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비용이 아니라 자유의 구독료다
세상은 시끄럽다.
인터넷 댓글창은 혐오로 도배되고, 명절 밥상머리 정치 논쟁은 고성으로 끝난다. 층간 소음으로 이웃이 칼부림을 하고, 사소한 접촉 사고가 도로 위 격투기로 번진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다고. 하지만 공학적 관점으로 보면 이 소란스러움은 시스템의 버그가 아니다. 그것은 중앙 서버가 사라진 시대의 필연적인 기능이다.
과거에는 강력한 중앙 서버가 존재했다. 왕이나 독재자, 혹은 가부장적인 아버지나 절대적인 종교 같은 것들이다. 모든 데이터는 중앙에서 정의되었고, 개별 노드인 우리는 그저 그 데이터를 받아쓰기만 하면 됐다. 동기화는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거역하면 시스템에서 강퇴당하니까.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각자의 CPU와 스토리지를 가진 독립적인 노드가 되었다. 누구나 자신의 진실을 떠들 수 있는 P2P 네트워크이자, 거대한 분산 시스템이 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중앙의 통제가 사라진 분산 환경에서는 필연적으로 스플릿 브레인 현상이 일어난다. 네트워크가 불안정해지면 각 노드가 서로 다른 데이터를 진실이라 믿으며 쪼개지는 것이다. 너의 정의와 나의 정의가 다르고, 너의 상식과 나의 상식이 충돌한다.
이 혼란스러운 분산 시스템에서 서로 다른 데이터를 가진 노드들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을 우리는 합의 알고리즘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언어로 민주주의, 혹은 사회적 합의라 불린다.
안타깝게도 분산 시스템에서의 합의는 엄청나게 비싸고 느리다.
[시스템 트레이드오프]
독재 — 빠르다. 하지만 중앙 노드가 고장 나면 전체가 셧다운 된다.
민주주의 — 느리고 비싸다. 하지만 일부 노드가 미쳐 날뛰어도 시스템은 유지된다.
우리는 국회가, 회의가, 가족 간의 대화가 느리고 답답하다고 불평한다. 그냥 확 밀어붙이면 안 되냐고 묻는다. 하지만 공학에서 레이턴시는 시스템의 가용성과 맞바꾼 비용이다. 그러므로 갈등은 불필요한 비용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위한 구독료다.
그렇다면 서로를 믿지 못하는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신뢰를 증명하는가. 블록체인에서는 이를 작업 증명이라 부른다. 신뢰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막대한 컴퓨팅 파워와 전기를 소모해 복잡한 문제를 풀어냈을 때 비로소 블록 하나를 생성할 자격을 얻는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날 좀 믿어달라”는 말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내 시간을 태우고, 감정을 소모하고, 논리를 다듬는 작업을 증명해야 한다. 그 지난한 과정이 귀찮아서 대화를 포기하는 순간 신뢰의 체인은 끊어진다. 사회적 갈등 비용이 높아지는 이유는 우리가 서로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설득하기 위한 수수료를 지불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스템에는 언제나 악의적인 노드가 존재한다.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선동가와 무조건 반대만 하는 트롤이 있다. 컴퓨터 과학에서는 이를 비잔틴 장군 문제라 부른다. 배신자가 숨어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합의에 도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완벽한 만장일치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환상이다. 건강한 시스템은 모두가 착한 세상이 아니다. 이상한 노드가 몇 개 섞여 있어도 전체 시스템이 붕괴하지 않고 정상 작동하는 결함 허용 시스템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밉고,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인간이 내 옆자리에 있을 수 있다. 그를 시스템에서 영원히 차단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마지막 알고리즘은 Disagree and Commit이다.
반대하되 헌신하라 — 치열하게 논쟁하라. 작업 증명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라. 그러나 합의 과정이 끝났고 시스템의 과반수가 방향을 정했다면, 내 뜻과 다르더라도 일단은 그 결정에 따라 헌신하라.
이것이 네트워크의 분열을 막고 우리를 공존하게 하는 유일한 규칙이다. 내 의견이 채택되지 않았더라도, 시스템 전체의 셧다운을 막기 위해 기꺼이 리소스를 제공하는 태도. 그것이 성숙한 노드의 품격이다.
우리는 거대한 서버실의 독립된 노드들이다. 서로 다른 프로토콜로 떠들고, 가끔은 연결이 끊기며, 종종 오류를 뿜어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에게 핑을 보내고 하트비트를 확인한다.
거기 잘 있느냐는 짧은 물음.
나 여기 살아있다는 조용한 응답.
이 느리고, 비효율적이며, 시끄러운 합의의 과정.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구축한,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회의 아키텍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