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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그모어 Nov 13. 2023

ORSLOW

ORIGINALITY + SLOW, 천천히 본질에 다가가다


후쿠오카에서 이 오어슬로우 퍼티그 팬츠를 발견했을 때 뛸 듯이 기뻤습니다. 국내에서도 꽤 오랜 기간 사랑받고 있는 팬츠이기 때문이죠. 오어슬로우의 가장 아이코닉한 아이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 그다음이 오어슬로우 데님이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이든. 물건이든. 제 기능을 잘하는 어떤 것들에 우리는 '근본'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입니다. 오어슬로우도 그런 면에서 근본 브랜드입니다. 옷의 오리지널리티를 쫓아 오래오래 입을 수 있도록 복각해 내는 멋진 브랜드죠. 이를 넘어서는 근본을 찾으려면 진짜 밀리터리 군복을 뒤져보는 방법뿐일 거예요.



이런 근본 브랜드의 인기 아이템을 발견했으니 가슴이 설레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심지어 가격도 합리적이었어요. 그런데 가격표 한켠에 일본어로 깨알같이 뭐라 뭐라 길게 적혀있더군요. 뭐지? 싶어서 구글 번역 카메라를 이용했습니다.


"버튼 플라이. 상단 2개 버튼 없음.“


'어쩐지. 그래서 가격이 괜찮았구나.' 구매를 할까 말까 고민고민하다가, 그래도 이 가을날 후쿠오카에서 이 아이템을 만났다는 사실이 반가워 덜컥 매입 리스트에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단추를 어쩌지.. 시름시름 고민하기 시작했죠.



마침 제 직장이 서울역 근처입니다. 4호선 한정거장만 이동하면 회현역에 남대문 시장이 있었죠. 남대문 시장은 뭐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공간이니, 분명 이 팬츠의 단추와 유사한 단추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출근할 때 이 오어슬로우 퍼티그 팬츠를 챙겼고, 점심시간이 되자 점심식사도 거르고, 이 팬츠를 들고선 곧바로 남대문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남대문 시장은 꽤 많이 북적거렸습니다. 그리고 정말 뭐가 많아서 당최 어디서 무얼 파는지 찾기가 참 힘들더라고요. 1층에 있는 상가 사장님들에게 다가가 열심히 여쭤봤습니다.


단추 파는 곳 아세요?


의외로 잘 모르시더라고요. 마침내 한 액세서리 가게 아주머니께서 일러주셨습니다. 저기로 가봐. 아주머니 손가락 끝이 향한 곳을 보니 '단추'라는 문구가 보이는 잡화점이 있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냅다 잡화점으로 향했죠. 정말 잡다한 것들을 파는 곳이었어요. 머리핀, 머리끈, 헤어밴드, 시계, 팔찌 등등. 그러다가 단추 코너가 딱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올리브 색을 지닌 단추는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에고 포기해야 하나. 터덜터덜 걷고 있는 그때. 노란색 간판의 수선집이 딱 눈에 띄더군요. 아주 좁고 턱이 높은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갔습니다.


혹시 이 단추와 똑같거나 비슷한 단추가 있을까요? 군복이랑 비슷한 바지인데..


한 7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사장님은 돋보기안경을 끼시고 어떤 재킷을 수선 중이셨는데, 제 질문 끝에 단추가 한가득 담긴 빈 꿀통(?)을 내놓으시며, "내가 조금 바빠서 그런데 한번 직접 찾아보실래요?" 아주 사근사근한 할머니 말투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괜스레 흐뭇한 웃음이 삐져나왔는데, 왜냐면 그 단추 통이 우리 할머니의 그것과. 우리 어머니의 그것과 같았기 때문이었죠. 참 정겹단 생각이 들었어요.



신문지를 펴고 통 안에 단추를 다 쏟아 냈습니다. 수많은 단추들 사이로 마침내 올리브색 단추를 발견했죠. 다름 아닌 군복 단추 2개였습니다. 오어슬로우 퍼티그 팬츠에 대봤는데, 이 정도면 이질감이 없었습니다. 딱이었죠.



이거 달아주실 수 있으세요? 여쭈니 너무 바빠 내일까지 가능하시답니다. 점심을 또 거르고 다시 오는 건 아무래도 번거로워, 직접 달기로 합니다. 얼마예요? 여쭙자 단추 2개에 뭔 돈이냐며 그냥 가져가라 하십니다. 사장님의 인심에 연신 감사하다 인사드리며 수선집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렇게 얻어낸 군복 단추 2개를 집으로 돌아와 제가 직접 바느질하여 달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큰 비효율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품, 그 팬츠를 들고 수원에서 서울까지 대중교통으로 출근을 했고, 그 팬츠를 들고 점심도 거르고 남대문 시장을 돌아다녔던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단추를 다는 노동까지 말이죠. 하지만 제겐 꽤 즐거운 여정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하자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오어슬로우 퍼티그 팬츠는 딱 두 개의 단추만큼이나 밀리터리 오리지널에 가까워진 아이템입니다. 그래서 여느 오어슬로우 퍼티그 팬츠보다 더 특별하죠. 정말 브랜드 이름 그대로를 실천한 팬츠 아닙니까. ORIGINALITY SLOW. 천천히 본질에 다가간.


TAGMORE :: 이 아이템 구매하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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