기계 장비가 비쌌던 시대다. 반면 지금은 기계가 저렴하고 사람의 인건비가 가장 비싼 자원이다.
만약 지금 라이카가 M3와 똑같은 공정으로, 모든 부품을 짝지어 래핑하고 피팅해서 카메라를 만든다면 그 가격은 수천만 원을 호가할 것이다. 현대의 라이카 MP가 CNC 가공을 선택한 건 원가 절감을 위한 타협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생산과 유지보수를 위한 공학적 최적화의 결과다.
그래서 M3는 재현 불가능한 유산이다. 자본주의의 고도화된 효율성 앞에서는 다시는 재현될 수 없는, 비효율이 빚어낸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검은색 페인트가 닳아 황동이 드러난, 책상 위에 놓인 M3는 내게 일종의 토템이다. 복잡한 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를 설계하다가 머리가 복잡해지면, 무심코 와인딩 레버를 감아본다.
철컥.
우리는 생산성을 위해 표준화된 라이브러리를 쓰고, 적당한 성능과 타협하며 시스템을 구축한다. 그게 틀린 건 아니다. 현대의 속도를 따라가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 타협 없는 기계가 주는, 꽉 찬 밀도감이 부러울 때가 있다.
70년 전의 기술자들이 남긴 이 차가운 금속 덩어리는 내게 조용히 말해주는 듯하다. 가끔은 효율을 잊고, 끝까지 파고들어 딱 맞물리는 순간을 만들어보라고. 그게 바로 기계의 낭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